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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짜 기술 다 갖추고 도·감청 못한다고?

국정원 “휴대전화 도·감청 있었다” 시인 2,3년 전 <시사저널> 특종 보도 사실로 입증

정희상 전문기자 ㅣ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8.08(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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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김승규 국정원장은 8월5일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그동안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거짓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휴대전화 도·감청이 불가능하다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거듭된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공식 확인되었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8월5일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발표한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국정원은 2002년 3월까지 휴대전화를 도·감청했다”라고 시인했다. 그는 이어 옛 안기부의 도·감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한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고 밝혔다. 

 김원장의 이같은 발표는 지난 3년 동안 <시사저널>이 세 차례에 걸쳐 추적해 게재한 국정원의 휴대전화 도·감청 특종 보도가 사실이었음을 입증한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제685호(2002.12.12) 제704호(2003. 4.24) 제823호(2005. 8.2)를 통해 국정원이 일찌감치 휴대전화  도청 기술을 확보하고 공직자와 민간인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불법 도·감청을 일삼아 왔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정원 과학보안국에서 휴대전화 도·감청 기술 도입과 개발을 담당했던 기술자들과 이를 바탕으로 무차별 도청을 한 부서 관계자들로부터 ‘양심 고백’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사가 나갈 때마다 국정원측은 <시사저널>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강도 높게 유감 표명을 했다. 더 나아가 국정원은 ‘휴대전화는 절대로 도·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내서 다른 언론들이 후속 보도 하는 것을 막아 왔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와 같은 국정원의 대응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최근 터진 이른바 안기부 불법 도청 조직 미림팀의 ‘X 파일’ 때문이었다. 더 이상 거짓 주장을 되풀이할 경우 성난 민심으로 인해 국정원이 존폐의 기로에 내몰릴 지경에 이르자 도·감청 기술 확보 및 불법 도청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난국을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 국정원이 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불법 도청을 자행한 시점이 ‘김대중 정부 때까지’라고 한정해 현재의 국정원은 이 문제와 무관하다고 애써 강조한 것도 험악해진 민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속성상 2002년 3월 이후 전혀 불법 도청을 하지 않았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찮다. 법적·제도적 감독 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도청 기술은 확보하고 있지만 써먹지는 않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주문은 궁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25쪽 딸린 기사 참조).

 

   
 
ⓒ연합뉴스
불법도청테이프를 유출 한 혐의로 구속되는 공운영 전 미림 팀장.
 
국정원이 개략적으로 발표했지만, 국정원의 휴대전화 도·감청 기술은 가히 선진국 수준이다. 우선 각 무선통신 회사가 관리하는 기지국(안테나)이 전국에 만여 곳에 달한다. 또 각 통신회사 별로 서울에 중앙 교환기가 있고, 전국을 8개 권역으로 나누어 각각 대용량 교환기가 1대씩 설치되어 있다. 서울의 중앙 교환기는 호트스 컴퓨터라고 불리는 대용량 컴퓨터가 통제한다.

 서울과 지방의 8개 교환기는 두 가지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광 디스크(optil disk)장치로 모든 통화자의 통화 내용을 빠짐없이 녹음할 수 있는 기능(BSD)이다. 다른 하나는 통화자 쌍방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기능(WSD)이다. 따라서 휴대전화 사용자가 전국 어디에서 통화하든지 각 지방 기지국 통화를 모으는 8개 권역 교환기에 1차로 모든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 이 데이터는 서울로 집중되어 중앙 교환기에서 다시 한번 녹음된다. 안기부 시절부터 수백 명에 이르는 국정원 과학보안국 직원들은 무선통신회사의 메인 컴퓨터 선을 국정원에 설치된 슈퍼 컴퓨터에 연결해 마음먹은 대로 통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었다. 또 특정 인물이 목적을 가지고 민간 무선통신회사 교환대에 들어가 특정 번호의 통화 내역을 알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국정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민간 통신회사 교환대 기계실에 근무하는 장기 근속자를 특별 관리해 왔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휴대전화를 통한 국제 전화는 특히 100% 도·감청이 가능하다. 우선 국내에서 해외로 거는 모든 통화 내용은 미국의 인공위성이 1차로 모니터링한다. 한국에서도 자체 개발한 통신위성 기술을 바탕으로 목표로 한 휴대전화 국제 통화 내용을 모두 모니터링했다.

 이같은 최첨단 도·감청 기술은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국가 안보와 국익 보호 등을 명분으로 사활을 걸고 개발해온 분야이다. 안기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통신 분야 도·감청 기술 도입에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들어 각종 외사·방첩 범죄가 갈수록 첨단화·지능화함에 따라 국정원 내 종합 감청시설만으로는 이에 신속히 대응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현장에서 빠른초동 대처가 필수인 마약·총기·조직폭력·위조 지폐 등 각종 지능 범죄를 막으려면 진전된 도·감청 기술을 도입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된 첨단 도청 기술 확보 프로젝트에 예산을 집중 투입해 타이완·스페인·이탈리아 등지에서 각종 현장 미행 도·감청 장비를 사들였다. 문제는 이런 첨단 휴대전화 도·감청 장비를 본래의 목적 외에 정권 안보에 마구잡이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시절 정호용 의원이 당 방침에 불복하고 탈당을 시도하자 안기부는 이런 첨단 장비를 이용해 당시 정의원을 미행하며 도청해 탈당을 막아내기도 했다. 1993년 이후 김영삼 정부의 안기부는 이런 장비를 동원해 당시 정적이던 김대중 민주당 총재와 그 측근 인사들의 유·무선 전화를 24시간 도청했다.

  1998년 이후 정부는 국내 자체 기술을 통해 더욱 진전된 첨단 도·감청 기술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정보통신(IT) 기술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이 첨단 정보 전쟁을 벌이게 되자 비싼 가격을 제시해도 외국 기업이 도·감청 기술과 장비를 쉽사리 넘겨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기술 발전 위상이 보여주듯이 이런 도·감청 기술 개발 능력은 국내 민간 기업들이 앞서가기 시작했다.

 

   
  <시사저널>이 특종 보도한 휴대전화 불법 도청 관련 기사들.  
국정원은 2000년 정보 통신 첨단 기술이 축적된 국내 민간 기업들에 이 기술 개발을 의뢰했고, 그 가운데 한 업체가 20km 반경 이내의 모든 휴대전화 통화를 실시간에 잡아낼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 이 업체는 모체가 되는 기술을 군사 방첩 기술이 뛰어난 러시아에서 도입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어쩐 일인지 기술은 도입 단계에서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 기술 도청하고자 하는 통화자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실패 없이 완벽하게 도·감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회사가 부도 난 후 기술은 국정원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국제 첩보전 무대에서 한국 정보기관의 휴대전화 도·감청 기술은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 분야 기술 도입에 간여했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재 검찰은 안기부 불법 도청 조직 미림팀이 만든 녹음 테이프 유출 과정과 언론의 보도 경위를 파헤치는 데만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안기부와 국정원이 선진 도청 기술을 확보해 민간인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불법 도청 행위를 한 대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국정원은 장비들을 폐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불법적인 첨단 도·감청 기술과 장비는 집권자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부활될 수 있다. 또 국정원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면, 외사·방첩·국제 범죄·산업 스파이 등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첨단 감청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다. 따라서 국정원을 불법의 유혹으로부터 원천척으로 벗어나도록 하려면 첨단 도·감청 기술과 장비를 관리 감독할 강력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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