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은 왜 ‘올인’ 택했나
  • 신호철 김은남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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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논문 허위성에 강한 확신…일부 언론 억측 보도도 ‘2탄 결행’에 영향

 
평일 저녁 11시는 15초 광고가 7백53만원에 이를 정도로 광고주 간에 경쟁이 치열한 프라임 타임이다. 11월29일 11시5분, KBS가 <뉴스라인>을 내보내고  SBS가 <긴급출동 SOS24>를 방송하던 그 시각, MBC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을 방영하고 있었다. 이 날 시청자들은 타이틀 크레딧 다음 광고 없이 바로 본 방송이 이어지는 진귀한 풍경을 보았다. 방송 광고가 시작된 이래 초유의 ‘광고 없는 방송’이었다.

MBC 방송 광고 편성을 담당하는 방송광고공사 영업1국 담당자는 “황우석 비판 방송 이후 각 광고주 홍보실에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예정된 11개 광고가 취소된 이유는 모두 황우석 사태의 여파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975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를 다시 보는 것 같다.”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김평호 교수는 광고 중단 사태를 이렇게 비유했다. 문제가 된 11월22일 <PD수첩> 방송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줄기세포 연구로 국민 영웅이 된 황우석 박사가 연구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렀고, 지난 1년 반 동안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 말을 해왔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다. 11월24일 황교수는 서울대 교수 직을 제외한 모든 공직 사퇴를 선언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네티즌들이 11월26일 토요일 저녁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촛불 시위를 벌였다. 평소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해 온 가수 강원래씨가 휠체어를 타고 시위에 참가해 눈길을 모았다. 각종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90% 이상이 <PD수첩>을 비난했다. 국익과 과학 발전에 딴죽을 거는 이기적인 보도라는 것이다. 이윽고 <PD수첩>프로에 광고하는 회사 물건을 불매하자는 운동이 번졌고, 11월29일 ‘광고 없는 방송’은 그래서 탄생했다.

 11월30일 여의도 MBC 앞에서 회사원 안철효씨(40)가 1인 촛불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는 “<PD수첩>은 산업 스파이 같은 놈들이다. 고통받는 장애인을 생각해라. 공익을 추구하는 연구가 왜 비윤리적이냐”라고 말했다. <PD수첩>을 옹호하는 사람도 덩달아 욕을 먹었다.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연구원이 <PD수첩> 보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가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누리꾼의 공세에 시달렸다.

<PD수첩>은 마녀인가?

들불처럼 번지는 ‘<PD수첩> 죽이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PD수첩> 제작진은 의기양양했다. 12월1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10층 시사교양국 <PD수첩> 팀을 찾았을 때, PD들 책상 위에는 시루떡이 보였다. 보성에 사는 중학교 윤리교사가 제작진에게 힘내라며 우편으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최승호 책임 프로듀서(CP)는 “광고가 계속 끊겨도 방송은 한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많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알고 본즉 <PD수첩>은 연구과정상 윤리 문제를 다룬 1탄 방송에 이어 줄기세포 연구 그 자체에 허위가 있다는 ‘황우석 2탄’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안티 <PD수첩>’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11월22일 보도를 전폭 지지했던 논객 진중권씨조차도 SBS라디오 <SBS전망대>에서  ‘과연 방송사에 황박사의 업적 자체를 검증할 전문성이 있을까 하는 우려도 들지만....‘이라며 걱정했다. 시민 정태훈씨(32)는 “난 1차 보도를 지지했던 내 주변에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2차 보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버‘한다고 느꼈다. <PD수첩>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지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정의감과 사명감‘, 부정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오만과 아집’으로 표현되는 <PD수첩>의 거침없는 행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이었을까? 거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의외로 허술한 황우석 연구

첫째는 <PD수첩> 제작진이 논문 허위성에 대해 자기 확신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PD수첩>이 원래 취재하려고 했던 것이 난자 윤리 문제가 아니라 논문 허위성 문제였다. 11월 중순부터 언론계 일각에서는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폭로를 할 예정이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PD수첩> 팀이 6월1일 처음 제보를 받았을 때, 제작진조차 ‘상식의 저항’을 느끼며 내용을 믿기 어려웠다고 한다.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된 줄기세포 논문이 허위라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이언스>는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과학 학술 잡지다. 황우석 연구팀의 이병천 교수(서울대·수의학)는  “사이언스 검증 시스템 운운하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무지한 발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사이언스>는 줄기세포를 직접 보고 검증한 것은 아니고, 황우석 교수팀이 제출한 논문과 자료만 접수했을 뿐이다. 이병천 교수는 “과학 연구라는 게 굳이 시료를 직접 보지 않아도 논문과 데이터를 면밀히 따져보면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라고 답한다.

<사이언스> 검증은 1차적으로 학자의 양심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MBC <PD수첩> 제작진은 6개월 간의 취재 과정에서 베일에 가렸던 황우석 연구실의 속사정을 전해 듣고, 황우석 교수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거두어버린 듯이 보인다. 최승호 CP는 “우리가 황교수 연구실을 둘러싼 모든 난맥상을 다 공개한 것이 아니다. 특종에 미쳐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가 만든 복제 줄기세포 DNA가 원래 체세포 DNA와 동일한 것이라고 검증한 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였다. 그런데 이 부분에도 허점이 있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황우석 줄기세포 검증은 국과수 서울 본사가 아니라 전남 장성 서부지사가 했다. 공식 절차를 거친 것도 아니었다. 황우석팀 연구원과 친분이 있는 국과수 직원에게 의뢰한 것이었다. 그것도 시료인 체세포나 줄기세포가 아니라 유전자만 건네주고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이병천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첩보전이 치열하다.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국가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해 비공식으로 검사를 의뢰할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이 취재 내용을 확신하게 된 데는 제보자의 확실한 신원도 한몫을 했다. 6월 첫 제보자와 8월, 9월 의혹을 확인해준 제2, 제3의 제보자는 황교수 연구의 핵심 관계자들이었다. 과거 언론 보도를 보면 황교수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때마다 이들에 대한 상찬을 잊지 않고 끼워넣었다. 그들은 독보적인 성과를 내며 특혜를 누리던 주역이었다. 그런데 제보자의 신원이 알려지자 언론들은 이들을 ‘인화에 문제가 있고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로 깎아내렸다.

이중 잣대 들어낸 기사도 상당

<PD수첩>이 ‘고’하게 된 두 번째 배경은 외부에 있었다. MBC 관계자에 따르면, MBC 내부에서는 1차 보도 때까지만 해도 논문 진위성 문제는 그만 덮고 가자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11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브리핑> 기고가 사태를 꼬이게 했다. 노 대통령은 글에서 ‘처음 (MBC)취재 방향은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황교수가 매우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고 언급했다. 이 문장 때문에 ‘논문 허위성’ 문제가 공론화했고 <PD수첩>이 발을 뺄 여지가 없어졌다.

특히 <PD수첩> 보도를 둘러싸고 언론 보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PD수첩> 제작진은 전진하는 쪽이 명예를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1월22일 이후 한국 언론이 보여준 극심한 오보·억측 보도가 <PD수첩> 제작진의 등을 떠민 셈이다.
‘언론 집단이 너무한다‘는 인식은 <PD수첩> 제작진만이 느낀 것은 아니었다.

11월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의 주최로 <국익과 진실 보도>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양문석 언개련 위원은 주류 신문이 어떻게 추측 보도와 오보를 일삼았는지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는 섀튼 교수가 황우석 교수와 결별하게 된 이유를 ‘윤리적 문제 -> 섀튼 교수의 자만 -> 한·미 간의 신경전 -> <PD수첩>의 취재 -> 특허 지분 요구 등 다섯 번이나 말 바꾸기를 했다.

또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일보>는 11월7일 ‘돈이면 뭐든... 난자까지 판 여대생’이라는 기사에서 난자 매매 풍조를 질타했다. 하지만 같은 돈(1백50만원)을 주고 난자를 얻은 황우석 연구팀에 대해서는 11월22일 ‘난자 기증자에게 교통비와 실비 등을 보상’이라며 점잖게 표현했다. <중앙일보>는 11월7일 기사에서 ‘난자 불법 매매 첫 적발.. 일본에까지 밀거래 충격’ ‘주부 C씨는 난자 제공 시술 뒤 난자 과자극증후군으로 치료받고 있다.

 
이들은 시술 뒤 2~3주 동안 복통이 심해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불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라는 등 난자 적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단의 연구에 대해서는 11월22일 ‘이른바 난소과자극 증후군이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 ‘어차피 사멸할 난자를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썼다. 

이 날 토론회에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는 “국익은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통해 찾아지는 것이다. 국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예전 안티 조선운동 일각에서, 조선일보 광고주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자고 주장한 적 있다.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MBC 광고 중단 운동을 부추기거나 방관하는 언론사에, 그 여파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과학 학술 잡지 <네이처>의 12월1일자 사설은 뼈아팠다. ‘진실을 추구하는 데 이토록 많은 장애물이 있는 상황에서 어떤 윤리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PD수첩> 보도의 내용보다, 그 보도를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수용성에 더 큰 의문점을 찍은 것이다. 촛불시위와 광고 중단 사태가 역설적으로 한국 과학 연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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