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에 죽고 특종에 살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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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었던 MBC ‘상처와 영광의 1년’

<PD수첩> 2탄 방영이 전격 결정된 12월15일 밤 9시40분께, 문화방송 10층 시사교양국에 최문순 사장이 나타났다. 신종인 부사장 등 방송사 임원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최사장은 <PD수첩>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짧고도 힘 있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간 수고했습니다.”

 
기사회생치고는 극적이었다. 지난 1년간 MBC는 죽다 살기를 거듭했다. 일단은 출발부터가 좋지 않았다. 1월 문화방송은 <신강균의 사실은> 제작진이 취재원으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은 것과 관련해 사과 방송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침울해 있던 MBC는 3월 최문순 사장이 취임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최사장은 취임 직후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외부 인사를 수혈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MBC 노조는 임금 6% 삭감안에 자진 합의하며, 노조위원장 출신인 사장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X파일·황우석 사건 특종하고도 첫 보도 놓쳐

때마침 등장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일일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와 함께 시청률 40~50%대를 오르내리며 MBC를 고무했다. ‘3순이(최문순·김삼순·금순이)가 MBC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찬사가 안팎에서 쏟아진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나 호재는 거기까지였다. 그 뒤 6~12월 MBC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사과 방송을 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파워TV> '극기지왕' 촬영 기간 조작(6월) △<음악캠프> 생방송 중 성기 노출(7월) △<뉴스 데스크> 중 ‘731부대’ 영상 오보(8월) △검·경·언 로비 의혹 사건에 자사 직원 연루(9월) △상주 참사(10월) △<달콤한 스파이> 중 나신 노출(11월) △<PD수첩> 취재 윤리 위반(12월) 등 방송 사고는 부서와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이 시기 시청률은 수직 하강을 기록했다. 10월 이후 MBC 프로그램은 시청률 10위권 안에 드는 것이 거의 없이 바닥을 헤맸다. MBC의 간판 격인 <뉴스 데스크>는 <PD수첩> 파동이 있기 직전인 11월 초 SBS <8시 뉴스>에 최초로 시청률이 처지는 ‘치욕’을 당했다. 스포츠 뉴스를 <뉴스 데스크> 앞에 편성하는 ‘파격’을 감행했어도 무너진 시청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드라마 왕국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9~11월 방영된 <가을 소나기>는 2.3% 시청률로 드라마 최저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일 드라마도 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MBC는 한동안 영화배우 문근영을 일일 드라마 주역으로 섭외하는 데 거의 사운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고위층까지 총동원된 문근영 잡기 소동은,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MBC는 안팎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보수 언론들은 ‘참여정부의 코드 인사가 MBC 위기를 키웠다’(동아일보 12월7일자 사설)며, 현정부와 MBC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에 더해 시스템과 소통 부재가 위기를 키웠다는 것이었다. <PD수첩>이 취재 윤리 위반을 사과한 시기를 전후해 이들의 조롱은 극에 달했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아예 방송국을 폐쇄하라며 MBC를 압박했다.

사실 MBC의 의사 결정 및 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내부 구성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 국장급 간부는 “한마디로 통제가 안된다. 위에서 합당한 지적을 해도 일선에서 이를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고충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MBC의 경쟁력이라는 주장도 있다. 따지고 보면 MBC가 유례 없이 탁월한 성취를 이룬 것도 올 한 해였다. MBC는 올해 희대의 특종을 2개나 건졌다. 상반기의 이른바 ‘삼성 X파일’ 보도와 하반기 <PD수첩>의 황우석 보도가 그것이다. <PD수첩> 최승호 CP는 이를 두고 MBC였기에 가능한 특종이라고 말했다. 최사장 취임 이후 일선 제작진의 권한과 책임을 대폭 강화했기에 이들이 윗사람 눈치 안 보고 성역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 MBC는 X파일과 황우석 사건 모두 특종을 해놓고도 첫 보도를 다른 매체에 넘기는 잘못을 범했다. 이는 MBC가 언론의 본분을 잊고 권력·광고주·시청자의 압력에 굴복했기 때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MBC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승자이자 동시에 패자이기도 하다는 것이 언론 관련 단체들의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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