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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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 “고든 감독은 북한도 보통 사람들의 나라임을 알려줬다” 평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국가로 알려진 북한이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지난 8월10일 뉴욕 시 맨해튼에서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 때문이다.

영국인 스포츠 저널리스트 대니얼 고든 감독이 제작한 <어떤 나라>는, ‘악의 축’ ‘핵 위협’이라는 부정적 헤드라인만으로 알려져 온 사회주의 국가 북한의 일상을 미국인들에게 처음 소개해 주목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의 영화 난에 ‘장관거리를 통해 엿보는 북한’이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를 소개했다. 이 신문의 잣대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가 아닌가이다. 이 신문은, ‘이 영화에 정치적 입장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지만, 영화 끝 부분의 스펙터클한 매스게임 장면과 김정일 위원장이 국가 대사 탓에 (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자막은 다소 친북적인 경향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는 또 주인공인 두 소녀의 가족이 국경일에 가족 소풍을 즐기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매우 시시하고 재미 없는 소풍이지만, 그들이 강아지와 함께 뛰어노는 장면은 전혀 꾸밈 없는 일상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대규모 매스게임, 핵 연구시설, 그리고 군사 훈련 장면만 보아왔던 미국인들에게 천진난만한 북한 소녀의 웃음과 강아지가 출연한 것은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또 주인공 소녀의 어머니가 1990년대 최악의 기근 때 식량난을 회상하면서, 딸의 생일에 옥수수죽 한 그릇 밖에 내놓지 못했던 일을 솔직히 증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인들은 이런 장면을 유심히 보았다. 또 이들이 북한 사회에서 비교적 부유층에 속하는데도 초라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습,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소유하는 것이 북한에서는 부의 상징’이라는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어떤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 선전 의도를 배제한 채 제작된 증거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고든 감독의 영화에 대한 북한의 검열 여부나 반응은 누구나 궁금해 할 대목이다. 로이터 통신도 이를 물었다. 이에 고든 감독은 ‘전작 <천리마 축구단>과 비교해 다소 따분하다는 평이 있는 정도’라고 로이터에 답했다.

‘반미의 나라’라는 확실한 증거도 보여줘

고든 감독과 달리 북한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서양 기자들은 호텔에서 창 밖으로 바라다보이는 평양 거리나 택시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평양 사람들의 표정만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서 본국에 보내기 마련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우스꽝스런 걸음걸이, 쓰러지기 직전의 경제, 냉전 시기로부터 이어져 온 반미 정서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나라가 바로 미국인이 연상하는 북한이다.

 
미국 언론들은 ‘바로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 찬 북한이 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형성된 북한의 모습이었다면, 이번 고든 감독의 <어떤 나라>는 ‘북한 역시 보통 사람이 사는 보통 공화국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정치색이 배제된 이 영화에서 ‘반미의 나라 북한’에 대해 오히려 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도 있다. <어떤 나라>에는, 북한의 한 일선 학교 수업 광경이 나온다. 거기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 ‘현재 제국주의 미국이 침략하고 있는 나라는 어딜까요?’ 이에 학생들의 입에서 주저 없이 나오는 대답 ‘이라크!’ 시카고 트리뷴은 이에 특별히 주목했다. ‘학생들의 대답은 이 영화를 보는 미국인들에게 북한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장벽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이 <어떤 나라>를 보는 시선은, 새롭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체로 담담한 편이다. 이는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나 <인디펜던트>가 이 영화에 대해 ‘경탄스럽다’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영화다’라고 극찬한 것과 대비해 보면 한층 더 선명해진다. 북한과 미국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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