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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드라마는 다 어디 갔을까

1990년대 이전 자료 대부분 유실…‘대중문화 아카이브’ 설립 절실

안철흥 기자 ㅣ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10.07(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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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향란
국립중앙도서관 직원들이 황문평씨가 기증한 육필 악보를 손질하고 있다
 
지난 9월3일, 서울 서초동 한국영상자료원(영상자료원) 강당에서 특별한 영화시사회가 열렸다. 상영작은 <휴일>. 30년 전 작고한 이만희 감독의 1968년 작품이다. 영화 평론가 사이에서 한국 영화 미학의 중요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감독의 작품이지만, 당시에는 ‘가난한 연인들의 어두운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유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날 상영은 37년 만의 일반 개봉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가 공인한 아카이브(archive; 특정 분야의 공공 기록이나 역사 기록이 보존된 자료실)인 영상자료원에는 현재까지 만들어진 전체 한국 영화 가운데 64%의 필름과 스틸 사진, 시나리오가 보존되어 있다. 영화 필름이 비교적 잘 보존된 이유는 1996년 영화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제작되는 모든 영화 필름을 의무적으로 영상자료원에 제출하도록 했기 때문. “1980년대 이전 필름은 별로 없어서, 직원들이 입소문을 쫓아다니며 찾아내고 있다”라고 이효인 영상자료원장이 말했다. 하지만 같은 영상 분야지만 방송 드라마 쪽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푸른 안개> <은실이> 등을 썼던 중견 드라마 작가 이금림씨(57)는 수년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1990년대 초 KBS에서 방영했던, 자신이 쓴 일일 드라마 <일출>를 다시 볼 일이 생겨 방송국에 자료 요청을 했다가 지워지고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 이씨는 그 후 자기가 쓴 드라마는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일일이 녹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방송 드라마를 보존하는 공공기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는 예술자료실(연구정보센터 소속)과 아카이브(방송산업진흥센터 소속)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두 곳 다 연구 인력 한 명 없이 유명무실한 상태.

그렇다고 방송사가 드라마를 보존하는 것도 아니다(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된 다음부터는 달라졌다). KBS에는 1990년대 초반 이전에 제작된 드라마 테이프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국의 대표 드라마로 꼽히는 <여로>가 상징적인 한두 회 분만 남아 있을 정도. 사정은 MBC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 MBC 드라마국장을 지낸 김승수 PD(배우학교 ‘한별’ 교장)의 말이다. “최근까지 방송사 안에 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많은 양을 다 보관할 수 없고, 또 보관해도 유통할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드라마 테이프라야 직접 쓴 작가나 연출한 PD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정도다. <호랑이 선생님> <수사반장>을 만들었고 현재 <사랑찬가>를 연출하는 김승수 PD도 집안에 가득한 테이프 때문에 이사 다닐 때마다 애를 먹는다. “기증하고 싶지만 기증할 곳이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드라마 작가론도 책보고 써야 할 판

자료가 없으니 드라마 연구가 발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를 분석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1960년대 멜로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윤석진 교수(충남대·국문학)가 처음이다. 시대나 작가 별로 일별이라도 해야 쓸 수 있는 드라마사(史)나 작가론은 거의 전무하다. 1990년대 초반 <김수현의 작품 세계와 대중 의식의 변증법>을 쓴 강영희씨는 드라마 <모래성>의 테이프를 구할 수 없어서 소설화한 책을 보고 작가론을 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은 드라마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고 연구 또한 활발하다고 드라마 작가 이금림씨는 말했다. “일본에 갔을 때다. NHK를 방문했는데 마침 <오싱>을 쓴 작가 하시다 스가코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방송국 차원에서 테이프는 물론 인터뷰와 대본 등 그녀의 자료를 모두 모아두고 있어서 놀랐다.”

다른 대중 문화 장르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중가요 <꽃 중의 꽃> <빨간 마후라> 등을 작곡한 황문평씨가 2004년 타계한 뒤 유족이 그의 유품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문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대중 문화 아카이브가 아니라는 점. 연구자들은 한국 대중 문화 연구의 귀한 자료인 그의 메모지와 육필 노트 등이 잘 보존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한향란
한국영상자료원 자료실 내부.
 
그나마 황씨의 사례는 다행스러운 편이다. 김점도씨(70)는 자타가 공인하는 SP음반 수집가다. 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일제시대 가수들의 목소리 대부분이 그의 자료 더미에서 나왔다. 그가 얼마 전 자기가 수집한 자료를 처분하려 했지만 공공기관 어디서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자료는 신나라레코드사가 인수했다. 그의 자료를 공공 목적의 아카이브에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공공기관이 대중 문화 아카이브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예산도 예산이지만 대중 문화 자료를 문화재로 보지 않는 인식 부재 탓이 크다. “개인 수집가들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소장품을 정당한 대가를 받고 넘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시장 가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기증받은 전례도 있어서 공공기관이 가격 흥정에 나서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이영미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이씨는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대중 문화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중 문화가 정치나 경제 못지 않게 중요한 영역이며, 고부가 가치의 원천임은 한류 열풍으로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현재 상태라면 불과 20 년 전 기록도 장담할 수 없다. 기존 아카이브 기능을 강화하는 것 외에 ‘한국예술문화자료관’을 독립 기관으로 신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예술문화 자료관의 설립과 운영방안>이라는 정책 자료집을 낸 민병두 의원(열린우리당)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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