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찾고, 설득하고, 함께 만들고…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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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출신 제작자 김의성씨의 베트남 드라마 제작기

 
배우 출신인 FNC미디어 김의성 대표가 한류를 전파하겠다는 꿈을 안고 베트남에 발을 디딘 때는 2002년이었다. 영화 <연풍연가>에 40만이 몰리고 <찜>에 100만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베트남에 한국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베트남을 찾았다. 처음 베트남에 진출했을 때, 그는 잔뜩 꿈에 부풀어 있었다. 베트남에 한류가 한창이어서 한국 것이면 무조건 통한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착각에서 깨어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관객 수는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었고, 실제 유료 관객은 10분의 1정도였다. 그나마 시장이 너무 작아 영화 배급으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그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시선을 돌렸다. 텔레비전 광고 시장이 한창 상승세였기 때문이다.

그가 드라마에 눈을 돌린 또 다른 까닭은 반한류 기류였다.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 드라마 시장의 70~80%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역풍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저항이 거세질 때를 대비해서 베트남 드라마를 현지에서 만들어 틈새 시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베트남 드라마를 한국 드라마 수준으로 만들어보자는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호치민 TV를 찾아갔다. 호치민TV측은 기획안을 요구했다. 내친 김에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작가를 불러 드라마 전편의 대본을 써서 번역해서 돌아갔다. <순풍 산부인과> <오박사네 사람들>과 같은 한국 시트콤을 재구성한 <사랑의 꽃바구니>라는 시트콤이었다. 그의 정성에 호치민TV는 전격적으로 제작을 결정했다.

그러나 제작은 순탄치 못했다. 베트남 배우들을 데리고 한국에 와서 한국 스태프와 함께 찍으려던 그의 계획은 예산 문제 때문에 무산되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찍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드라마를 찍을 스튜디오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좋은 드라마를 찍어낼 여건이 아니었다.

그는 호치민TV 관계자들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와 방송 현장을 견학시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군하며 방송 제작 현장을 하나하나 구경시켜 주었다. 베트남에 돌아간 그들은 스튜디오 촬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에게 창고를 내주었다. 세트를 지을 비용이 없어 그는 임시로 장비를 설치하고 드라마를 찍었다.

드라마를 찍기 시작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현지 광고주들이 아무도 광고를 주려 하지 않은 것이다. 광고주들이 베트남 드라마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광고가 어려워지자 그는 PPL(간접 광고)에 승부를 걸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부탁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어렵게 그는 다국적 광고회사의 도움으로 PPL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방영이 될 무렵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드라마를 시청률이 형편없는 채널에 편성한 것이다. 애초에 편성하려던 채널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광고주들이 들고일어섰다. 그는 경쟁 프로그램보다 평균 시청률이 낮게 나오면 PPL 대금을 모두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하고 반발을 무마했다.

“현지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

올해 봄, 약 천일의 산고를 겪은 시트콤 <사랑의 꽃바구니>가 드디어 방영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랑의 꽃바구니>는 경쟁 프로그램을 가뿐히 누르고 시청률 수위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처음에 하나밖에 없던 광고는 16개로 늘어나 있었고 PPL 광고주들도 대만족이었다. 

하나의 성공 사례를 남기자, 어렵기만 하던 베트남 진출에 드디어 고속도로가 뚫렸다. 각 방송사로부터 드라마 제작 의뢰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덕분에 24부작 미니 시리즈 기준으로 15편에 해당하는 총 3백20시간을 수주할 수 있었다. FNC미디어는 단숨에 베트남 최대의 드라마제작사로 등극했다. 

 
<사랑의 꽃바구니>가 성공한 것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정부기관으로부터 채널 운영권까지 넘겨받게 된 것이다. FNC미디어는 안정적인 채널을 확보하고 드라마 콘텐츠를 제작할 여건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김대표는 “디지털 지상파 방송에 승부를 걸었다. 3년 안에 시청률 1위 채널로 만들 자신이 있다”라고 말했다.

내년에 그는 한국 드라마 제작진을 데리고 한국 엑소더스를 시도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포화 상태다. 제작업체가 하청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합작 제작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그는 “현지 시스템 안에 들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다양한 기회가 열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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