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무릉도원’ 부활하다
  • 베이징 · 정유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5.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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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실 최고의 정원 ‘위안밍위안’ 복원·공개…생태·환경 파괴 논쟁 불러

 
‘정원 중의 정원(万園之園)’. 청나라 시대 황궁의 정원으로서 황제가 기거하며 정무를 처리하던 원명원(圓明園)을 일컫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청계천 복원 문제가 떠들썩하지만,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는 요새 원명원의 복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화원(?和園)과 함께 중국 정원의 두 걸작 중 하나로 불리는 원명원은 청나라가 가장 강성하던 시기인 1709년 강희제 때 건립되기 시작해 건륭제 때까지 6대 1백50여 년에 걸쳐 건축한 중국의 대표적인 황가 원림이다. 자연과 인간, 동·서양과 신화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곳으로서 그 다양함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원명원을 옛 중국의 영화를 알려주는 유적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폐허로 변해버린 이후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중국인들의 비상한 각오로, 지난 1백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황폐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원명원이 예전의 화려함을 되찾아 오는 10월1일 중국 국경일에 맞추어 공개된다. 원명원의 가장 큰 특징은 수경 원림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원명원은 가장 규모가 컸던 복해를 비롯해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이 인공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호수를 판 흙으로 낮은 인공 구릉을 만들어 경관을 조성하고 산, 나무, 돌, 다리 등을 원림의 법칙에 따라 조화롭게 배치했다.
 
“유적지를 오락장으로 만든다” 비판도

원명원은 깨끗하고 맑은 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물이 말라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 호수에 다시 맑은 물을 가득 채워 넣고 그 위로 쪽배가 떠다니게 만든다. 호수 밑바닥에는 20㎜ 두께로 진흙을 깔고 전기선을 넣어 조명 시설도 설치했다. 유람객들이 뱃놀이를 하고 원림의 야경도 감상할 수 있는 수상 공원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원명원 호수에 물을 채우는 일은 약 1년 간 건조 등 준비 작업을 마친 후 지난 9월 초에 시작되었다. 50만평에 이르는 호수들을 모두 채우는 데에는 꼬박 보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원명원으로 들어오는 물은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흘러 들어간다. 제일 먼저 도달하는 곳은 기춘원. 이어 복해와 장춘원 순으로 물을 채워나갔다. 그러자 호수 바닥에 있던 진흙과 잡초들이 모두 물밑에 잠겼으며 원명원 본래의 화려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어 천연 진흙을 호수에 다시 채워 방수 처리를 했다. 

그러나 원명원이 이처럼 옛모습을 되찾기까지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5월 중국 베이징 대학의 전문가 6명은 원명원을 파헤쳐 건설을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유적 파괴 행위라고 주장했다. 원명원에 유람 시설을 조성함으로써 역사적인 유적지를 오락장으로 만든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약탈당한 문화재 못 찾아 ‘절반의 부활’

무엇보다 환경 및 생태 보존 문제가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환경 전문가들은 원명원 호수의 방수 공정이 습지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고기들이 죽어가고 식물이 말라가는데 어떻게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유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방수막을 설치하면 오염을 야기해 습지 식물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할 것이며, 이로 인해 호수는 곧 죽은 호수로 변할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원명원이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동안 원명원 호수 밑에서는 물이 말라가면서 수상 생물이 대규모로 죽음을 맞았다. 2002년에는 약 3만5천kg에 달하는 어류가 물 부족으로 죽었다. 장춘원의 연꽃들은 물 부족으로 성장기가 짧아짐에 따라 말라죽고, 언덕 위에 자라던 수양버들 등 수목 또한 말라 죽어갔다.
 
원명원은 토질 특성상 습지를 보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원명원의 호수 토질이 흡수성이 매우 강하고 매년 7~8개월 동안은 건조한 상태로 있어 근본적으로 습지 생태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명원 복원 반대론자들이 내놓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 베이징 시가 심각한 물 부족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시 전체가 물이 부족해 허덕이는 판에 원명원에 무제한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들끓는 반대 여론에 부딪쳐 원명원은 한차례 공사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호수 복원 및 방수 공정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난 7월 공사가 재개되었다. 중국임업대학 노어궈춘(羅國春) 생태학 교수는 “외부에서 끊임없이 호수의 물을 채워나가고, 호숫가 식물들의 생존에 필요한 물을 계속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므로 방수막을 설치한다고 해서 호수가 죽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원명원의 규모는 황제의 집무실이자 거처라고 할 수 있는 베이징 한복판의 고궁(자금성)을 훨씬 능가한다. 고궁의 총 면적이 21만7천여 평인데 비해, 베이징 교외에 자리잡은 원명원은 그 다섯 배인 1백4만9천여 평에 달한다. 기록에 의하면 옹정, 건륭, 가경, 도광, 함풍 5대 황제가 원명원에 머문 기간은 평균 1년의 절반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옹정제는 원명원 안에 조정 관서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정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는데, 건륭제 때에 이르러 이 관서들은 더욱 완벽하게 갖추어져 또 하나의 작은 조정을 이루었다. 원명원이 부활되는 것은 곧 화려한 청 왕조의 부활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은 의외로 담담하다. 원명원을 대표하던 호수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원명원이 파괴될 당시 영국·프랑스가 약탈해 간 문화재들을 되찾지 못하는 한 이를 진정한 역사의 부활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다. 베이징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주리핑(朱麗萍) 씨는 “오랜 세월 보존해온 역사의 현장을 이제 와서 뒤바꾸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는 오히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 복원을 미루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원명원의 새 단장 소식에 오히려 들뜨게 될 쪽은 아무래도 한국의 여행업계일 성싶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을 위한 베이징 관광 코스에 필수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톈안먼(天安門) 광장과 고궁, 그리고 이화원이었다. 여기에 원명원이라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추가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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