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본 세계화
  • 이문재(시인, 출판 칼럼리스트) ()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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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 <글로벌 시대의 문화 번역>/문화 해석의 정치성 증언

 
나에게 문화인류학은 오랫동안 두 얼굴로 다가왔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창(窓)일 때 문화인류학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은 제국주의의 척후병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10여 년 전, 서양이 말하는 동양은, 전적으로 서양의 시각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을 접한 이후, 인류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더욱 굳어졌다. 고고학이나 탐험처럼 인류학은 백인우월주의, 서양중심주의를 증명하는 ‘귀족의 호사 취미’처럼 보였다.

김현미 교수(연세대·사회학)가 최근 펴낸 <글로벌 시대의 문화 번역>(또하나의문화)을 만나지 못했다면, 문화인류학에 대한 나의 편견은 더 오래갔을 것이다. 인류학은 더 이상 제국주의의 아들이 아니었다. 문화인류학은 탈식민지론·페미니즘 등과 더불어 제국주의를 겨냥할 수 있는 무기였다. 창(窓)은 창(槍)이기도 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와 함께 개막된 제국주의가 영토의 개념이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제국주의는 전적으로 시장 확장, 즉 세계화였다. 국민 국가의 국민은, 지구를 시장화한 초국적 기업의 소비자로 전락했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 번역>은, 지난 10년 간, 세계화라는 융단 폭격이 가져온 현기증 나는 변화를 여성의 시각에서 해부한다.

지은이는 “나는 다른 문화가 아닌 한국을 현장으로 삼은 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로서 남성중심, 구미중심, 엘리트 중심의 문화 권력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면서 한국 사회를 ‘번역’했다”라고 밝혔다. 제목에서 드러났거니와 지은이는 문화 번역을 강조한다. 문화 번역에서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문화 번역은 문화적 차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비판적 연구 방법론이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모토를 내걸고 젠더·인종·계층의 경계를 탐사하는 이 책은 비판이고 반성이며, 성찰이고 도전이다. 김교수에 따르면, 근대 역사는 서양/비서양, 동양/서양, 여성/남성,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등 이항 대립적 위계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냈다. 근대적 자아는 이 권력 체계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문화인류학은 타자의 문화를 번역할 때 행위자의 관점을 배제하고 그것을 섣불리 표준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고전적인 인류학은 다른 문화를 기술할 때 개입하는 권력의 문제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제국주의적 욕망의 산물인 문화 진화론적 시각을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 문화상대주의였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 또한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작용하는 영향 관계를 무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결국 초월적인 관찰자가 가치중립적인 언어를 통해 문화를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김교수는 “문화연구자는 문화 현장의 단순한 ‘해석자’가 아니라 ‘개입자’ 역할을 해야만 한다”라고 밝힌다. 문화 번역이 정치적·윤리적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사회와 한국 사회 사이에는 엄연한 시차가 존재한다.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사회는 ‘눈부신 속도’로 진행되었지만 한국 사회는 자문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전통적인 정체성으로는 이주 노동자, 국제 결혼, 조기 유학, 다국적 기업, 대중 문화 등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교수가 보기에, 국민 국가에 갇혀 있는 한국인들은 다른 문화와 ‘협상’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질적인 문화와 마주치면서 두려움이나 혐오와 같은 심리적 불안을 느끼거나, 근거 없는 지배욕을 행사하려 드는 것도 다른 문화와 협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계 철새 기업에 맞선 ‘엄마 노동자’들

김교수는 세계화와 한국 문화가 충돌하거나 삼투하는 현장 속으로 파고든다. 서울에 산재해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자생적 공동체를 찾아 ‘우리 안의 다양성’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삶은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 개입의 상상력으로 ‘타자’와 만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자아 또한 확장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김교수는 세계화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확산은 ‘이주의 여성화’로 드러난다.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가사 노동과 섹슈얼리티 영역도 돈으로 매개되는 경제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거니와, 이 과정에서 광범위하고 급속한 여성 노동력의 이동이 발생한다고 이 책은 보고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문화 경영, 2002년 월드컵 열풍과 한국 여성의 등장, 아시아 여성들이 주도하는 한류 현상 등 지은이가 개입한 현장은 이외에도 더 있다. 특히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철새 기업을 상대로 ‘엄마 노동자’들이 4년간 치러낸 전쟁을 분석한 ‘경계에 선 여성 노동자는 말할 수 있는가?’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주의의 몰상식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민중의 적은, 민중의 정치적 각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엘리트주의라는 혹독한 비판이다.

여성의 이름으로 글로벌 시대에 개입하는 문화 번역은 ‘차별’을 ‘차이’로 전환시키려는 학문적 노력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차별이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차이의 차원으로 올라서지 않는 한, 가난한 나라의 여성을 볼모로 하는 세계화는 결코 인간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문화 번역은 정치적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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