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은닉 재산 수천억 확인됐다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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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코리아·에이원골프장·(주)로이젠 사실상 소유

 
모든 재산을 대우 회생을 위해  내놓았기 때문에 빈털터리라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9월2일 대검찰청이 발표한 김우중씨 수사 결과에서 일부 숨겨진 해외 재산이 밝혀졌고, 최근 국정감사 등에서 국내에도 적지 않은 은닉 재산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나경원(한나라당·정무위)·이상경 (열린우리당·정무위)의원 등은 10월10일 국감에서 로이젠이 추진하려는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 골프장 사업의 부지가 김씨가 은닉한 재산이 분명한데 왜 가압류 같은 조처를 취하지 않느냐며 자산관리공사를 몰아세웠다.

만약 이 땅이 김씨 소유가 확실해진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분 구조상 골프장 시행 회사인 로이젠뿐만 아니라 로이젠을 지배하고 있는 회사와 또 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회사 등으로 줄줄이 엮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교착 상태에 빠진 정부의 김씨 재산 환수 작업에 가속 페달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이 지난 3월 자산관리공사가 낸 아도니스 골프장 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김씨의 위장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확정 판결하는 등 김씨 가족 명의 재산을 대상으로 한 소송들이 줄줄이 패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이젠 건은 불리한 전세를 반전시킬 기폭제가 되리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만큼 대우사태 처리를 위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총 29조7천억원이나 투입되었지만, 회수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인 것이다. 또 로이젠 건은 김씨 등에 대해 제기되어 있는 40여 건의 민사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참여연대 추정 청구금액 6천억원).

그런데 검찰이 드러낸 부분은 김씨의 해외 횡령 부분이다. 이것이 김씨의 국내 재산 은닉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검찰은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지만, 검찰이 제공한 결정적 단서는 김씨의 퍼시픽인터내셔널 투자 건이었다. 물론 이 투자 건을 김우중 재산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회사의 지분 구조와 사업 관계 등 복잡한 경로를 풀어내야 한다.  

 
우선 검찰은 9월2일 대우그룹 4개 사에 19조1천억원의 분식 회계와 9조8천억원의 사기 대출을 지시해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추가했다. (주)대우 런던 금융 조직인 BFC 관련 회계 자료 등 상자 98개분 서류더미에서 김씨가 회사 자금  1억1천5백54만 달러(1천1백41억원)를 횡령한 혐의를 찾아낸 것이다.

김씨는 빼돌린 회사 돈을 퍼시픽인터내셔널의 지분 투자와 미술품· 주택·포도밭 구입 등에 사용했는데, 바로 퍼시픽인터내셔널 건이 그의 국내 재산과 연결 고리 구실을 하고 있다. 김씨가 BFC 자금 4천5백89만 달러를 인출해 퍼시픽인터내셔널 명의로 당시 동우개발 지분 90.42%(7백76만7천5백주)를 사들인 것은 1983~1991년이었다.

 
 1976년 설립된 동우개발은 관광호텔업과 부동산임대업 등을 영위하던 대우 계열사였는데, 1995년 대우개발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8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0년 필코리아리미티드(필코리아)로 상호를 변경했다. 동우개발과 대우개발이 필코리아 전신인 것은 등기부등본에 적시되어 있다.   
   
문제는 필코리아의 최대 주주가 무려 90.4% 지분을 가진 퍼시픽인터내셔널이고, 김씨 부인인 정희자씨가 9.2% 지분(아들 지분을 포함하면 9.6%)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씨는 2003년 8월 말 대표이사 직에서 사임해 현재 대주주일 뿐이지만, 필코리아를 사실상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는 사실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정씨측이 김우중과 관련 없는 가족 재산일 뿐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을 수가 없다. 김씨 역시 검찰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맡긴 돈으로 퍼시픽인터내셔널이 동우개발(필코리아)에 투자했을 뿐 자신과 상관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필코리아가 ‘김우중이 가족을 위해 설립한 위장회사’라고 못박았다. 그만큼 재판 과정에서 입증하는 데 자신있다는 얘기다.

이런 검찰의 자신감은 해외 투자자로 위장하기는 했지만, BFC 자금을 1982년 동우개발에 투자했다는 것을 추적한 데서 비롯한다. 이 때 김씨는 동우개발을 지배하기 위해 조세 회피 지역인 케이만 군도에 퍼시픽인터내셔널이라는 서류상 회사도 세웠다. 그후 BFC 자금을 투입해 퍼시픽인터내셔널로 하여금 동우개발 지분을 사들이게 한 것이다.

물론 퍼시픽인터내셔널 주주 명단에는 김씨가 올라가 있지 않다. 이 회사 주주는 외국인 2명인데, 김씨가 이들의 명의를 빌린 것으로 보인다. 발행 주식 총 1만 주 가운데 기티타나키탐누아이라는 태국인이 9천9백99주를 갖고 있다(리캄룬이라는 외국인이 단 1주 보유). 필코리아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태국인은 2000년 4월 등기이사로 선임되었고 2003년 재차 선임되었다. 
   
장목골프장 부지, 10분의 1 가격으로 ‘내부 거래’

김씨와 그의 가족 소유임이 분명해진 필코리아는 과연 어떤 회사일까. 자본금이 8백59억원인 필코리아는 재무 구조가 매우 견실한 회사다. 유동비율 530%가 좋은 예인데, 단기 자금을 자본금의 5.3배나 즉각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다는 얘기다. 부채비율도 고작 2.9%로 빚이 없는 회사나 마찬가지다.

 
여기다 필코리아는 다수 기업에 지분을 투자한 지주 회사 성격도 띠고 있다(지분 구조 참조). 필코리아는 경기도 포천 소재 아도니스 골프장(18.6%)과 경남 양산 소재 에이원 골프장(49%)을 소유하고 있다. 필코리아 지분 9.6%를 가진 김씨 가족은 아도니스 골프장 지분 81.4%를 갖고 있어 이 골프장을 사실상 100% 소유하고 있다. 아도니스는 또 에이원 골프장 지분 49%를 갖고 있는 등 김씨 관련 회사들은 얽히고 설킨 순환출자형 지분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로이젠(자본금 20억원)은 필코리아가 25%, 에이원골프장이 75% 지분을 갖고 있는데, 거제 장목골프장(가칭)을 건설하기 위해 지난해 6월1일 설립된 회사다(설립 등기 일자는 7월6일). 필코리아와 소재지(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655번지)도 같고 임원 구성도 흡사하다. 필코리아 홍진후 대표가 로이젠 이사이며, 로이젠 오원근 대표는 필코리아 이사다. 전 대우개발 대표인 유진무씨는 로이젠 감사·필코리아 이사로 있다. 이들은 모두 대우개발 출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회사가 설립된 지 단 10일 만에 학교법인 지성학원으로부터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구영리 일대 21만1천7백평(약 70만㎡)을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지성학원 땅을 넘겨받아 골프장 사업을 벌이기 위해 김씨 가족이 급조한 회사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제고교 등을 거느린 지성학원은 1980년 대우재단에 인수되었으며, 다음해인 1981년 정희자씨가 8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현재도 정씨가 이사장인 지성학원은 문제의 골프장 부지를 1983년 11월18일 무상 증여받았다. 증여자는 그 해 8월16일 이 땅의 소유자가 된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었다. 불과 3개월 만에 증여했으니 사들일 때부터 지성학원으로 증여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경원 의원은 “소유 이전 과정에서의 세금 포탈 혐의가 있으며, 자금 세탁을 위해 노출이 잘 안되는 학교 법인을 이용했다는 의심이 든다”라고 주장했다.

가격도 헐값이라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로이젠은 공시지가를 적용했다면서 이 땅을 59억원에 샀다. 평당 2만8천원 가량이다. 13년 전 부지를 조성할 때 장목 관광지 보상가는 평당 6만7천원이었다. 이 보상가를 적용하면 1백41억원이 든다. 이 가격에 밑도는 것은 물론 로이젠이 자체 토지 매입 비용으로 산정한 것과는 더욱 동떨어진다. 로이젠은 사들여야 하는 사유지 및 국·공유지 매입가를 평당 22만원으로 추산(1백60억원)했다. 이 가격을 적용하면 로이젠은 지성학원에 매입 대금으로 4백65억원을 지불해야 한다.

또 장목관광지 시행사인 대우건설 의뢰를 받은 (주)한아도시연구가 복합레저관광단지 개발구상 자료에서 제시한 전망 가격은 평당 30만원에 이른다.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가진 지역인 데다 거가대교가 개통하면 접근성도 좋아진다는 근거에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매각대금은 6백30억원에 이른다. 결국 로이젠이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땅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김씨와 정씨, 그들의 소유 회사라는 특수 관계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로이젠이 추진하려는 골프장 부지에는 김씨 증여 땅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 4월22일 로이젠이 거제시청에 낸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총 28만4천평(93만9천3백㎡) 부지 가운데 국·공유지와 사유지 7만2천7백52평(24만㎡)이 포함되어 있다.  부지에 편입되는 12만5천㎡의 사유지 소유자 10명은 모두 대우 출신 인사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씨가 자기 명의뿐 아니라 처음부터 임직원 명의를 빌려 거제 땅을 꽤 샀던 것이다.

로이젠, 김우중 귀국하자 골프장 사업 포기

눈여겨볼 것은 국유지 9만㎡와 자산관리공사가 갖고 있는 김씨 담보 물건 2만5천㎡이다. 삼림청·재경부·농림부·건교부가 소유한 이 송진포리·구영리 땅은 골프장 중심 위치에 있어 이 땅을 정부가 팔지 않으면 골프장을 건설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젠은 사업계획서에  ‘사업 승인후 불하 예정’으로 적었다. 정부측으로부터 매각 의사를 확인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 자산관리공사도 적극 동의한 흔적이 짙다. 올 3월15일 작성한 ‘김우중 소유 담보 부동산 처리방안 검토’ 문건에 따르면, 자산관리공사는 ‘장목 관광단지 조성 사업 및 로이젠 골프장 건설 사업이 가시화하고 있어 대우건설 및 로이젠 측에서 매수 협의 요청시 일괄 매각 추진하는 것이 회수 극대화 방안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일 정무위 자산관리공사 국감에서 나경원 의원으로부터 장목골프장이 김씨가 은닉한 재산이라며 채권 환수를 촉구받자 김우석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도 로이젠이 김씨 위장 계열사로 의심되어 검찰에 자료를 요청했다. 자료를 받으면 법률 검토를 의뢰해 회수 가능한 것은 회수하도록 노력하겠다.” 자산관리공사는 로이젠에 매각동의서를 써주지 않았느냐는 이상경 의원의 추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현재 장목골프장 사업은 전혀 추진되고 있지 않다. 올 4월22일 사업계획서를 냈던 로이젠은 거제시측이 교통영향평가와 관련해 보완을 요구하자  5월6일 자진 철회했다. 이 이유에 대해 거제시청 담당자는 “로이젠측에서 법이 완화될 것으로 보여 철회하겠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실제로 9월16일 교통영향평가 적용 대상이 골프장의 경우 18홀에서 27홀로 완화되었다. 그런데 로이젠측은 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13일 재차 사업계획서를 냈고 3일 후 돌연 재차 자진 철회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이에 대해 이 사안을 추적했던 한 의원 보좌관은 “로이젠이 또다시 철회한 시점은 김씨 귀국(6월14일) 직후였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은닉 재산 논란이 빚어질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이상경 의원은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21만평 골프장 부지와 필코리아·아도니스 골프장·에이원골프장 같은 소유 기업들의 지분 가운데 적어도 일부가 김씨 재산임이 분명하므로 자산관리공사 등은 가압류 등 채권 확보 조처를 즉각 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장목골프장 시행자는 로이젠이지만, 이 골프장 사업은 원래 경상남도 도사업인 장목관광단지 개발 사업에 포함되어 있었다.  1997년 당시 시행자는 (주)대우 건설부문이었다. 당시 김혁규 도지사(현 열린우리당 의원)가 공약 사업으로 내거는 등 확실하게 밀어준 사업이기도 했다. 경남도와 거제시가 적극 지원했지만 이 사업은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흐지부지되었다가 올 들어 사업 규모가 확 줄어들기는 했지만 대우건설이 재추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거제는 대우와 김씨에게 연고가 깊은 땅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가 자리 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최근 문제가 된 골프장 부지 외에도 사실상 김씨 소유 땅이 꽤 많다는 소문이 거제 현지에서 나돌고 있다. 관광지 개발 계획과 거가대교 건설 등으로 이 주변의 땅값도 수십배 올라 설령 골프장 사업을 못하더라도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두리라는 주장이 나온다.

아직 규명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지만, 검찰이 퍼시픽인터내셔널을 김씨가 설립한 위장 회사라고 적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연관 흐름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일부 의원들이 파헤친 터여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몰고올 전망이다. 당장 김씨 귀국 직후부터 부쩍 무성해진 재기설이 낭설만은 아니라는 데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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