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 지는가
  • 송재우 (메이저 리그 해설가) ()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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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요지경 천적 관계/ 박찬호, 오클랜드에는 ‘절절’

 
메이저 리그 야구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지금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가 LA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로 이적한 이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상대해 이긴 적이 있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실제로 박찬호는 2002년 텍사스에 둥지를 튼 이후 오클랜드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적이 없다. 다저스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더라도 상대 전적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통산 13경기 등판 1승8패에 방어율 7.07.

그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느 팀보다도 많은 패배를 당했고, 5경기 이상 상대했던 팀들 중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방어율이다. 홈런 허용수 또한 14개로 최다 홈런 허용 팀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박찬호의 처지에서 상대하기 싫은 천적 중의 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반대되는 천적 관계도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박찬호만 만나면 전전긍긍이었다. 지금까지 통산 9경기에 등판해 5승2패 방어율 2.45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김병현은 새미 소사·배리 본즈 ‘킬러’

이런 천적 관계는 선수 대 선수, 팀 대 팀, 선수 대 팀과 같은 형태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제아무리 강팀이건 스타 선수건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런 천적 관계가 없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사이영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뉴욕 메츠의 톰 글래빈 역시 천적 관계의 희생자 신세를 피하고 있지 못하다. 그것도 자신이 데뷔해서 16년간 몸 담았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우가 그렇다. 자신의 친정팀을 상대로 열 번 등판해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1승8패를 기록했고 방어율은 한층 더 나쁜 7.85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1승도 올해 7월에 간신히 올린 것이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라는 말이 철저히 맞아떨어진 사례이다.

현재 콜로라도 로키스의 선발 투수로 뛰고 있는 김병현과 새미 소사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소사는 올 시즌 현저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과거의 엄청난 파워를 보기 힘들어졌지만 한때 마크 맥과이어와의 홈런 경쟁 등 투수들에게 공포의 타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런 그도 김병현과의 통산 대결에서는 11타수 1안타에 삼진을 무려 7개나 당하며 속칭 ‘호구’를 단단히 잡힌 선수가 되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1안타가 바로 홈런이었고, 본인의 전성기에도 기록하지 못했던 안타를 올 시즌 대결에서 홈런으로 연결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양키스에 한 맺힌 다저스

통산 3백36승을 거두었고 사이영상을 무려 여섯 번이나 차지했으며 올 시즌 현재 1점대 환상의 방어율을 유지하고 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도 천적이 있다. 팀으로는 뉴욕 메츠로 10경기에 등판해 3승5패, 방어율 5.14로 늘 부진한 모습이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메이저 리그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메츠 소속의 마이크 피아자는 그를 상대로 19타수 8안타 0.421의 고타율에 안타 8개 중 4개가 홈런이다. 아마 이런 모습 때문에 2000년 경기 도중 마이크 피아자 선수의 머리를 맞히는(?) 투구를 하기도 했나 보다.

 
올해는 거듭된 무릎 수술로 아직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스테로이드 사용 파문으로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배리 본즈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절대적인 타자로 좌우 투수를 가리지 않고 터뜨리는 홈런은 공포의 대상이다. 웬만한 스타급 투수도 본즈의 파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히 말하는 좌투수가 좌타자에 강하다는 상식도 그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현역 최고의 좌투수로 꼽히는 랜디 존슨마저 그와의 상대 대결에서 3할이 넘는 피안타율에 홈런을 3개 허용했다.

그래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 바로 ‘천적과의 조우’이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매트 모리스는 14타수 2안타 무홈런으로 철저히 본즈를 봉쇄했다. 또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도 여덟 번 대결에서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좌타자에게 약점을 보인다는 언더핸드 투수 김병현도 비록 볼넷 4개를 내주었지만 일곱 번 대결에서 완벽하게 본즈를 막아냈다.

오래 전 얘기지만 다저스가 뉴욕의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와 일곱 번 상대했지만 단 한 번밖에 우승하지 못한 것도 장기간에 걸친 팀 간의 천적 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타자건 투수건 팀이건 천적은 야구에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천적 관계는 늘 팬들에게 볼거리를, 그리고 팀이나 선수에게는 긴장감을 높여주는 야구의 촉매제 구실을 한다. 이제 후반기에 접어든 야구, 이런 천적 관계를 살피는 것이야말로 더욱 흥미롭게 야구를 즐기는 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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