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불 밝힌 백야의 땅
  •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 승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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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해 연안 도시 클래식 여행/본고장 <푸치니> 공연 등 ‘특별한 추억’ 듬뿍

 
‘불면의 밤이 무한한 행복과 기쁨 속에서 순간처럼 지나가고 새벽의 분홍빛 노을이 창문에 어려 가물거릴 때, 우리의 몽상가가 지치고 기진맥진한 몸을 침대에 던지고, 심장에 지겹도록 달콤한 고통을 느끼며 잠에 빠져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백야(白夜)에 대해서 남긴 찬사다.

지난 7월26일 오전 1시,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서 바라본 짙푸른 백야는 이 도시를 그토록 사랑했던 대문호의 예찬이 그대로 가슴 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북위 60° 근처의 발틱 해를 끼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에스토니아·핀란드·스웨덴 네 나라이다. 특히 핀란드 만에 자리한 러시아의 문화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백야의 시작이자 끝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피아노 음악 <4계>에서 5월을 ‘백야’로 묘사했고, 글라주노프를 비롯한 다른 러시아 작곡가에게도 백야는 그들 음악의 원천이 되었다.

백야에 즐기는 클래식은 한 여름의 별미

푸르트벵글러·토스카니니·카라얀은 20세기 세계 음악계를 호령했던 지휘자들이다. 허나 이들에게 필적하는, 철의 장막 속의 절대적인 ‘카리스마’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를 50년 간이나 이끌었던 예프게니 므라빈스키다. 7월25일 밤 11시에 사람 그림자도 없는 스산함이 감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보고슬로프스카야 공동묘지에 낯선 동양인 관광객들이 들어갔다. 묘지 수천 기 가운데 므라빈스키의 마지막 자취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이내 수호천사와 나란히 서있는 거장의 동상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일행 중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딸을 둔 우향식씨(44)는 “그동안 음반으로만 이 분의 음악을 들었는데, 돈과 명예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예술 하나만 알고 평생을 살았던 대지휘자의 숨결을 접하고 많은 교훈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해외 여행이 봇물을 이루는 요즘, 이렇듯 예술을 아끼는 한국인 여행객들은 ‘어글리 코리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7월20일 마린스키 극장의 시즌 폐막 공연으로 막을 올린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문화적인 충격을 경험한 이들은 시내 곳곳에 산재한 음악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고 했다.

오는 9월 바그너의 <링> 시리즈 전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으로 사상 최초로 내한하는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버전의 <나비부인>이 뉴프로덕션으로 초연되던 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 앞에 부서지던 2막 ‘허밍 코러스’의 여운은 환상적인 연출과 맞물려 이 극장이 세계 최고의 위치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했다. 또한 6일 뒤 같은 무대에서 열린 발레 <라 실피드>에 마린스키 극장의 2백22년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외국인 발레리나인 유지연이 에피 역으로 출연해 관객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이제 원숙기에 접어든 유지연의 연기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한국인 발레리나 유지연 열연

러시아에서의 감동은 에스토니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7월21일,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국경을 넘어 7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도착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15세기부터 지어진 탈린 옛 시가의 밤은 러시아와는 다른 독특한 백야의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쌍둥이 탑이 인상적인 비루 문 앞에 늘어선 꽃가게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얼굴에 함박웃음을 한 탈린 시민들로 붐볐다. 작은 돌을 촘촘히 박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길을 따라 올라가자 옛 시청 광장이 펼쳐졌다. 어디선가 플라멩고 기타의 격한 리듬이 들려왔다. 스페인에서 온 집시 밴드의 즉석 공연이다. 음악이 생활이 된 에스토니아인들,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1404년에 세워져 무려 6백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옛 시청은 현재 탈린을 대표하는 콘서트홀과 전시회장으로 개조되었다. ‘타운홀 오페라 축제’ 기간의 콘서트홀은 다음날 마린스키 극장의 솔리스트들이 라리사 게르기예바의 피아노 반주로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14세기부터 덴마크, 독일 기사단, 폴란드에 이어 러시아 표트르 대제에게 러시아령으로 들어가 피압박 민족으로서 열강의 틈에 끼어 영욕의 세월을 감내해 온 에스토니아는, 1991년 꿈에도 그리던 국가를 되찾았다. 에스토니아는 ‘노래하는 민족’으로 불릴 만큼 음악과 밀접하다. 1869년부터 5년마다 열리는 ‘노래 축제’는 합창단 수천 개가 참여하는 에스토니아 최대의 페스티벌이다. 에스토니아의 여성 시인 코이둘라의 시에 에르네삭스가 곡을 붙인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 불려질 때 청중과 연주자들은 열락의 감흥을 맛본다.

1백주년 맞는 에스토니아 국립 오페라극장

서양 음악 100년 역사의 에스토니아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휘자 네메 예르비를 필두로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 등 그 저변이 넓다. 탈린 중심가 에스토니아 대로 4번지에 위치한 국립 오페라 극장. 1913년 8월24일 개관할 때 탈린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던 오페라하우스는 이제 10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두 날개로 이루어진 고전미 넘치는 건물은, 왼쪽은 아르보 볼메르가 이끄는 국립 오페라단이 상주하며, 오른쪽은 세계적인 거장급 지휘자들이 조련했던 에스토니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용하는 콘서트홀로 쓰인다. 7백석인 객석은 탁월한 음향을 자랑했다.

 
탈린 시에는 드라마 극장을 비롯한 여타 극장만 공식으로 14개나 된다. 이밖에도 톰페아 언덕에 자리한 필하모니홀의 고색 창연함은 정평이 나 있다. 여기에 ‘야니 처치’를 비롯해 카드리오르그 궁전, 카누테 길드홀과 같은 공연장까지 합하면 도시의 웬만한 건물은 거의 음악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7월23일 탈린을 떠나 핀란드의 헬싱키에 도착해 시벨리우스의 숨결을 느끼고 다시 유람선 ‘실자라인’을 타고 발틱 해 크루즈 여정을 시작했다. ‘아바’의 나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닻을 내려 유명한 왕립 오페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전설적인 테너 유시 비욜링과 니콜라이 겟다의 음성이 무대에서 들려왔다.

에스토니아어로 ‘신명’ ‘흥’을 뜻하는 ‘h?ng’은 우리말과 발음이 비슷하다. 에스토니아가 속한 핀우그르족이 우리와 밀접한 까닭이다. 발틱 해 연안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친근함이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백야의 절정기에 찾은 로맨틱한 밤의 여운이 꽤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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