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 장학회 를 주목하라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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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고민한 지는 15년이 넘었다.

 
박근혜와 박근령(본명 박근영· 이름을 서영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근령으로 바꾸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 딸이 주목된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 시효를 배제하자고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여권에서는 다시 정수장학회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가을 정국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당 혁신안을 둘러싼 당내 내홍에 더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필두로 한 대연정 제안 등 여권의 대공세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로 치자면 동생도 만만치 않다.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은 최근 육영재단이 주최한 국토순례 과정에서 불거진 성추행 의혹, 고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딴 금메달을 기증받아 소홀히 관리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녀는 현재 육영재단 이사장 승인 여부를 놓고 성동교육청과 행정 소송을 하고 있는데, 성동교육청이 승소를 자신하고 있는 상태다(딸린 기사 쪽).

정수장학회 문제는 이미 급류를 탔다. 여권을 중심으로 가을 국감 때 본격적인 쟁점화가 준비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전국 단위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있고, 유족들은 소송을 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 출신 의원들에게 했다는 말

지난 7월 말,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자신의 비서를 지낸 정치권 인사들과 청와대에서 저녁을 먹었다. 열린우리당 이광재·서갑원·백원우 의원 등 7~8명이 참석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노대통령은 X파일과 연정 문제 등 최근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과거사 문제로 이어졌을 때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언급이 나왔다. ‘정수장학회는 한마디로 정치적 장물이다. 국가 권력이 강탈한 것이다.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정수장학회 문제가 이 날 대화의 핵심은 아니었다. 노대통령이 편한 사람들과 만나 흉금을 터놓고 쏟아낸 여러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국회의원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과거사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옮아가면서 대통령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언급했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대화가 주목된 것은 노대통령의 8·15 경축사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국가 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기본 질서를 침해한 범죄, 그리고 이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의 시효를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즉각 노대통령의 발언이 정수장학회 사건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사건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노대통령과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는 남다른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1960년 김해 진영중학교에 다닐 때 1년간 부일장학회 장학금을, 부산상고에 진학해서는 3년간 부일장학회를 설립자 고 김지태씨가 만든 백양장학금을 받았다. 노대통령은 1994년 낸 자전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 ‘김지태 선생은 내게 디딤돌을 놓아준 사람이다. 부일장학회는 한국 최초·최대의 장학재단이었다. 그것을 박정희 정권이 빼앗아 지금은 정수장학회로 남아 있으니 참으로 부당하고 기막힌 일이다’라고 썼다.

노대통령이 지난 8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언급한 내용도 이런 인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노대통령은 이 날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가 되니까 과거 독재 정권의 권력자로서 치부하다 신군부에 재산을 뺏겼던 사람이 제일 먼저 권리를 회복하고 진짜 피해자는 시효가 지나서 해결이 안 됐다. 이것을 보고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1988년 10월 고 김지태씨 유족이 선친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며 국회에 청원서를 낼 때 서명한 국회의원 13명 중 한 명이었다.

 
노대통령은 이부영 전 의원이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맡고 있을 때도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그에게 깊숙이 언급한 적이 있다. 최근 언급과 맥락이 같았다. 이부영 전 의원은 이에 대해 “(노대통령의 이야기는)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 것이었다. 부일장학회를 군사 정권이 빼앗아 간 것에 대해 부산·경남 지역의 반감이 크다. 노대통령의 언급은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이러한 부산·경남 지역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자신과의 사적인 인연을 넘어 법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고민한 지는 최소한 15년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노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정수장학회 탄생의 배경에서 나름의 해결 방도까지,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지난 8월17일 기자와 만나 “노대통령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나름으로 정리해 고 김지태씨의 유족에게 전해 준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1980년대 후반 노대통령이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유족에게 준 문서가 얼마만한 분량이었고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미 노대통령이 ‘법원의 보수성과 법적인 시효 문제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대통령은 당시 현재 펼쳐지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기본 구상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고 김지태씨의 한 유족은 이에 대해 “노대통령이 그런 문서를 준 사실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시효를 배제하자고 주장하면서 정치권에는 다시 ‘과거사 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나라당이 헌정 체계와 법률 체계를 송두리째 무시한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리 논쟁의 바탕 위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는 가을 정국에서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이 사건이 과거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해 일어났다고 공식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는 지난 7월22일 ‘부일장학회·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이 당시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해 헌납 또는 매각된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을 정국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앞장설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열린우리당 백원우 의원이다. 노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백의원의 상임위원회는 정수장학회 담당 기관인 서울시교육청을 감사하는 교육위원회다. 백의원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있고 교육과 관련한 사안이다. 가을 국정감사 때 세게 거론할 것이다. 열린우리당 국회 교육위원들과 논의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내가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백의원은 올해는 물론 향후에도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필요하면 부산 지역에서 강연할 생각도 갖고 있다. 그는 “국가 권력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건이다.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하고 정수장학회는 설립자의 취지에 맞춰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부의 도전도 만만치 않아

언론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관광위원회에서는 MBC 노조위원장을 지낸 노웅래 의원과 민병두 의원이 진작부터 정수장학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지분 100%, MBC 지분 30%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병두 의원의 한 측근은 “문제 제기를 하겠다. 좋은 방법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도 시민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 청원에 도움을 주는 식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정수장학회 문제가 불거질수록 곤혹스런 것은 박근혜 대표다. 여권에서도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다. “한나라당을 죽이고 박대표를 때리기 위한 마각이 드러난 것이다”(이규택 최고위원)라는 말도 있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당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홍준표·김문수 의원 등을 중심으로 진작부터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대표 개인의 문제일 뿐 당과는 무관한 일인데 마치 한 묶음처럼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공세가 날로 날카로워지고 있는 가운데 당내 반 박근혜 세력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새정치수요모임이 처음으로 지난 8월18일 합동 모임을 가져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8월30일부터 열리는 당 연찬회에서 전당대회를 조기에 개최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펼치며 박대표를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도 도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 정국에서 박대표는 또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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