국정원, ‘배신자’ 욕할 자격 있나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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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권 초 무리한 집단 강제퇴직 인사가 ‘X파일 파문’ 초래한 원죄
 
국정원이 창설 이래 보기 드문 홍역을 단단히 치르고 있다. 몇몇 전직 직원들이 재직하면서 알게 된 정보와 자료를 외부에 유출하면서 조직이 ‘X파일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정원으로서는 불법 도청 조직인 미림의 실체를 세상에 처음으로 폭로한 김기삼씨와 불법 도청 테이프를 들고 나와 유출한 공운영 미림 팀장이 눈엣가시일 것이다. 이번 사태 초반부터 뉴스 인물로 떠오른 두 사람을 ‘파렴치범’ ‘조직 배신자’ ‘무능력자’ 등으로 몰아간 국정원의 태도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과연 X파일 파문을 몰고온 근본 원인이 이 두 사람의 돌출 행위에만 있는 것일까. 사실 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원죄는 국정원에 있다는 것이 전직 국정원 출신 인사들의 중론이다. 안기부에서 간부를 지낸 이 아무개씨는 “이번 사태는 DJ 정권 초기에 단행한 무리한 집단 강제 퇴직 인사에서 비롯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998년 정권 교체 직후  DJ 정부는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변경하면서 정보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요원들을 하루아침에 대규모로 내보냈다. 당시 총 5백80여명이 잘렸는데, 그 중에는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들도 무더기로 끼어 있었다.
 
억울함을 삭이지 못한 일부 퇴직자들은 재직중 취득한 자료를 불법으로 빼돌려 이를 무기로 무리한 구명운동을 벌이는 경우가 나타났다. 공운영 미림 팀장도 그런 사례였다. 이들은 도청 문건을 한나라당으로 가져가 국정원을 괴롭혔다. 2002년 대선을 전후해 정형근 의원이 국회에서 연달아 폭로한 국정원 도청 문건의 출처 배후에도 사실 이런 불만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쫓겨난 다른 직원들도 ‘국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국사모)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법원에 집단으로 ‘면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2002년 서울행정법원은 국정원의 면직 처분이 위법하게 이루어졌다고 확인하며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씨도 소송 끝에 복직한 뒤 바로 퇴직했다.
 
 
공영운 팀장과 중앙정보부 입사 동기인 이 아무개씨는 “공씨는 정보원으로서는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다가 잘리고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그가 테이프를 가지고 나온 것은 분명 잘못된 행위이나 적어도 국정원에서만큼은 과연 누가 공팀장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내 불법 도청 조직 미림의 정체를 폭로한 김기삼씨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무능력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김씨와 같이 일해본 국정원 인사들은 오히려 김씨가 주요 부서를 전전한 것은 상급자들이 데려다 쓰고 싶어할 만큼 유능한 면이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또 국정원은 김기삼씨가 외국 연수 후 5년 의무복무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직권 면직되었다고 언론에 알림으로써 마치 규정에 어긋나 쫓겨난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김씨의 퇴직 과정에는 아무런 불이익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고, 퇴직금도 전액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나름으로 국정원의 혜택을 입은 김씨가 왜 갑자기 미국으로 나갔고, 5년 동안 줄기차게 국정원의 불법 행위와 문제점 들을 국내 언론에 폭로하느냐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김대중 정부의 분열 정책으로 국정원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주관적인 그의 신념이지만, 국정원은 DJ를 비판해온 김씨를 일찌감치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YS 정권 때부터 노벨상 수상 공작”

김씨는 그동안 자기가 재직중 알게 되었다는 DJ 노벨상 수상 공작을 여기저기 폭로해 왔다. 또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에 현금 15억 달러가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김씨에 따르면, 자기가 가담한 노벨상 수상 공작은 비단 DJ만이 아니라 YS 정권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안기부 해외정보국 동구과의 주된 업무가 노벨상 공작이었는데, YS 정권 때는 ‘YS 노벨상 수상 및 DJ 수상 저지’가 주임무였다는 것이다.
 
3년 전부터 팬실베이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 외곽의 아담한 연립주택에서 가족과 살고 있는 김기삼씨는 그동안 줄기차게 DJ 정권때 벌어진 문제점들을 글로 써 국내 언론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렸다. 참여정부 들어서 그는 국내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청와대 민정비서실 등에 직접 정보를 제공하며 DJ를 둘러싼 의혹 사항들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김씨는 현재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상태이다. 아직까지 그의 망명 신청서는 뉴저지 주 망명사무소에 계류되어 있다. 국정원은 최근 미림의 정체를 폭로한 김기삼씨를 국내로 소환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국정원은 법적으로 한·미 형사공조협정에 따라 김씨를 인도해 달라고 미국측에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조처를 취할 경우 국정원 직원이라는 민감한 그의 신분으로 인해 한·미 간에 새로운 마찰이 생길 소지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김씨는 “만일 국정원이 지금이라도 범죄인 인도 협정에 따라 나를 소환하겠다고 요청한다면 당당히 조사에 응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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