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동산 큰손들 쥐구멍 찾기 바쁘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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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부동산 종합대책 목전에 둔 투기꾼 7인의 ‘비상 전략’

 
‘대한민국이 공산 국가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사상 최강의 부동산 종합 대책이 8월31일 발표된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투기가 사회 양극화를 조장하고 경제 운영 기조를 흔든다고 판단하고 토지 국유화를 제외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이나 5·4 대책이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취지였다면 이번 8·31 대책은 집값을 끌어내리겠다는 조처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부·여당이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매수 기회로 이용하던 부동산 투기꾼들도 이번에는 혼비백산하고 있다. 서슬 퍼런 정부·여당의 기세에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물건을 던지는 이가 나오는가 하면, 금융권으로부터 주택담보 대출로 돈을 많이 빌려 집을 사들인 이는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까짓 세금 내라면 내지, 뭐! 이번 정권도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라며 후일을 기약하는 투기꾼이 있는가 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은 있다며 온갖 편법을 동원해 날벼락을 피해 가려고 골몰하는 이도 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8·31 부동산 대책을 부동산을 매입할 기회로 판단하고 8월31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이도 있다.

<시사저널>은 ‘투기 1번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앞둔 투기꾼 7인이 어떻게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고 대처하는지를 추적해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가늠해보았다. 

“손해 나도 일단 팔고 보자”

김 아무개씨(48)는 요즘 밤잠을 설쳤다. 정부·여당이 언론에 흘린 8·31 부동산 대책의 세부 내용을 보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당초 예상보다 지나치게 강경한 조처들이 나올 것이 분명해지면서 이 난국을 돌파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투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재산을 늘렸던 김씨는 이번에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는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국가 맞냐?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김씨는 과거와 달리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김씨가 현재 소유한 집은 7채. 김씨 가족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단독 주택에 살면서 경기도 동탄 신도시에 분양받은 33평 아파트 1채와 파주·문산 지역 아파트 5채를 자녀 명의로 사들였다. 지금 사는 단독 주택 시가는 6억원 가량. 시가 3억원 가량인 동탄 아파트는 지난해 분양받았으므로 내년 말 입주하기 전까지는 등기하지 않아도 되므로 1가구 2주택에 해당하지 않는다. 입주한 후에도 최대 2개월까지 등기하지 않아도 되므로 김씨는 최대한 등기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동탄 아파트는 이미 5천만~1억 원이 올랐으나 조만간 팔기 힘들다.

자녀 명의로 사들인 파주·문산 아파트는 분양 당시 계약금 100만원씩만 내고 미분양 아파트 5채를 가계약했다.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면 프리미엄이 오르는 것이 상례이므로 아파트 한 채당 1천만~2천만 원씩 프리미엄이 붙으면 팔아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본계약을 체결하고 중도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지금이라도 팔고 싶으나 잔금을 모두 내고 등기할 때까지 매물로 내놓을 수도 없다. 등기를 마쳐도 1년 안에 팔면 실효세율(세금/집값)이 82.5%나 된다.

1가구 다주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녀 명의로 파주·문산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나 8·31 대책에 포함될 것이 분명한 가구별 합산 과세가 실시되면 김씨는 1가구 3주택 이상을 소유한 것이 된다. 따라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비롯한 보유세 부담이 커지고, 나중에 팔 때도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고민 끝에 김씨가 찾은 방법은 임대 사업이다. 일정 지역 안에서 5채 이상을 10년 이상 임대하면 종부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김씨는 동탄 아파트를 등기하기 전까지는 1가구 1주택자로 분류되어 세금 중과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8·31 대책을 지켜보아야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동탄 아파트는 세금을 물더라도 던진다는 방침이다.

“이제 부동산으로 돈 벌기 틀린 거 아냐?”

급한 불을 끈 김씨와 달리 이 아무개씨(47)는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보유 부동산을 손해를 감수하고 팔겠다고 나섰다. 이씨가 부동산 투자로 지금까지 모은 재산은 20억원 가량. 남편이 철도청 간부인 이씨는 서울 양천구 목동 7단지에 있는 아파트(50평)에 산다. 이씨는 올해 봄 충청남도 서산·당진 부근 토지 1천5백여 평을 평당 15만원에 매입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한보철강을 인수한 INI스틸이 확장 공사에 들어가면서 지난해부터 땅값이 급등했다.

 
정부가 지난 7월2일 서산·당진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을 때만 해도 이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 토지는 앞으로 최장 5년 동안 팔 수 없고 개발하려면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정책이 발표되자 이씨는 당황했다. 10월13일 법이 시행되면 팔지 못하고 장기 보유해야 할 것을 걱정해 서둘러 현재 시세인 평당 18만원에 내놓았으나 지금까지 전화 한통 오지 않고 있다. 8·31 대책을 앞두고 부동산 매매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원래 산 값으로라도 팔고자 한다. 세금을 낼 것을 감안하면 이씨는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이씨는 또 몇년 전에 사둔 강원도 철원 근방 땅 5백 평도 매물로 내놓았다.

이씨는 올해 목동에 있는 주상복합 건물 삼성트라팰리스 60평을 분양받았다. 분양가가 평당 2천2백만~2천3백만 원이나 된다. 분양가만 13억~14억 원이므로 종부세 대상이 된다. 이씨는 보유한 땅을 가능한 빨리 팔아 중도금과 잔금을 치른다는 방침이다. 이로써 이씨는 이제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떼겠다는 속셈이다. 이씨는 “8·31 대책을 두고보아야겠지만 현정부의 투기 방지 의지가 워낙 강해 당분간 부동산으로 돈 벌기 힘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가구별 합산 과세에 크게 반발

8·31 대책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크게 볼 것으로 예상되는 이는 돈을 빌려고 부동산을 많이 산 사람이다. 최아무개씨(42)는 동생과 함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세 채를 갖고 있다. 100평짜리 두 채는 동생과 자기 명의로 등기했고 나머지 126평짜리는 장인 명의로 올려놓았다. 전문 주식 투자자인 최씨 형제는 보유한 현금으로 매입 대금을 치를 수 없어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았다. 매달 내는 이자가 엄청났지만 분양가보다 2~3배나 오른 집값에 흐뭇했다.

 
최씨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동생과 달리 여의도에서 거주한다. 소유한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등기한 지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아 1가구1주택자이다. 내년 4월이 되면 1가구 2주택자가 되므로 두 주택 가운데 한 채는 처분해야 한다. 들어가 살지 않았고 등기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아 실효세율은 66%나 된다. 시세차익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빼앗기는 셈이다. 그렇다고 갖고 있자니 8·31대책에 따라 1가구2주택자로 분류되어 보유세 부담이 커지고 나중에 팔더라도 중과세를 면치 못한다. 최씨는 “지금까지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나 모두 미실현 이익이다. 지금 팔든 나중에 팔든 세금으로 모두 뜯기고 지금까지 은행에 갖다 바친 이자까지 감안하면 손해 보고 처분해야 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타워팰리스 100평에 거주하는 조 아무개 사장(55)은  가구별 합산 과세에 심하게 반발한다. 조사장은 3년 전 여의도에 살던 아파트는 장남에게 증여하고 증여세를 물었다. 의식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강남과 여의도 아파트 두 채가 지난해와 올해 엄청나게 오르면서 조사장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더욱이 아들에게 증여를 마친 상태이므로 1가구다주택자로 분류되어 세금상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후  장남이 여의도 아파트를 전세 놓고 아버지와 가구를 합쳤다. 8·31대책에 따라 가구별 합산과세를 하면 1가구2주택자로 분류된다. 1가구2주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아들이 나가 살거나 아들 명의 아파트를 처분해야 한다.  조사장은 “어이가 없다. 증여세까지 내고 대학생인 아들에게 넘겼는데, 나중에 아들이 결혼하면 그때 다시 집을 사라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일부 세력은 “지금이 매입 찬스” 코웃음

가정주부 박 아무개씨(40)는 이 와중에 사기까지 당했다. 박씨는 지난해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 아파트 40평형을 사들인 데 이어 지난 5월 초 이수 사거리 일대 방배동 주상복합 60평형을 평당 1천5백만원에 매입했다. 회사가 보유한 물량을 3천만원 가량 할인받아 계약하고 분양가에 되팔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안씨는 분양 대행 업체 직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터무니없이 높은 값에 매입한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박씨는 지난해 산 서울 강남구 천호동 소재 아파트 40평형을 처분하고 방배동 주상복합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려고 하나 여의치 않다. 8·31 대책을 앞두고 매수 희망자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금과 잔금을 내년 초 입주할 때 한꺼번에 내는 조건이어서 지금은 부담이 되지 않으나 천호동 아파트가 제때 팔리지 않으면 1억~2억 원 손해 보더라도 방배동 주상복합 아파트를 손절매할  각오다. 박씨는 “이 짓 하면서 지금처럼 몰리기는 처음이다. 1가구2주택자가 되어 세금을 많이 맞는 것보다 손절매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정부·여당이 집을 팔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중과세 유예 기간을 충분히 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드물기는 하지만 8·31 부동산 대책을 비웃는 투기꾼도 있다. 서울 강남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안 아무개씨(45)는 올해 초 재건축을 바라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사려다가 때를 놓쳐 아쉬워하고 있다가 요즘 쾌재를 부르고 있다. 지난달 8억5천만원까지 호가하던 은마아파트 31평형이 8월 들어 7억5천만~7억9천만 원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8·31대책이 나오면 은마아파트 31평형이 6억원 선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하고 매수 채비를 마쳤다. 안씨는 “2003년 10·29부동산종합대책이 나올 때 가격이 밀렸으나 다시 급등했다. 8·31 대책들은 위헌 소지가 많아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이번을 절호의 기회로 삼을 심산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를 자처하는 박 아무개씨(52)도 안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박씨는 8·31 대책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씨는 “말도 되지 않는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1가구2주택 중과세, 가구별 합산 과세, 판교신도시 전매 제한 같은 조처는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정책들이다”라고 말했다. 8·31 대책이 나오면 이해 관계자들이 집단으로 위헌 소송을 잇달아 제기할 것이고, 판교 신도시 입주가 끝난 후 판교 주민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면 정부·여당으로서도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씨는 지금 현금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집값이 급락했다가 곧바로 회복되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박씨는 지금까지 서울 은평구 재개발단지를 비롯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 ‘딱지(입주권)’을 사들였다. 박씨는 “강남·송파·서초에서만 투자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곳곳을 살펴보면 8·31 대책과 상관없이 짭짤한 곳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투자 수익을 챙겼던 박씨는 8·31 대책을 계기로 서울 강남·송파·서초·강동 지역으로 진출할 기회로 삼겠다는 태세이다.

8월17일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집값은 강남구 0.12%, 서초구 0.04%, 송파구 0.02%, 강동구 0.12% 떨어졌다. 7월 말에 비하면 낙폭은 크게 줄었으나 매매 자체가 자취를 감추었다. 투기꾼들이 부동산 시장을 강타할 8·31 부동산 대책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내집마련정보사 박상언 재테크팀장은 “지금 언론에 오르내리는 대책만 나오더라도 부동산 시장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부동산 시장 안팎에서 8·31 대책 내용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또 위헌 판결이나 조세 저항으로 인해 주요 방안들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강도 못지 않게 지속성을 담보할 중·장기 대책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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