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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그들 ‘화려한 부활’

1999년 해체된 ‘삼성영상사업단’ 출신들, 영화계 최대 인맥으로 떠올라

고재열 기자 ㅣ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9.11(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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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삼성영상사업단(위) 영화사업부 소속 직원 45명 중에 30명이 삼성에 남지 않고 영화판으로 뛰쳐나왔다. 30명 중에 25명 정도가 영화계에 남아 있다.
 
노비스 엔터테인먼트 노종윤 대표는 1999년의 생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 삼성영상사업단 해체가 전격적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팀장을 맡고 있던 그는 졸지에 영화판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가장 뼈아픈 것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쉬리>의 개봉도 보지 못하고 사업단이 해체된 것이었다. 영화계에 뿌린 씨앗을 거두기만 하면 되는 시기에 사업을 접는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이엠픽쳐스 최 완 대표에게도 사업단 해체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사업을 총괄했던 그는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본격적으로 전열을 가다듬어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나 SK 등 다른 대기업과 달리 삼성영상사업단은 <비트> <처녀들의 저녁식사> <약속> 등 연이어 흥행작을 내놓으면서 영화계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사업단이 해체되자 영화사업부 소속 직원 45명 중에 30명이 삼성에 남지 않고 영화판으로 뛰쳐나왔다. 30명 중에 25명 정도가 영화계에 남아 있는데, 사업단 출신은 이제 충무로의 최대 인맥으로 떠올랐다. 노대표와 최대표 외에도 최진화 강제규필름 대표이사, 최건용 롯데시네마 이사, 키플러스픽쳐스 김은영 대표, 워너홈비디오코리아 이현렬 대표 등이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 출신들과 달리 삼성맨들은 그룹 복귀 않고 영화판에 뛰어 들어  

삼성영상사업단 조성과 해체, 그리고 그 이후 사업단 출신 삼성맨들의 활동은 삼성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삼성의 기업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일단 사업단 해체 후에 사업단 출신들이 영화판에 쏟아져 나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우나 SK 등 다른 대기업과 달리 유독 삼성 출신만 본사에 복귀하지 않고 영화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영상상업단을 설립하면서 주창한 것은 인재 양성이었다. 최대표는 “이회장은 삼성영상사업단 설립 목적에 대해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자는 것이다. 10년 내에 우리도 스필버그 같은 천재를 발굴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사업단 직원들은 자기들을 헌신짝 버리듯 내친 회사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해체되기 전 사업단은 비서실로부터 여러 차례 감사를 받았다. 노대표는 “사업단을 숙청하기 위한 순서였던 것 같다. 거의 범죄자가 되어 수사당하는 느낌이었다. 직원들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라고 회고했다. <쉬리>가 대박이 터지자, 삼성측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사업단 소속 직원들을 다시 끌어모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사업단 직원들은 삼성 타이틀을 버리고 영화판에서 희망을 찾았다. 이후 삼성은 삼성벤처캐피탈을 통해 2백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싸이렌><아이 러브 유><원더플 데이즈> 등에 투자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영화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시사저널 한향란
최 완 아이엠픽쳐스 대표“삼성영상사업단 해체로 삼성은 문화적 감수성을 잃었다. 문화 마인드 부재가 삼성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 직원들이 몰려나오자 영화계는 이들을 적극 수용했다. 삼성영상사업단이 사업 파트너로 선정해 적극적으로 후원한 덕에 영화계 중추 세력으로 성장한 강우석 신 철 차승재 심재명 등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삼성맨들은 삼성이 뿌린 씨앗을 거두며 영화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노대표는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와 짝을 이루었다. 그는 차대표를 도와 싸이더스가 영화 제작과 연예인 매니지먼트, 음반 제작까지 아우르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되도록 키웠다. 이후 주로 자금 부문을 맡은 그는 로커스홀딩스(현 플래너스)의 자본을 투자받으면서 싸이더스를 영화계 최대 제작사로 키웠다. 특히 그는 <봄날은 간다><역도산>을 해외 제작자와 공동 제작해 영화 시장을 키웠다. 

영화 제작투자사 아이엠픽쳐스를 만든 최대표는 신씨네 신 철 대표와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신씨네가 제작한 <엽기적인 그녀>에 투자한 그는 시네마서비스의 배급 라인을 통해 영화를 와이드 개봉해 대박을 터뜨렸다. 이때의 성공을 계기로 그는 재기할 발판을 마련하고 MVP창업투자와 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본격적인 영화 투자를 시작했다.

노대표와 최대표 외에도 사업단 출신 삼성맨들은 대부분 자금과 투자 부문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영화산업이 확대되면서 이들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탁월한 관리 능력을 지닌 삼성맨들에게 영화계는 회계 장부를 맡겼다. 노대표는 “영화에는 영화의 논리가 있고 자본에는 자본의 논리가 있다. 영상사업단에서 잔뼈가 굵은 삼성맨들은 이 역할에 가장 적합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맨들, 자금과 투자 부문에서 맹활약

삼성맨들이 돋보이는 점은 영화산업이 새로운 판을 짤 때마다 이를 앞에서 이끈다는 점이다. 싸이더스를 플래너스로부터 독립시켜 코스닥에 등록시키고 KT로부터 2백8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노대표는 이후 독립해서 노비스엔터테인먼트를 세웠다. 회사를 세우면서 그는 <허준><올인>의 최완규 작가와 <다모>의 정형수 작가 등 스타 드라마 작가들이 모인 에이스토리와 제휴했다. 이후 제작 영역을 드라마로까지 넓히기 위한 포석이었다.

   
 
ⓒ시사저널 한향란
노종윤 노비스엔터테인먼트 대표“삼성은 늘 시장을 독점하려 했다. 영화계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오히려 우리 영화 발전에 해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엠픽쳐스의 최대표는 영화 투자를 과학화 하는 데 기여했다. 회사 설립 이후 그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과학적인 투자를 위한 근거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각종 영화산업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시장에 내놓았다. 최대표는 신씨네의 신 철 대표와 함께 컴퓨터 그래픽으로 리샤오룽(李小龍)을 부활시켜 영화를 제작하는 ‘이소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제작비가 1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삼성영상사업단 출신들은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사업단 출신은 ‘오삼회’라는 모임을 조직해 매월 한 번씩 골프모임을 가지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최대표는 “영화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다. 정보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질 수 있다. 사업단 출신 중에서도 혼자 머리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낙오했다”라고 말했다. 

삼성이 다시 영화사업을 시작한다면 사업단 출신들은 다시 돌아갈까? 최대표는 “삼성에 흡수되기에는 우리가 너무 커버렸다. 우리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대부분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모아 놓아도 집적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삼성은 늘 시장을 독식하려 한다. 삼성 같은 거대 기업이 영화계에 남아서 성장했다면 오히려 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소니와 달리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삼성에게 영화사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최대표는 “엔터테인먼트산업 분야에서 삼성은 두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하나는 드림웍스를 인수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영상사업단을 해체한 것이다. 삼성은 문화적 감수성을 잃었다. 문화 마인드 부재가 삼성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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