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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라희씨, 통도 크네

삼성문화재단 총지휘…미술계 큰손 노릇 ‘톡톡’

안철흥 기자 ㅣ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9.09(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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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미술관 리움의 야경. 고미술·현대미술품 1만5천점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사설 미술관이다.  
최근 김세중 조각상을 받은 중견 조각가 안규철씨(50·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그는 지난해 로댕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서 20회 이상 전시회를 연 그에게 로댕 갤러리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전시 기획에서부터 기술적인 문제, 홍보까지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작가로서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무대 디자이너 김종석씨(34). 그는 지난 8월 20~2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복합 장르물 <퀸스 나이트>의 무대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대중 음악을 재해석해 춤·영상 등으로 시각화한 그의 첫 창작품이다. 삼성문화재단의 맴피스트(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과정에 뽑혀 2년간 미국에서 무대 디자인과 제작을 공부한 것이 힘이 되었다.

맴피스트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는 지금까지 모두 34명. 음악·무용·영상·연극·예술경영 등 분야가 다양하다.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과 <주홍글씨>의 변 혁 감독처럼 낯익은 이름도 있다. 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가 비슷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지만, 사기업에서 이런 제도를 실시했던 곳은 없었다. 그러나 현재 이 프로그램은 종료되었다. 

안규철씨와 김종석씨는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여서 만날 일이 거의 없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삼성문화재단에 대해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965년 고 이병철 회장이 사재와 고미술품 1천5백여점을 기증해 만든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의 문화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현재 이사장은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와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 이종상 전 서울대 박물관장, 안휘준 문화재위원장, 이세중 변호사,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가 이사로 있다. 

2004년 기업 메세나 실적의 95% 차지

삼성문화재단이 벌이는 일은 국악동요제 개최, 미술 출판, 음악 지원 사업 등 다양하지만, 무어니 무어니 해도 주축은 미술관 운영이다. 1982년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연 호암미술관을 시작으로, 서울 한남동의 리움, 태평로의 로댕갤러리, 잠실의 어린이 박물관이 삼성문화재단 소속이다.

특히 지난해 개관한 리움은 국보 35점과 보물 92점을 비롯해 고미술·현대미술 1만5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사설 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5천4백여점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리움의 규모를 알 수 있다. 리움은 마리오 보타·장 누벨·렘 쿨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가 3명이 함께 설계했다는 점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기획에서 완공까지 8년, 총공사비 1천2백억원이 들었다.

삼성문화재단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다. 홍씨는 재단 이사와 삼성미술관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병철·이건희 회장 부자가 문화재와 고미술 수집에 열성적이었다면,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나온 홍씨는 현대미술에 관심을 쏟았다. 홍씨는 지금까지 삼성미술관에서 치른 60여회의 전시회를 꼬박꼬박 챙겼다. 국내 미술계에 미치는 홍씨의 파워는 엄청나서, 그녀의 취향에 따라 미술계 유행이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막내 동생 홍라영씨도 미술 전문가인데, 현재 삼성미술관 수석부관장으로서 미술관의 전시 기획을 주관하고 있다.

호암미술관이 고미술 중심의 전시 공간이고, 현대미술을 다루는 로댕 갤러리가 협소한 점을 아쉬워하던 홍라희씨는 1995년 삼성미술관장으로 취임한 직후 리움 건립 계획을 세웠다. 홍씨는 리움의 기획에서부터 완공 과정까지 모든 일을 일일이 챙겼다. 지난해 10월 개관식 날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우리 세 건축가가 건축물 리움의 아버지라면 홍관장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전에는 수집품이 고미술 쪽에 치우쳐 있었는데 홍관장이 취임하면서 현대미술품을 많이 구입했다. 홍관장이 삼성 미술관 체제의 터를 닦았다”라고 말했다. 렘 쿨하스가 설계했고 현재 마무리 공사 중인 서울대 미술관도 그녀의 후원으로 건립되고 있다.

지난 6월 말 한국메세나협의회는 2004년도 각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내역을 공개했다. 그런데 메세나협의회 자료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지난해 기업 문화재단들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9백84억원. 이 중 1위를 차지한 삼성문화재단의 지원액이 9백22억원에 달했다. 2003년 통계에는 전체 지원액 6백88억원 중 삼성문화재단의 지원액이 5백35억원이었다(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내 개별 기업이 각종 공연 예술 장르에 후원한 금액은 따로 집계된다. 이들 모두를 포함하면 메세나협의회가 파악한 지난해 삼성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1천1백15억원이다).

“젊은 작가나 실험 장르에도 문호 열어라”

물론 메세나협의회의 최근 2년간 통계에는 리움의 건축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미술관 건립도 문화 인프라에 투자한 것이어서 문화예술지원금으로 집계된다). 리움 건축비가 포함되지 않은 1999~2002년 삼성문화재단이 집행한 금액은 평균 2백억원 정도. 그렇더라도 2~4위인 LG연암문화재단·금호문화재단·대산문화재단의 지원액을 모두 합해 60억(2004년)~1백50억원(2003년)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메세나 활동에서 삼성문화재단이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중앙포토
 
이 엄청난 지원 액수의 배경에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욕’이 숨어있다. 미술품 구입은 삼성문화재단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문화재단 관계자는 “미리 예산을 세워놓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액수를 말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해마다 최소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씩을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50여억원으로 국내 작품 1백7점과 해외 작품 8점을 샀다.

삼성문화재단이 미술계는 물론 국내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후원자로 순기능을 하고 있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공존한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삼성미술관은 젊은 작가나 실험적인 장르에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오노 요코전이나 나라 요시토모전에서 보듯 유행이나 명품을 좇는 데만 신경 쓴다는 인상이다”라고 말했다. 1회 관람료가 1만원(국립현대미술관은 7백원)이나 되고, 사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는 리움의 전시관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중견 미술가 임옥상씨는 얼마 전 서울 을지로 입구 삼성화재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조각가 구본주씨에게 ‘도시 일용 노임’ 기준의 보상금을 지급하려는 보험사에 항의하는 시위로, 동료 미술인들은 3개월째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임씨는 “삼성이 미술계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구본주 사건에서 보듯 결국은 재벌의 경제주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이 삼성문화재단과는 직접 관련 없는 일이지만, 삼성의 문화 마인드를 바라보는 현장 예술인들의 복합적인 내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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