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본 달러가 한국 밥상 물리랴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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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단 증시, 외국인 투자자는 어떻게 움직일까

 
한국 주식 시장은 한국인의 무대가 아니다. 무대의 주인공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거래소 시장 시가총액의 42%를 보유한 한국 증시의 최대 주주다. 기관과 개인의 보유량을 합한 것보다 많다(표 참조). 전세계 32개 주요 국가의 주식 시장 중 우리 나라는 헝가리 핀란드 멕시코에 이어 외국인 비중이 네 번째로 높다.

외국인들은 최대 주주답게 시장 수익률도 가장 높다. 증권선물거래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이 올 초부터 8월 초까지 거둔 매매 평가 이익은 4천7백78억원이 넘는다. 같은 기간 개미들이 1조6천3백40억원어치를 손해 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다(표 참조).

지난해까지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외국인은 기관보다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가가 500대이던 2003년 3월부터 최근까지 약 30조원어치를 순매수한 외국인들은 종합주가지수 600~900 선에서 26조9천34억원을 순매수했고, 특히 700선에서 집중적으로(12조3천9백54억원) 사들였다. 지수가 1000을 넘어서자 3천2백56억원을 순매도해 차익을 실현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내 기관투자자와 개미들은 계속 팔아치웠다. 결국 이 기간에 돈을 번 이는 외국인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넘어선 요즘외국인 투자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한국 시장에서 단물을 다 빼먹은 외국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발을 빼기보다는 더 투자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이정호 이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자 매력이 떨어진 선진국 시장 대신 동아시아 지역에 투자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한국 시장에는 지난 2년간 들어왔던 돈의 두 배 가량(약 60조원)을 더 투자할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세간의 우려와 달리 한국 증시에 유입된 외국 자본의 대부분은 중·장기 자금이기 때문에 전쟁과 같은 큰 이변이 없는 한 갑작스럽게 빠져나갈 염려는 적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유입된 자금의 60%는 미국의 뮤추얼 펀드와 같은 중·장기성 자금이고 단기성 헤지펀드는 10%도 채 안된다. 한국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은 미국인이 6천7백39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과 일본인이 그 뒤를 이어 많다(표 참조).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오는 외국계 증권사나 외국계 투자은행들도 한국 증시의 미래를 낙관하며 외국인의 투자 폭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메릴린치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이며, 앞으로 1년간 한국 증시의 수익률이 30%에 달할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지난 9월21일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미국 투자자 탐방 자료에서도 대부분 투자자들이 4/4분기 아시아 증시를 낙관하고 있고, 특히 한국과 일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증시를 가장 비관적으로 보던 씨티그룹마저 적립식 펀드를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이어진다면 3년 안에 2000포인트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60조원 가량 더 투자할 여력 있다”

이런 낙관론이 쏟아지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 증시는 아직도 싸고 맛있는 재료가 널려있는 목 좋은 시장이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UBS 서울지점 안승원 전무는 “외국인 투자자가 쉽게 들어갔다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한국 증시는 경쟁력과 업종이 다양한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시장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이 속해 있는 시장이고, 전반적으로 저평가된 종목이 많아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곳이다. 몇 번 조정기를 거치기는 하겠지만 현재 42% 안팎인 외국인 주식 비중은 60%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종합주가지수가 최고점을 찍었던 1994년과 지금의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져 외국인 투자자들이 더욱 더 높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글로벌 경쟁과 구조 조정에서 살아 남은 한국 기업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높아지고 투명해져 외국인이 투자하고 싶은 회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과 증시 환경은 1994년에 비해 차원이 달라졌다. 11년 전 기업들은 과잉 설비 투자를 일삼으면서도 재무제표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기업 정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불법 수익을 거두는 일이 다반사였다. 분식 회계가 횡행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기업들은 매우 투명해졌고, 거래소에 공정 공시제도가 정착했다. 어떤 투자자라도 기업 경영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기업 실적도 상당히 좋아졌다. 지난 11년간 상장 회사들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7%에서 약 15%로 상승했고 영업이익률도 9.9%에서 11.8%로 개선되었다. 배당수익률도 0.9%에서 2.2%로 올랐다. 반대로 상장 회사들의 평균부채비율은 334%에서 96%로 낮아져 재무 구조가 탄탄해졌다. 

그러나 이 기업들의 주가는 11년 전보다 낮다. 1994년 주가수익비율(PER)은 무려 19배에 달했는데, 현재는 10배 수준이다. 선진국의 15~20배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앞으로도 30~50% 이상 주가 상승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미국 금리인상 등 변수는 여전

게다가 증시를 둘러싼 환경 또한 상당이 좋아졌다. 개미들의 투기성 자금이 시장을 움직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수급 상황까지 눈에 띄게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개미의 보유 비중은 줄어든 대신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이 늘고, 일반인 사이에서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면서 기관투자가의 힘이 세진 것이다. 주식형 펀드로 유입되는 자금은 매달 늘어, 9월 들어 주식형 펀드로 새로 들어온 자금만 7천억원(순수 주식형 기준)에 달한다. 이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증시는 안정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세계 경제와 증시가 전반적으로 호황이어서 주식 시장으로 들어갈 자금이 풍부하다는 점도 한국 증시를 낙관하게 하는 배경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세계 증시는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데다 세계적으로 남아도는 유동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탁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외국 자본의 성격상 더 좋은 시장만 있으면 언제든지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고, 최대 주주가 빠져나간 한국 증시는 또다시 허리가 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가장 주시하는 것이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이사는 “미국의 금리가 갑자기 많이 오르면 한국 시장에 왔던 외국 자금이 다시 미국 시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잇단 금리 인상으로 단기 금리는 이미 한국이 미국보다 낮다.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금리는 중·장기 금리인데,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한국이 미국보다 높다. 현재 미국 국채 10년물이 4.2% 안팎에서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고 미국 시장 금리가 5%대를 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연방 금리가 1%에서 3.5%까지 2.5%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미국의 국채 10년물과 모기지 금리는 오히려 0.4%포인트, 0.5%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중·장기 금리마저 역전되면 한국 주식 시장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가 향방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보를 바꿀 수 있는 요인이다. UBS 안승원 전무는 “유가 70 달러까지는 주식 시장도 끄떡없지만 100 달러까지 올라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기업들이 비즈니스 플랜을 다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 추이는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금리나 유가에 비해 북한 핵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편이다. 최근 북핵 문제가 타결되었을 때도 외국인들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배용주 과장은 “주식 시장도 포커판처럼 돈 많은 자가 먹게 마련이다.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 한국 증시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간접 투자를 정착시켜 수급 기반을 안정화하는 길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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