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대통령’ 손학규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12.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누가 경기도를 움직이는가’ 설문 조사에서 손학규 현 지사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조사했다
누구를 :
경기 지역 10개 분야 전문가
몇 명을 : 5백명(행정관료 50명, 교수 50명, 언론인 50명, 법조인 50명, 정치인 50명, 기업인 50명, 금융인 50명, 사회단체 인사 50명, 문화예술인 50명, 종교인 50명)
어떻게 : 구조화한 설문지
언제 : 2005년 11월29일~12월1일
누가 : 미디어리서치

경기도는 인구로만 따지면 지난해부터 서울을 앞질렀다. 1천1백여만 명이 사는 최대 광역자치단체이다. ‘지자체 10주년 연속 기획/ 누가 지역을 움직이는가’의 대미를, 덩치 큰 경기도가 장식했다.

경기도를 이끄는 손학규 지사는 이번 조사에서 웃고 울었다. 영향력에서는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차기 대선주자감에서는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에서도 지지도가 낮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손학규 지사의 반전 카드가 주목된다.

지난 4월부터 진행된 연속 기획에서 서울과 제주도는 빠졌다. 서울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시사저널> 835호)와 겹쳤고, 제주도는 아쉽게도 표본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지역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여준 지자체 연속기획은 가급적 자치단체장의 임기에 맞추어 4년 주기로 진행할 예정이다. 2009년에 있을 다음 조사에서는 제주도를 포함시킬 예정이다.  

 

“경기도는 손학규 지사의 손 안에”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전체 영향력 조사에서 손지사가 91%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 분야에서도 77%의 높은 지목율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국 9개 권역을 돌며 진행된 영향력 조사에서 1위 지목율이 가장 높았던 자치단체장은 충북의 이원종 지사(92.2%)였다. 하지만 이지사도 2위(한대수 청주시장, 23.4%)와의 격차는 60% 포인트 남짓이었다. 그런데 손학규 지사는 2위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4.2%)과 무려 87% 포인트가 넘는 격차를 보였다. 그만큼 현재 경기도 장악력에서 손지사를 필적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손학규 지사는 경기도 광명에서 14,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재수 끝에 2002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었다. 후보 때부터 ‘민생 도지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그는 도지사 취임 후 ‘세계 속의 경기도’를 도정 목표로 설정하고 무엇보다 경기도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했다. 민주화 운동 경력과 정치학자 출신이라는 이력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CEO 지사’로서의 실적 경영에 전념한 것이다. 그 결과 ‘손학규’ 하면 외자 유치, 영어 마을, 한류 우드 등이 대표 상품으로 먼저 떠오를 정도가 되었고, 이는 ‘경제’를 중시하는 경기도민들의 기대에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지금도 경기도 홈페이지에 가보면,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10년 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팝업창이 가장 먼저 뜬다.

하지만 현재의 영향력 지수가 최고치인 것과 달리, 앞으로 손지사가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상당히 좁아 보인다. 우선 차기 대선주자 경쟁력 조사에서 경기도 여론주도층조차 손지사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차기 대선주자감’을 묻는 질문에 이명박(33.2%), 고건(15.2%), 박근혜(10.8%), 손학규(8.6%) 순으로, 4위에 그친 것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감을 묻는 질문에서도 이명박-박근혜-손학규 순으로, 여늬 시·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에 대해 손지사측은 예의 “대선 레이스가 벌써 시작되었나?”라는 준비된 답변으로 그 의미를 폄하한다. 지금은 도정에 전념하고 있어서 그렇지, 때가 되면 상황이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측근들은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대선 3~4개월 전까지도 10% 미만이었다”면서, 남은 2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러나 명색이 수장을 맡고 있는 경기도에서조차 손지사의 지지율이 치고 올라가는 낌새가 안 보이고, 오히려 수도권으로 갈수록 ‘이명박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것은 손지사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쪽 상자기사 참조).

그렇다고 이제 와서 경기도지사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다. 손지사는 차기 경기도지사감을 묻는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영향력 90%대를 달리는 현직 도지사의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21%라는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만약 손지사가 차기 경기도 지사에 출마할 뜻을 열어두었다면 차기 경기도지사감으로 지지율이 훨씬 높게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손지사는 그동안 여러 번, 그것도 매우 강한 어조로 경기도지사는 한번만 할 것이라는 점을 천명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번 조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조사는  ‘보기’를 주지 않고 주관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손지사가 다음 지자체 선거에서 한번 더 경기도지사에 출마해주기를 바라는 일부 응답자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이번 조사 결과로만 보면 손지사는 차기 대선주자나 차기 경기도지사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카드’라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지사가 자초한 일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대선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지금은 도정에 전념할 때’라며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밖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비친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손지사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어떤 식으로든 대선 후보로 승부를 걸 것이며,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쪽 인터뷰 참조). 손지사의 한 지인은 “경기도지사 한번 더 하시죠”라고 말을 건넸다가, 손지사가 불쾌해하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 김문수-남경필 ‘양강’

경기도 수원 일대에 ‘삼성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전체 영향력 2위를 차지한 가운데, 나머지 10위권에는 주로 차기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여야 정치인들이 이름을 올렸다. 한나라당의 김문수(3.6%), 남경필(2.0%), 김영선(1.2%)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진표 교육부총리(3.0%), 그리고 공동 10위에 오른 민주당 소속? 의 임창열 전 경기지사(1.0%)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 외에 역시 경기도지사 출사표를 던진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과 전재희 의원은 ‘영향력 있는 정치인’ 분야에서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이 얻은 수치가 전반적으로 미미하고 대부분 오차 범위 안에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어, 경기도를 이끌 차세대 주자나 파워 집단은 아직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 때문인지 차기 경기도의 맹주를 꿈꾸는 경기도지사 후보들의 경쟁이 일찌감치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율이 열린우리당의 2배를 웃도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한나라당 안의 예선전이 훨씬 치열한 양상이다. 4선인 이규택 의원(경기 이천·여주)을 필두로 3선의 김문수(경기 부천 소사), 김영선(경기 고양 일산을) 의원, 재선인 전재희(경기 광명을) 의원이 이미 출사표를 던졌고, 역시 3선인 남경필(경기 수원 팔달)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 정치권과 언론계 인사들에 따르면 일단 초반 구도는 김문수 대 남경필 2강 구도로 짜여지고 있다. 김문수 의원은 소신과 추진력, 청렴성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 총선? 때 박근혜 대표가 이른 바 ‘반 박근혜’ 진영으로 분류되던 김의원에게 당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긴 것도 이런 특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김의원은 최근 수도권 정비법 폐지 및 대체 입법을 앞세워 이슈 선점을 시도하고 있다.
당내 후보군 가운데 손학규 지사와 가장 가깝다는 점도 김의원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 지역의 한 언론인은 “손지사와 김의원은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등을 함께 해서 YS 시절부터 같은 라인으로 분류된다. 10·26 재·보선 때 정진섭, 임해규 후보를 공천하고 당선시키는 데도 두 사람이 호흡을 맞췄는데, 여기에 최근 감정을 푼 박근혜 대표의 암묵적 지지까지 가세한다면 당내 경선에서 김문수 의원이 유리해질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남경필 의원은 당내 소장파를 대표하며 쌓은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와 높은 인지도, 경인일보 기자와 대변인을 거치는 동안 구축한 언론과의 유연한 관계 등이 강점이라는 평이다. 여기에 경쟁 후보들이 대부분 영남 출신인데 반해, 남의원이 유일하게 수원 출신이라는 점도 득점 요인이다. 본선 경쟁력으로 보면 경기도의 중심인 수원 출신이라는 점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남의원 본인은 아직 출마 여부를 확정짓지 않은 상태다. 그의 한 참모는 “남의원도 도지사 선거에 나갈 준비는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당내 인사들만의 잔치로는 내년 지방선거가 다음 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내년 1월까지는 외부 인사 영입을 위해 당내 후보들이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까지 거물급 인사가 들어온다면 그를 위해 기꺼이 경선대책본부장을 맡을 수도 있고, 그 때까지도 뚜렷한 인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직접 출마를 결심하겠다는 것이다. 남의원이 최근 경선 조기 과열을 경계하는 발언을 하고, 이에 대해 일부 경선 후보들이 반대 의견을 낸 것도 어찌 보면 조기 점화된 신경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처럼 초반 기류가 양강 구도로 흐르는 데 대해 당내 여성주자를 대표하는 김영선·전재희 두 의원은 “이번 기회에 여성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며 벼르고 있다. 3선에 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김영선 의원은 일찍부터 경기도 저변을 훑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도내 주요 행사마다 김의원이 빠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후보 5인방 가운데 선수가 가장 낮은 전재희 의원은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행정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무기로 삼고 있다. 전의원이 김의원을 제치고 경기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힌 데도 이런 탄탄한 이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쪽 관련 기사 참조).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이규택 의원은 4선 관록이 무기다. 하지만 이의원은 ‘합의 추대’를 전제로 내세우고 있어 완주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평이다. 

 


열린우리당, 김진표 부총리 ‘유력’

조기 과열을 우려할 정도인 한나라당에 반해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썰렁하다. 32대 17로 국회의원 수만 한나라당에 비해 많았지,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회, 기초의회까지 지방 정부를 온통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어 당의 뿌리 조직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어 열린우리당 후보로 지자체 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이를 반영하듯 ‘경기도를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 1위로 한나라당이 꼽혔고, 열린우리당은 ‘공무원 집단’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인물이 김진표 교육부총리다. 수원 영통 출신 국회의원으로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 2관왕을 지낸 그는 이번 조사에서 전체 영향력 4위, 정치인 분야에서는 손학규 지사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경기도민들이 선호하는 CEO형 관료이자 수원 출신이라는 강점도 지닌 김부총리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경기도지사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인재발굴기획단장은 최근 “경기도민들 사이에 김진표 부총리에 대한 평가가 좋다. 경기도지사 후보 중 한 명으로 설득 대상자이다”라고 했는가 하면, 김현미 경기도당 위원장 역시 “김진표 부총리가 나간다면 한나라당 어느 후보가 나와도 해볼만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부총리 역시 출마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당에서 부르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겠다”고 출마 의지를 피력한 그는 주말이면 지인들과 함께 수원 근교 광교산을 오르는 등 조직 다지기에도 열심인 것으로 알려진다.
김부총리 외에 열린우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원혜영(부천 오정) 정책위의장과 천정배(안산 단원갑) 법무부 장관 정도다. 하지만 원의장의 경우 입각에 대한 기대감이 큰 데다 김부총리의 경복고 후배라 김부총리가 나선다면 도우미로 나설 가능성이 더 크고, 천정배 장관 역시 이번 개각에서 유임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경기도당의 한 고위 인사는 “김부총리가 출마할 경우 중량감 있는 전·현직 의원들을 기초단체장 후보로 발탁해 바람몰이에 나서는 전략도 고민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심재덕 수원시장(현직 의원·민선1,2기 수원시장), 남궁석 용인시장(전직 의원, 현 국회 사무총장), 김덕배 고양시장(전직 의원, 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식으로 기초단체장 후보로 나서기에는 ‘넘친다’ 싶은 인물들을 앞세워 인물 공세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처지에서 보면 ‘사람 찾기’보다 급선무가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지지율이 올라가면 사람은 자연스레 모여들기 때문이다. 김현미 도당 위원장은 이를 위해 두 가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하나는 종부세법·금산법·사립학교법 등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정책적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 바 ‘평화민주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을 통해 선거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결국 다음 지자체 선거의 승패는 중앙 정치의 구도 변화에 좌우된다는 얘기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