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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용 가구의 패러다임 바꾸다

독창적 디자인→자체 브랜드 개발→해외 시장 개척→업계 1위 고수

안은주 기자 ㅣ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8.29(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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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부터 달랐다. 가구 회사라면 혼수 시장을 겨냥해야 돈을 벌 수 있던 시절, 그들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사무용 가구에 주목했다. 퍼시스는 딱딱하고 멋없는 철제 책상과 의자를 편안하고 멋진 디자인을 가진 나무와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꾸었다. 철제 책상보다 두세 배나 비싼 가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고객들조차 퍼시스가 제안한 사무용 가구의 새로운 트렌드에 몸을 싣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내 사무용 전문 가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퍼시스는 1983년 남들이 보지 못했던 사무용 가구 시장을 보고 가구업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22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도 꾸준하게 성장해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해 왔다. 1등에게는 남다른 점이 숨어있게 마련이다. 퍼시스의 성장 비결에도 남다른 점이 많다. 

디자인상·품질혁신상 휩쓸어

퍼시스의 성공은 ‘바로 알고 서로 도와 하나 되자’는 경영 이념에서 출발했다. 퍼시스 양영일 사장은 “덩지 큰 기업을 흉내 내거나 업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만 남의 돈을 빌리지 않은 채 조금씩 늘려왔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퍼시스의 ‘쌍두마차’ 손동창 회장과 양영일 사장의 손발은 척척 맞았다. 두 사람은 한샘가구에서 동료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퍼시스를 함께 창업했다. 적극적인 손회장은 경영 전체를 아우르며 ‘바깥 살림’을 맡는 데 제격이었고, 건축사 출신인 양대표는 제품 품질이나 인력 관리와 같은 ‘안살림’을 잘 챙겼다.

   
 
ⓒ시사저널 윤무영
양영일 사장(위)은 가구 시장에서 새로 개척할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한 우물 경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사무용 가구는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던 1989년, 퍼시스는 국내 최초로 가구 연구소를 설립해 디자인과 기능에서 돋보이는 사무용 가구를 만들어냈다. 물건을 잘 팔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잘 팔릴 제품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양영일 사장은 “우리는 좋은 제품이 좋은 광고라고 믿었다. 그래서 국내외 디자인 인증과 산업재산권 등록 등을 통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추구했고, 자재나 생산 공정에서도 국내외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적용해 검증된 제품만 생산해 왔다”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퍼시스에서는 새로운 의자 하나를 만드는 데만도 20여 가지 내구성 테스트와 안전 테스트를 실시한다. 어른이 30만 번 앉아도 끄떡없고, 102kg의 무게를 올린 상태로 10만 번을 회전시켜도 고장나지 않는 의자여야 ‘퍼시스’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그 결과 퍼시스 제품들은 매년 각종 디자인상과 품질혁신상을 휩쓸었다.

물류비가 많이 들어 수출이 어렵다는 가구업계의 편견을 깨고, 일찌기 해외 시장을 개척한 것도 퍼시스의 남다른 점이다. 1986년 일본의 연구소와 병원에 사무용 가구를 처음 수출했다. 사무용 가구 분야에서는 국내 첫 수출이었지만, 업계에서는 1회적인 수출일 것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퍼시스는 곧바로 홍콩 대리점을 통해 26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까지 40여 나라에 제품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한 해 아시아와 중동 지역 등에 수출한 물량만 1백47억원어치가 넘는다.

퍼시스는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도 ‘바로 알자’는 경영 이념에 충실했다. 해외 대리점을 선정할 때 최대한 신중을 기하고 모든 점을 체크하지만 일단 대리점 관계를 맺으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퍼시스는 대리점 계약을 ‘결혼’에 비유하며 본사와 대리점이 신뢰를 바탕으로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 때 일이다. 퍼시스 제품을 가득 실은 배가 쿠웨이트로 향하다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수출 대금을 받은 상태여서 전시 상황을 핑계로 배를 되돌려도 무방했다. 그러나 퍼시스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배를 제3국으로 회항시킨 뒤 별도의 창고 비용까지 부담해 가며 바이어를 수소문해 물건을 건넸다. 바이어는 약속을 지킨 퍼시스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고, 이후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물로 주었다.  

1980~1990년대 가구업계에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라는 편한 길을 택해 돈벌이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퍼시스는 ‘죽기 살기’로 자체 브랜드를 통한 해외 시장 공략을 고집했다. 한푼이 아쉬운 중소기업 처지에서 당장 돈이 안 되는 브랜드를 고집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지만, 퍼시스는 자기네가 만든 제품에서 이름표를 떼지 않았다. 그렇게 고집을 피우며 해외 시장을 개척한 결과 퍼시스는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 우물을 넓고 깊게 파서 ‘대성공’

가격 전략에서도 여타 업체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일단 높게 정해놓고 실제로는 가격을 깎아주는 다른 업체와 달리 적정 마진을 항상 확보하면서 일정한 가격을 제시해 가격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 왔다. 환율이 인상되어 다른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올리던 시절에도 퍼시스는 기존 가격을 유지했다. 양영일 사장은 “‘퍼시스는 다 좋은데 값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고객도 있지만, 우리는 그 때마다 같은 품질의 제품을 가지고 비교해 달라고 요구한다. 품질과 디자인을 견주면 우리 가격은 절대 비싸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금’ 수준의 품질을 가진 제품을 ‘은’ 가격에 파는 것이라고 양대표는 덧붙였다.

   
 
ⓒ시사저널 윤무영
퍼시스가 연평균 32%씩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접목한 디자인 파워가 바탕이 되었다. 위는 퍼시스 디자이너들.
 
다른 가구 회사들은 생산비를 아끼려고 생산 공정을 아웃소싱하는 요즘 퍼시스는 대부분의 부품과 제품을 직접 만든다. 외부에 맡기면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품질이 퍼시스의 핵심 역량인데, 그 핵심 역량을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느냐는 것이다.

퍼시스 임직원들은 물건을 파는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살아 있는 사무 환경을 선물하는 것’이 자신들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외 대리점이나 소비자로부터 클레임이나 A/S 요구가 들어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책을 강구한다. 아주 오래 전에 수출해서 품절된 책상의 열쇠를 해외 거래선이 요구해오자 온종일 을지로 중고제품 상가를 뒤져 공급한 적도 있다. 요즘에는 고객이 제품을 주문하면 직접 받기까지 D+3일 납기를 준수하고, 고객이 부르기 전에 먼저 찾아가는 BS(Before Service)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직원을 배려하는 회사가 정말 좋은 기업일 것이다. 매년 꾸준히 성장하기는 했지만 퍼시스 역시 외환위기 때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었다. 사무용 가구의 주고객이 기업인데, 외환위기 때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퍼시스의 매출도 30%나 줄었다. ‘감원과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제 살과 뼈를 깎아내기에 바쁜 시기였다. 그러나 퍼시스는 신규 사업 투자라는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사무용 가구 개발과 생산에서 남은 인력과 설비를 ‘일룸’이라는 새 브랜드를 개발하는 데 활용한 것이다. 우아하고 화려한 가구가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 후반 단순한 디자인과 기능을 한층 보강한 새로운 트렌드의 가정용 가구 ‘일룸’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 퍼시스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한 우물을 파되 독불장군처럼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 우물을 파되 익숙한 분야에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며 점점 더 넓은 우물을 만들어 갔다. 사무용 가구 사업이 안정되자 ‘일룸’이라는 브랜드로 가정용 가구 시장을 개척하고, 이 브랜드가 안정된 뒤에는 ‘팀스’라는 교육용 가구 브랜드를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올 2/4분기에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는데, 교육용 가구 ‘팀스’가 약진한 덕이다. 양영일 사장은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에 15만원인데 초중고 책걸상 한조에 6만원이다. 이런 제품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만든 제품이었는데 반응이 좋다”라고 자랑했다.

최근 퍼시스는 병원용 가구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가구 시장만 해도 미개척지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한 우물을 파겠다는 퍼시스의 전략은 한동안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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