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시장의 ‘큰손’ 홍갑수 삼성생명 이사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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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혼란 있어도 금융 공황은 없다”

멕시코 페소화 폭락, 영국 베어링그룹 파산, 달러화 폭락, 엔화 폭등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국제금융 뉴스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고금리의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금융시장의 빗장을 굳게 잠가온 한국에도 국제 금융시장의 파고가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파고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는 것은 금융시장 개방의 첫발을 막 내디딘 한국에게는 경제 상식을 넓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1~2년 안에 한국의 문제, 한국의 사건으로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큰손’으로 알려진 삼성 생명 해외투자담당 洪甲秀 이사를 만나 이런 의문을 풀어보았다.

 최근 국제 금융과 관련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내용인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의 발전 단계상 일반 국민이 금융시장에 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에 관한 이해가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는 데만 몰두해 왔지 금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국내에 금융시장이란 것이 아예 없었습니다. 채권시장도 없었고, 주식시장도 지극히 작은 규모로 명맥만 유지해 왔습니다. 최근 들어서야 주식시장이 조금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선진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국민은 금융시장에 관한 얘기를 들을 일도, 관심도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한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국제시장의 여파를 일반국민도 바로 피부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최근 달러 값이 폭락하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가 급상승했습니다. 주요 국가 통화의 급격한 환율 변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기업측 처지와 일반인 입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기업의 경우, 주요 통화의 환율이 변할 때 어떤 통화로 수출이나 수입을 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달러로 수입대금을 받기로 했는데 달러 값이 폭락하면 가만히 앉아서 번 돈을 잃게 되는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해외 여행 때 당장 그 영향을 느낄 것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국내에서 여행 경비를 바꾸어 나갈 때 값이 오르는 통화인 엔이나 마르크로 바꾸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습니까?
 한국은행 계산에 따르면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10% 절상되면 한국은 2년간 무역수지 15억달러 흑자를 보는 이득이 발생합니다.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이 비싸지게 되므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동차 ․ 가전 ․ 반도체 ․ 조 선 ․ 유화산업에는 엔화 절상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일 무역 적자폭은 9억달러 정도 늘어납니다. 얻은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이 일단 좋아지기 때문에 경기 상승세 유지에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삼성생명은 급격한 환율 변동에 어떻게 대처합니까?
 기본 방침은 환에 대한 노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입니다. 선물환 거래로 환율 변화에서 오는 위험을 피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이 외환시장에 투기적으로 뛰어드는지는 모르겠으나, 삼성생명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환투자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

국내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좀더 공격적으로 부서지게 될 것 같은데요.
금리 자유화가 되면 어느 금융기관이 가장 높은  수익을 보장해 주느냐에 따라 돈이 몰립니다. 금융 지유화로 은행 ․ 증권사 ․ 보험회사 간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은행도 보험을 하고, 투자신탁 회사도 연금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금융 기관들은 지금보다 훨씬 할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공격적 투자란, 결국 세계 시장 전체를 상대로 투자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직 외환 딜러와 같은 투자 전문요원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의 금융개방 계획을 보면 내년 4월에 주가지수선물제도를 입하기로 돼 있습니다. 97년에는 금융 선물 거래가 이루어지고 금리자유화가 이루어지는 등 개방 일정이 꽉 짜여 있습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전문요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외국 기관들이 들어오면 싸움에서 지게 될 것은 뻔합니다. 파산하는 금융기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선진국 금융기관에 비해 그렇게 경쟁력이 떨어집니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경쟁력 면에서는 금융 역사가 긴 서구에 비해 열세입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데, 아시아의 경우 작년에 이 상품에서 손해를 본 회사가 많습니다.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대만 등 예외가 없습니다. 그만큼 국제 금융시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외국 중개인을 통해 투자한다 해도 잘 모르고 ‘예스 예스’ 하다 보면 자기가 무슨 거래를 하는지도 모르고 앉아서 당합니다. 기업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회사 자산을 다 깎아 먹을 수 있습니다. 투자 자산을 운용할 때 감시 기능과 관리 기능을 더욱 강화했고,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삼성생명이 투자하는 내용은 대체로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한국은 선진국보다 금리가 매우 높기 때문에 굳이 해외 투자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국내 저금리 시대나 외국 기관과의 경쟁에 대비해서 학습 과정의 일환으로 국제 금융시장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 일본 등 각국 시장의 맛을 조금씩 보고 투자 기량을 쌓는 단계입니다. 런던 ․ 뉴욕 ․ 싱가포르 등 주요 국제 금융도시에 모두 거점을 확보해 놓고 투자를 합니다만, 솔직히 아직은 배운다는 차원입니다.

국내 금융기관이 국제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데 정부규제는 없습니까?
 삼성생명 같은 기관투자자의 경우 현재 투자금액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관들은 아직 투자를 자제하는 추세입니다. 해외에 투자할 경우 외국 증권사나 투신사에 맡기게 되는데 사실 그들의 속성을 우리가 잘 모릅니다. 유명 기관이라 해도 무턱대고 맡길 수 없는 형편입니다. 국제시장에서는 사실 큰 흐름이 좋으면 돈을 벌고, 흐름이 나쁘면 무조건 잃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에 능숙한 외국 중개인들은 늘 돈을 벌 수 있다는 그럴듯한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 옵니다. 외국 중개인 말만 믿고 투자에 위험하다고 봅니다.

베어링그룹을 파산으로 몰고간 파생상품에도 투자하고 있습니까?
일부 하고 있습니다. 파생상품은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위험 회피 수단으로 개발된 상품입니다. 가령 삼성생명이 도쿄증시에서 주식을 많이 구입했을 경우 도교증시의 주가가 떨어지면 큰 손해를 봅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쿄증시의 주가가 떨어질 경우 이익을 보는 파생상품을 구입해 투자 위험을 가급적 줄이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투자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어 차원에서만 파생상품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금융 위기 이후 베어링그룹 파산과 달러 값 폭락이 연이어 터져나오자, 세계적인 금융 공황이 온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으 아니지만 그런 얘기가 나올 만도 합니다. 달러 값 폭락에 세계 주가가 동반 하락했고, 베어링 사태로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이런 사건의 여파로 실물시장의 금값이 올라가고 있고, 외환시장은 워낙 투기성이 높아 큰손들에 의해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입니다. 세계 투자 자금이 최근에는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 의 자금의 세계 자본시장을 떠돌면서 곳곳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돼 단독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요 선진국들이 서로 협력 수 있어야 하는데 이해관계가 달라 어려운 실정입니다.

금융시장에 투기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가 몰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 아닙니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각국 통화가 달러화를 통하여 금과 연결되는 이른바 ‘브레튼우즈체제’가 특국 달러화를 국제통화로 만들어 기축통화(vehicle currency)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고정환율제였는데, 만성적이 국제수지 적자로 금태환이 어렵게 된 미국이 71년 이 제도를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해 왔는데, 사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금융 위기들은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할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환율이 움직이면 물가에 영향을 주고 이는 금리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결국 환율이 마음대로 우직이니까 금융기관들은 금리 자유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리가 자유화되면 최고금리를 보장하는 금융상품이 경쟁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고수익률을 올리는 투기성 높은 투자 상품에 돈이 몰리게 됩니다. 아시아가 수익률이 높을 것 같으면 아시아로 몰리고, 중남미가 좋을 것 같으면 일제히 중남미로 몰리는 식입니다 ” 이런 수익률 경쟁이 가열하면서 현재의 혼돈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내에서도 내적인 자구력이 있습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도 있고, 각국 정부도 적절한 규제를 가해 조정하는 힘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금융시장에 공황이 온다든지 자본주의가 몰락한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까?
 달러화는 더 이상 유일한 기축통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엔 ․ 마르크 ․ 달러의 3극 체제가 온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3극 체제에도 위험 요소는 있습니다. 마르크화의 지나친 강세는 단일 통화를 만들어야 하는 유럽 통합에 차질을 가져올 것입니다. 아시아 내에서도 엔의 역할이 높아 가지만 각국이 이를 정치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따라서 3극체제가 안정된 하나의 체제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오리무중 상태가 계속될 공산이 큽니다.

밀튼 프리드만과 같이 현재의 자유변동 환율체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자유방임적인 접근에는 반대합니다. 파생상품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마음대로 상품을 만들어서 마음대로 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실패’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날의 혼돈이 지나치게 자유방임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논리에 맡기되 시장을 조정하는 힘은 있어야 합니다.

세계 금융시장이 통합되고 있는데, 이러한 통합이 세게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봅니까?
지금 경제는 하나의 세계 경제로 통합된 경제입니다. 금융도 하나의 국제 금융시장으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금융시장에 나타나는 이런 ‘세계화’ 형상은 전 세계 실물경제에 즉각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도 이제는 통화정책 따로 외환정책 따로 펼 수가 있습니다.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금융자유화로 정부 규제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규제가 없어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금융산업의 경우 규제는 국내 금융기관들을 외국 경쟁사로부터 보호해 준 측면도 있습니다. 정부의 보호막이 없어졌을 때 한국 금융계가 외풍을 견딜 수 있는 체질이 돼 있느냐, 제가 볼 때는 아직 미흡합니다.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들어오면 다치기 십상입니다. 한국은 이제야 막 준비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경쟁력 제고에 관한 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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