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의 낙원에서 사라지는 순록들
  • 글·이성규(다큐멘터리 작가)/사진-김은정(다큐멘터리 ()
  • 승인 200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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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타이가 숲에서 개체수 격감…뿔 밀수출 등이 원인

 
몽골 북서부의 러시아 접경 지역. 타이가라고 불리는 한랭 삼림지대에는 동화의 주인공 같은 산악 유목민이 살고 있다. 차탕족이다. 몽골어로 ‘순록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 그대로 차탕족은 부족 전체가 순록을 따라 다니며 산다. 그들이 살아온 자연 환경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한겨울에는 영하 40℃의 혹한이고, 한 여름에조차 이들의 생활 터전인 해발 2,500m 고산 지대는 영하의 날씨로 얼어붙기 일쑤다. 이렇게 험한 동토의 땅에 문명의 바람으로 인한 위기가 찾아들고 있다. 차탕족 삶의 전부라고 할 순록이 위기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순록은 사슴류 가운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가축화했다. 차탕족의 유목은 반(半) 야생 반(半) 가축인 순록 무리를 사람이 따라 다니는 기르는 형태다. 이같은 유목은 시베리아 일대와 북유럽·그린란드 지역에서 행해진다. 북유럽 핀란드의 랩족, 시베리아 중부의 투바족과 사모예드족. 시베리아 동북부의 츄크치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순록 유목을 하는 것이 몽골의 차탕족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 차탕족은 러시아 독립국가연합 투바 공화국의 투바족 계열인데, 언어는 투바 방언을 사용한다. 현재 2백여 명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순록과 함께 사는 차탕족

순록을 가축화해 인간 근처에 둘 수 있었던 것은 소금이다. 소금은 인간이 순록을 길들일 수 있는 물질이었다. 순록은 인간에게 젖과 가죽과 고기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차탕 사람들이 순록을 함부로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단지 늙은 순록만을 골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으로 삼는다.
  
 차탕족의 여름 방목지는 수목 한계 지점을 넘어서는 고산 툰드라 지대다. 한여름이라 하더라도 1m 아래는 꽁꽁 얼어붙은 땅이다. 여름에도 일교차가 심해 7월 말 한낮의 기온은 영상 20℃까지 올라가지만 해가 떨어지면 영하로까지 떨어진다. 덥지 않으며, 모기가 없고 먹이가 풍부해 고산 툰드라 지대는 순록의 여름철 서식지다.
 
몽골 타이가 숲 순록의 여름 서식지는 섬과 같다. 순록이 가장 싫어하는 모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침엽수림의 바다에서 섬처럼 솟은 고산 툰드라이다. 순록은 자신의 체온을 낮출 수 있는 고산 지대로 올라감으로써 모기를 피한다. 모기는 동물의 입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체온을 감지함으로써 피를 빨아 먹는다. 순록은 추운 곳에서 스스로의  체온을 낮춤으로서 모기의 추적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순록들에게 1993년대 초반부터 야금야금 위기가 찾아들었다. 순록은 그때까지 1천5백마리였던 것으로 몽골 당국의 통계 자료는 소개하고 있다. 현재 순록의 개체 수는 그 3분의 1인 5백여 마리이다.

1993년부터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순록의 뿔을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중국 상인들도 순록의 뿔을 거두어 갔다. 중국인들이 구매한 순록 뿔의 상당 부분은 한국으로 밀반출되어 녹용으로 판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뿔 잘린 수컷은 암컷을 임신시키지 못한다. 생식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뿔 자르기는 2003년까지 계속되었다. 순록의 개체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자 차탕족은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해, 이제는 뿔을 자르지 않는다.
 
뿔 자르기는 수컷의 생식 기능을 감소시킨것으로 그치지 않고, 박테리아 감염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뿔 자르기가 중단되었으니 순록의 개체 수가 줄어들던 심각한 위기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차탕족의 타이가 숲으로 모험심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모험가와 같은 여행자들이었다. 외국인이 들어가면서 차탕족의 주머니도 조금씩 두툼해졌다. 그 돈으로 밀가루와 생필품을 살 수 있었다.

외국 관광객 증가도 영향

외국인들은 아직까지는 중 타이가 지역의 ‘윗 야영지’까지는 진출하지 않았다. 일곱 가구가 있는 윗 야영지 사람들은 외국인 관광객과 관계없이 차탕족 고유의 삶과 문화를 유지하며 순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와 달리 열네 가구가 살고 있는 ‘아래 야영지’는 외국인들의 취향에 맞추어 이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실제로 울란바트르의 한 여행사와 계약을 맺고, 관광 성수기인 6~9월 몽골을 찾는 외국인 탐방객을 재운다. 그 대가로 밀가루를 한 가구당 25kg씩 여행사로부터 받는다.

 
이같은 계약은 차탕족의 생활 양식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외국인의 접근은 쉬워졌지만, 순록은 이 때문에 모기의 공격에 시달렸다. 급기야 순록들이 어느 날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며칠 뒤 돌아온 순록들에게는 모기로 인한 전염병이 퍼졌다.

순록이 차탕족의 곁을 떠나 야생으로 돌아가면 차탕족의 생활 기반도 덩달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차탕족 사회 내부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뿌리는 몇 푼의 달러와 밀가루에 수천, 수만 년을 존속해온 전통 생활 방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몽골의 유명 관광지인 훕스골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훕스골은 바다처럼 드넓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곳으로, 모기는 적지만 먹잇감이 충분치 않아 순록 번식의 최적지는 아니다. 일부 차탕족은 순록을 몰고 훕스골로 갔다.

문제는 이곳에서 방목되어져야 할 순록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묶여 지낸다는 것이다. 먹이가 충분하지 않은 곳에 억지로 끌려간 것도 모자라 묶여 지내는 것은 순록의 생존에 치명적인 수난이다.

“그것은 동물 학대다. 외국인들이 순록을 끌어다 놓고 기념 사진 한장을 찍을 때마다 순록이 한 마리씩 죽어간다." 차탕족과 함께 순록 보호에 나선 미국 야생동물보호 단체 이트겔의 사무국장 에일런 씨는 말한다.

실제로 훕스골 호수의 순록은 약 20여 마리 가운데 매년 5~7 마리 정도가 죽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이 지역 차탕족은 다른 집단에서 순록을 사들였다. 이같은 악순환이 순록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인도 순록의 위기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훕스골 호수에서 만난 차탕족 여인은 말했다. “순록의 뿔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많이 사는 편이다. 한국인은 순록 뿔을 먹으면 병이 낫고 젊어진다고 믿는다.” 
 
 타이가 윗 야영지 사람들은 아직 차탕 고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가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들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것은 가난 때문이다. 몽골의 타이가 숲을 배경으로 인간과 순록이 평화롭게 공존해온 태고적 광경은 그들이 원하지 않았던 문명으로 인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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