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청렴위, 권철현 의원 검찰 고발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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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원 알선 수재 혐의로-권의원 '돈 받은 적 없다' 펄쩍
 
국가청렴위원회(청렴위·위원장 정성진)가 지난 9월28일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을 알선 수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이름을 바꾼 청렴위는 우리 사회의 부패를 뿌리 뽑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다. 청렴위가 검찰에 사건을 고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파장이 예상된다. 사정기관 핵심 관계자는 9월28일 늦게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동아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5대 국회 때 부산 사상에서 등원한 권의원은 3선 의원이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과 정보위원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중진 의원이다. 그는 내년에 실시될 지방자치 선거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유력한 부산시장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어 왔다.

청렴위가 권의원을 고발한 핵심 내용은 공사를 수주해 주는 대가로 사업가 정 아무개씨로부터 2001년에 4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정씨는 진작부터 교도소에서 이런 주장을 해왔다. 그는 2002년 12월16일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되어 4년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그러나 권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정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정씨에 대해)특별한 기억도 없다”라며 정씨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청렴위가 지난 9월26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권의원을 고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씨의 주장이 상당 부분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2003년과 2004년 검찰 고발 사건이 한 건도 없었던 청렴위는 이번 사건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두고보아야 한다. 청렴위가 고발한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렴위 최종 의사 결정 기구인 전원위원회 구성원 9명 가운데 8명이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사건이 구체화한 것은 지난 6월28일 사업가 정씨측이 청렴위에 관련 내용을 제보하면서부터다. 정씨는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도운 사람들이 한 번도 면회 오지 않는 행태에 실망했고, 자신을 침몰시킨 ‘사업가로 위장한 조직폭력배’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를 접수한 청렴위는 ‘조직폭력배’와 관련한 부분은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에 넘겼고, 정치인 부분은 조사를 계속해 왔다.

<시사저널>은 정씨가 옥중에서 인척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자칫 죄인의 신분으로 근거 없이 폭로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아야겠다는 약간의 정의감 때문’이라고 뒤늦게 폭로에 나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정씨는 “2001년 5월 중순부터 2001년 11월 중순까지 4회에 걸쳐 현금 4천만원을 권의원에게 주었다. 또 서울 종로 광화문에 있는 유흥주점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권의원에게 7천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 두세 번은 권의원이 술을 먹자고 직접 전화를 했었다”라고 주장했다. 2001년은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이 정가를 휩쓸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될 때로, 권의원은 당시 이회창씨의 비서실장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청렴위는 서울구치소로 정씨를 직접 찾아가 장시간 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리에서 정씨는 제보 내용을 확인하며 내용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정씨는 옥중 편지에 권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 4천만원 가운데 1천만원은 본인이 직접 한나라당 대변인실에서 권의원을 만나서, 나머지 3천만원은 권의원과 친분이 있는 한 아무개씨를 통해 전달했다고 기록했다.

2001년 5월 자기가 원장으로 있던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GCS인증원장실에서 현금 1천만원을, 10월과 11월에 각각 현금 1천만원을 한씨를 통해 권의원에 건넸다는 것이다. 그는 또 2001년 6월 중순에는 한씨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 있던 한나라당 대변인실에 찾아가 현금 1천만원을 은행 돈봉투 3개에 집어넣어 A4 용지 상자 하나가 들어가는 가정용 가방에 넣어 권의원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4천만원 가운데 2천만원은 부산의 한 구청이 발주한 환경 관련 공사를, 나머지 2천만원은 거제도·부산항 환경 처리 시설 공사를 수주하도록 도와주는 명목으로 권의원에게 돈을 주었다고 한다. 정씨는 돈을 전달한 전후 상황을 그림처럼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의 주장에 대해 권의원은 펄쩍 뛰고 있다. “정씨를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돈을 받은 일은 결코 없다. 국회의원이 관급 공사 수주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권의원은 또 “한 아무개씨는 고향 후배여서 알고 지냈지만, 그에게서 돈을 받은 적은 없다”라고 주장했다(권철현 인터뷰 기사 참조).

경남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정씨는 경영체제 전문 인증기관인 GCS인증원 원장을 지냈다. 부친은 부장판사를 지냈고, 가까운 인척 가운데는 현직 검사도 있다.

그가 권의원을 만나게 된 것은 정씨의 장인인  김 아무개 회장이 운영하던 상장 회사인 ㄷ사에서 함께 일했던 한 아무개씨를 통해서다. 정씨는 1995년부터 1999년 초까지 ㄷ사 기획실장을 지냈고, 한씨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ㄷ사에서 근무하면서 정씨의 장인인 김회장에게 환경사업 자문에 응했다.

한씨는 당시 권의원과 친분이 있었다. 권의원은 “기억 나진 않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한씨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대학교를 나온 한씨는 북한을 갔다 오는 등 북한 사정에 밝아 국가정보원에서 강연 활동도 하고, 권의원의 의정 활동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는 현재 리비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2001년 2월 한씨의 소개로 장인과 함께 63빌딩 한 고급 식당에서 권의원을 처음 만났다. 당시 한씨는 ㄷ사에서 부산의 한 구청이 발주한 오·폐수 처리 시설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국회의원이 끼면 수주하기가 쉽다고 해서 권의원을 만났다”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장인 김씨와 권의원이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지만, 권의원은 “잘 모른다. 기억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측이 권의원을 만난 뒤 추진했던 사업들은 모두 실패했다. ㄷ사가 입찰 서류들을 제출했지만 다른 업체가 수주했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들은 민자를 유치해 추진하는 사업인데, 환경 관련 기업으로 거듭나려던 ㄷ사가 참여하고 싶어했다. 정씨는 이 일과 관련해 결국 권의원의 술 상무를 한 것으로 되어 버려 교도소에 있으면서 후회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청렴위의 고발이 있기 전에 이미 검찰도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미 정씨 측근들을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와 가까운 한 인사는, 애초 조폭 부분에 국한되었던 검찰 수사가 정치인 부분에 대한 수사까지 확대되었다고 전했다.

권의원은 “아무 문제가 없다. 정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강력하게 반론했다. 정계에 입문한 뒤 순탄한 길을 걸으며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권의원은 최대 고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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