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끄러운 기사 이렇게 막는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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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언론 관리 백태/광고로 회유하고 취재 기자 뒷조사까지

 
김호중(가명) 기자(32)가 삼성그룹 홍보실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경제부에 처음 발령 난 초짜 시절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삼성 직원은 김기자의 개인적인 소사를 언급하며 ‘OO를 축하한다. 꽃다발이라도 주고 싶다’며 전화했다. 김기자는 별 생각 없이 강남 호텔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삼성 직원은 김기자에게 축하 선물이라며 돈봉투를 건넸다. 또 2차로 즐기자며 인근 룸살롱에까지 데려갔다. 김기자는 “철이 없던 내가 그때 봉투를 받고 룸살롱에 갔다면 지금쯤 ‘삼성 장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회고했다. 

요즘 ‘삼성 공화국’이 화두다. 삼성 공화국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삼성 나팔수’ 언론 문제다. 지난 8월10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은 주요 언론사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삼성의 불법 정치 로비에 대한 언론 보도가 도청 논란에 매몰되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요즘 기자들 가운데 정치 권력을 두려워하는 사람 없다. 하지만 재벌은 경우가 다르다. 재벌 비판 기사를 쓰면서 마음 편한 기자는 적고, 특히 삼성의 압력은 집요하다.” <한겨레> 곽정수 대기업 전문 기자의 지적이다. KBS <추적 60분>이 KBS방송문화연구팀과 공동으로 7월15~22일 언론인 2백25명을 설문 조사 했다. 삼성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다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사를 쓰거나 보도할 때 부담을 느끼는지‘ 물어본 결과 70.4%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74.5%는 삼성에 관한 기사가 축소되거나 삭제되는 것을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삼성 기사를 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시사저널>은 삼성 비판 기사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메커니즘을 4단계로 나누어 분석했다. 기사에 소개되는 사례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직·간접으로 경험한 사례와도 다르지 않다.

1단계 : 평시에는 - 꾸준한 광고 관리

 
한 신문사 광고국 간부는 “삼성이 다른 대기업과 다른 점은, 문제 기사가 터질 때 반짝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꾸준히 언론 관리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 관리는 주로 광고비와 협찬금을 뜻한다.
<시사저널>은 2004년 삼성 광고비 지출 내역과 각 언론사의 광고매출액을 비교해 보았다. 14개 주요 방송사·신문사 광고매출액 가운데 삼성그룹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8%다. 삼성이 광고를 끊으면 언론 시장이 휘청거릴 정도다. 개별 신문사로 들어가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서울신문과 경향신문의 경우 전체 광고매출액의 17%가 삼성그룹 광고다. 흔히 ‘한경대’(한겨레·경향신문·서울신문(대한매일))로 불리며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던 신문들이 오히려 삼성 광고 의존도는 더 높은 것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김유진 실장은 “최근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몇몇 신문이 삼성 관련 보도에서는 건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라고 말했다. 김실장은 지난 8월4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경향신문이 삼성 미담 기사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은 2004년 텔레비전·라디오·신문·잡지 4대 매체에 광고비를 3천91억9천만원 지출했다. 텔레비전 광고비가 1천6백65억원으로 3대 방송사 광고수입액 대비 9%였다. 지난 8월3일 KBS <추적 60분> 팀은 <삼성공화국을 말한다>라는 특집 기획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내규 PD는 “요즘 <추적 60분> 광고는 24개 쯤 되는데 그 날은 광고 7~8개가 빠졌다. 삼성그룹과 계열사 광고였다”라고 말했다. 삼성 처지에서는 자사 비판 프로그램에 광고를 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언론사 처지에서는 삼성을 비판하는 보도를 할 때마다 그만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삼성이 광고로 기사를 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삼성그룹 홍보실은 “무리한 해석이다. 삼성에 극히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도 똑같이 광고를 집행하고 있다. 또 X파일과 관련해 삼성을 비판하는 보도는 거의 모든 언론사가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삼성 계열사 중에 가장 광고비가 많은 회사는 삼성전자인데, 신문에 4백77억원, 방송에 1천78억원을 썼다. 광고전의 물주가 삼성전자인 것이다. 한 광고기획사 부장은 “삼성전자 광고의 경우 조선·중앙·동아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사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홍보실이 아니라 그룹 홍보실이 집행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그룹 홍보실과 계열사 홍보실이 분리되어 있다. 만약 그렇다면 휴대전화를 파는 데 쓰여야 할 삼성전자 광고가 언론 길들이기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광고는 당연히 삼성전자 홍보실이 집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2단계 : 취재가 시작되면 - 전화를 걸어라

 
<추적 60분> 설문 조사에서 흥미있는 점은 기자들이 삼성 기사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로 광고 압력(28%)보다 삼성의 로비(40%)를 꼽았다는 점이다. 광고보다 무서운 삼성의 로비가 있다는 것인데, 바로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다.
삼성그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취재에 들어가게 되면 으레 취재 기자들은 전화와 뒷조사에 시달린다. MBC <PD수첩> 팀의 한 아무개 PD는 2년 전 삼성의 무노조 정책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일이 있었다. 그는 취재 도중 연락 없었던 학교 동창들과 지인들로부터 여러 통 전화를 받았다. ‘정보 보고를 해야 하는데 지금 어떤 걸 취재하는 거냐’는 식의 문의 전화였다. 그들은 홍보실 직원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삼성 직원이었다. 한PD는 “나 뿐만이 아니라 방송 작가들까지 삼성으로부터 동향 탐문 전화를 받았다”라며 불쾌해 했다.

동창을 찾아 전화 걸게 하려면 기자들의 출신 지역이나 학교 정보가 있어야 한다. 가끔 삼성은 이런 신상 정보를 모으려다 무리를 범하기도 한다. 최근 방송에 출연해 삼성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던 ㅈ기자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삼성 홍보실 직원이 ㅈ기자의 친한 후배에게 기자의 사적인 부분을 확인하는 전화를 한 것이다. 직장 동료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해당 홍보실 직원은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전화를 한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왕 로비를 하려면 언론사 간부를 스카우트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난 8월23일 참여연대는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중 언론인 출신 가운데 삼성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긴 29명의 신상도 공개되었다. 삼성 계열 재단 이사 19명, 삼성 계열 고문 5명, 사외이사 3명이었다. 구체적인 면면을 보면 김학순 동아일보 대표이사가 호암재단 이사로, 류근일 조선일보 주필과 한겨레 최학래 전 사장이 삼성언론재단 이사가 되었다. 삼성은 최근 언론인을 대거 영입해 이인용 전 MBC 앵커가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상반기에만 언론인 5명이 삼성 에 둥지를 틀었다.

3단계 : 기사를 막을 수 없다면 - 고쳐라

 
기사를 막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될 때 , 삼성은 차선책을 선택한다. 기사 게재를 늦추거나 기사의 제목, 기사의 톤을 낮추는 것으로 목표를 바꾼다. 한 언론사 경제부 ㅅ기자는 한때 <삼성가의 딸들>이라는 기사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세 딸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주식 소유 실태와 근황을 다룬 기사였다. 그런데 기사 게재 직전 삼성그룹이 해당 언론사에 ‘대담한 제안’을 해 왔다. 해당 언론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삼성가의 딸들> 기사 게재는 연기되었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어 기사가 출고되기는 했지만 이미 타이밍이 늦어 뉴스 가치를 잃어 버렸다.
지난 8월24일 ㄱ일간지 노조는 공정보도위보고서 ‘곧은소리’를 통해 이런 기사 변조 사례를 지적했다. 초판 기사에서 삼성에 각을 세웠던 기사가 배달판에서 모호한 표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7월25일 만평의 경우는 원래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등장하는 그림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파일 관련자’라는 모호한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요즘 언론사들은 삼성의 압력이 있기 전에 스스로 내부 검열을 통해 기사를 무디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 투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4단계 : 기사가 나오면 - 물타기 하라

 
천신만고 끝에 기사가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물타기 작전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2003년 3월 이건희 회장이 보광 휘닉스파크 스키장에서 코스 하나를 통째로 빌려 스키연습을 하는 모습을 찍었다. 이건희 회장은 좀처럼 사생활을 언론에 드러내지 않는다. 경호원은 기자를 들어 내치면서 취재를 막았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다음 주 보도를 강행하자 삼성그룹은 발행일에 맞추어 비슷한 사진을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뿌리며 ‘이건희 회장 건강 회복’ ‘경영에 자신감’ 등의 주제로 기사를 유도했다. 취재 기자의 맥이 빠진 것은 물론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국 최한수 팀장은 “삼성의 언론 정책은 기사를 막는 차원을 넘어서서 유리한 방향으로 기사를 움직이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예를 들어 9월7일 각 언론사는 ‘삼성, 국내 고급 인력 스카우트 중단’이라는 기사에서 마치 삼성이 여론의 피해자인 양 묘사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실무 인재 영입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삼성을 감시해야 할 직위에 있는 사람의 로비용 영입’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삼성은 논점을 흩트리는 방향으로 언론플레이를 해서 성공했다”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한성대·경제학과)는 기자들에게 딱 두 가지만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삼성의 사이비 민족주의 논리에 함몰되지 말라. 둘째, 삼성경제연구소 보도자료에 좌지우지되지 말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삼성의 노련한 언론 플레이에 말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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