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인수할 계획 있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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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CJ엔터테인먼트 사장 인터뷰/“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세울 수도”

 
한국 영화판에서 밥 먹고 사는 인사 치고 박동호 CJ엔터테인먼트 사장을 ‘영화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는 것을 주저하는 이는 드물다. 박사장은 국내 최대 영화 배급 업체인 CJ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와 국내 최대 극장 체인점 CGV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 최근 독립 영화를 적극 지원하면서 한국 영화 제작 역량을 확장하는가 하면, 상업 영화 제작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 투자해 관객 3백50만명을 끌어들였다. 또 미국·중국과 합작한 <무영검> 개봉을 앞두고 있는가 하면, 제작비 2백억원을 들인 초대형작 <태풍>을 올해 말 개봉해 아시아 시장 전체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박사장은 CJ그룹이 1995년 영화산업에 진출할 때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업무를 맡아 2000년 8월부터 CJ CGV 대표이사로 일했다. 지금은 CJ엔터테인먼트·CJ CGV·조이큐브 등 세 회사의 대표이사 업무를 맡고 있다. 박사장은 1980년 제일제당에 입사해 기획실·육가공본부·멀티미디어사업부를 거쳐 23년 동안 CJ그룹에 몸 담았고, CGV극장 체인을 극장업계 1위에 올려놓아 그룹 내에서 신임을 얻었다.

SK텔레콤과 KT를 비롯해 내로라 하는 국내 통신업체들이 앞다투어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진입하면서 지금까지 CJ엔터테인먼트가 지존으로 군림하던 영화 시장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 경쟁 양상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대규모 자금이 영화산업에 들어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통신업체들이 지금까지 영화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선순환 구조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느냐를 놓고 따져보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영화 제작업체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관객은 좋은 영화를 보러 온다.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다시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재투자되거나 영화 제작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CJ엔터테인먼트 같은 제작 투자나 배급 업체는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발굴하고 정(情)·우애·가족 같은 우리 특유의 정서를 기가 막히게 이야기로 엮어가는 작가를 양성한다. SK텔레콤이나 KT가 영화 시장에 진입해 이와 같은 선순환 구조를 확대 재생산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DVD 불법 복제를 비롯해 영화 시장 존립 근거를 무너뜨리는 데 관여하거나 영화산업 수입 극대화에 필요한 수익 창출 구조를 붕괴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나 KT 자금이 들어오면 배우 개런티를 비롯해 영화 제작비에 낀 거품이 커지지 않겠는가.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시장 자체를 키워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자 한다. CJ엔터테인먼트는 수출 물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올해 수출 금액도 2천만 달러가 넘는다. 세계 시장에 호소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배급해 국내 영상물이 세계 시장에서 상영될 수 있는 길을 늘려 가고자 한다. 이와 함께 미국·중국·일본 영화업체와 손잡고 공동 제작이나 투자를 해 세계 영화 시장 정보를 현지에서 접하고 다국적 인력과 영화를 공동 제작하는 역량을 키워내고자 한다. 영화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 업체와 대등하게 합작하기 위해서는 창의력 넘치는 국내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CJ엔터테인먼트가 독립영화제 CJ AIFF를 정기적으로 열고 CGV에 독립영화 상영관을 상설화하는 것은 국내 영화 제작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우수한 국내 영화 인력을 발굴해 세계 영화인과 함께 공동 제작·배급해 전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CJ엔터테인먼트의 전략이다.

CJ엔터테인먼트는 앞으로 연예인 매니지먼트사와 제작사를 합병·매수해 영화 제작 체계를 수직적으로 통합하려는 계획이 있는가?
(수직 계열화 계획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CJ엔터테인먼트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기획해도 제작사와 협의가 여의치 않거나 작품에 맞는 스타를 캐스팅하지 못해 좌절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금처럼 한국 영화가 소수 스타 배우나 감독에 끌려다녀서는 홍콩 꼴 난다. 강우석 감독이 얼마 전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의 횡포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았느냐. CJ엔터테인먼트는 스타 배우나 감독에만 의존하지 않고 해마다 수십억원씩 손해보면서 독립 영화를 지원하며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 시나리오가 좋고 연출 능력이 검증되면 신인이라도 상업 대작 영화를 만들 기회를 주겠다. 앞으로 좋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연예 매니지먼트나 영화 제작 업체를 인수하거나 설립할 의향이 있다.

영화산업이 드라마나 가요에 비해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라는 장르를 한류 상품으로 키울 전략이 있는가?
이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중국은 수입 쿼터제를 실시해 한국 영화 수입을 제한하고 있고, 일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하다. 드라마나 가요와 달리 영화 장르는 마케팅하거나 시장에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관객을 감안한 작품만 제작한 관행도 아시아 영화 시장 진출을 제약하는 데 한몫 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수출과 합작을 늘려 시장 확대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미국·일본·중국과 합작한 작품이 올해 11월부터 차례대로 개봉한다. CJ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뉴라인시네마·중국 투자 업체와 3분의 1씩 투자한 <무영검>이 11월에 개봉한다. 이 작품은 중국·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이와 같은 합작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것이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 동북아시아 해상 무역권을 장악했듯이 한국이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문화 영역에서 청해진 같은 근거지를 마련해야 한다. 중국·일본과 적극적으로 합작해 그 문화적 근거지를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CJ그룹은 CJ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 사이에 상승 효과는 어떤가?
CJ CGV가 극장 사업으로 번 돈을 CJ엔터테인먼트에 공급해 영화를 제작한다.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한 영화를 CGV에서 개봉하고 상영이 끝나면 조이큐브를 통해 DVD로 론칭한다. 또 CJ미디어가 가진 영화 전문 케이블TV에 방영한다. 원소스 멀티유스 개념이 완벽히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처럼 ‘영화 상영 → DVD 출시 → 프로그램 제공(유료) → 케이블TV → 공중파’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수익을 발생시킨다. 최근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이나 인터넷 TV가 도입되면서 이 수익 창출 과정이 붕괴할 소지가 있어 걱정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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