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올해의 인물' 최병모 특별검사
  • 이철현. 최영재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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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원칙 지킨 ‘불굴의 자여인’

최 병모 특별검사팀은 외인부대이다. 국민이 고용한 용병 부대이다. 판사 출신 최병모 특검이 총사령관이고 야전사령관은 검사 출신인 양인석 특검보이다. 특별수사관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이 참여했고 현직 검사 2명이 파견되었다. 이들 8명이 수사를 주도했고, 신호종 서울지검 북부지청 수사과장을 비롯해 5명이 수사 실무를 뒷받침했다.

행정 요원까지 합쳐 총인원이 28명인 특검팀의 구심점은 최병모 특검이다. 최트검에게는 출신 배경이 다른 수사관 11명을 이끌고 권력형 비리의 진실을 2개월 안에 밝혀내야 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스스로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양특검보를 합류시키고 수사 진행의 모든 과정을 최종 결재한 것도 최특검이다. 최특검은 트검 수사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셈이다.

 
최특검은 검사라는 직책과는 어울리지 않은 풍모를 갖고 있다. 깡말라 광대뼈가 나온 얼굴에 거친 피부가 시골 학교 선생님을 연상시킨다. 특검 임기 내내 얼핏 보면 허름한 군청색 트렌치 코트와 양복과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를 메고 다녔다.

허름한 음식점 즐겨 찾아… 철학ㆍ문학ㆍ과학에 관심
말투와 걸음새를 살펴보아도 그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시민이다. 식사할 곳을 찾을 때도 호텔이나 대형 음식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허름하지만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곳을 찾는다. 박진우 제주도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의장님(최특검은 제주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다)은 허름하지만 맛깔스러운 식당에서 후배와 함께 식사하고 소주 마시는 것을 즐긴다”라고 말했다.

관심사도 다른 법조인과 달리 철학ㆍ문화ㆍ과학 분야이다. 그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과학철학이다. 옷로비 특검을 맡으면서 읽다가 접어둔 책이 <괴텔ㆍ에셔ㆍ바흐>이다. 과학철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과학의 성과가 철학과 사회학에 원용되어 당대의 인식론과 우주관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최특검은 기자에게 과학철학의 개념과 영역에 대해 10분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동료나 후배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기분이 좋으면 그는 2, 3차를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집으로 데려가 직접 술상을 차린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말이 많아진다. 읽고 있는 책과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장황하게 말을 잇는다. 때로는 그 내용이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장시간 들어야 하는 이는 곤혹스럽다. 최트검과 서울고등학교 19회 동기인 서중섭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하 제주도 4ㆍ3사건 50주년을 맞아 제주도에 초청 강연 하러 가서 4ㆍ3연구소 이사장인 최변호사와 자주 만났다.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셨는데 최변호사의 대화는 주제가 광범위하고 끊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넓은 분야에 깊이 있는 지식을 갖게 된 것은 독서 때문이다. 짜투리 시간이 나면 그냥 보내지 않고 책을 펼친다. 4ㆍ3연구소 김동만 사무국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내가 재판받을 때 최변호사가 변론을 맡았다. 그는 당시 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세계의 불가사의>같은 책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최특검은 정치ㆍ경제ㆍ사회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신문을 보더라도 정치면은 거의 보지 않는다. 문화면과 평론을 즐겨 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법 이론과 적용에 관해서 무지한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법리에 밝고 판례를 많이 꿰뚫고 있다. 옷로비 특검팀 조광희 특별수사관은 “최특검은 기억력이 뛰어나다. 과거 자기가 맡은 사건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갖가지 판례와 법리를 기억해내는 것을 보면 혀가 내둘러질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인권ㆍ노동 파수꾼에서 최근에는 환경 지킴이로
그러다 보니 판단도 빠르다. 의뢰인이 변론을 부탁하면 사건 내용을 빠르게 읽어보고 그 자리에서 판단을 내린다. 심지어 처음 만나는 의뢰인에게도 사안에 따라 “무죄 받기 힘들다고 생각해라.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의뢰인이 불리해도 변호사들이 그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서 낙관적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4ㆍ3연구소 김동만 사무국장은 “원칙주의자이다. 자기 주장을 분명하고 거침없이 드러낸다. 가끔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해 상대방을 당혹하게 하는 일도 있다”라고 말했다.

청주지법과 인천지법 판사 시절 최특검은 수많은 직권보석 결정을 내려 검찰ㆍ법원 수뇌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증거 인멸과 도주 위험이 없는 피의자는 불구속 수사나 재판이 원칙이었다.

91년 변호사를 개업하고 나서도 인권은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노사 분규로 인권과 생존권이 침해받는 수많은 피의자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맡았다. 인권과 사법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정법회’창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법회는 조영래ㆍ이돈명ㆍ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해 20여 명이 함께 만든 변호사 모임이다. 나중에 김형태ㆍ이석태ㆍ조용환 변호사가 주축이 된 청변(청년변호사회)과 합쳐 78년 민변으로 발전했다. 최특검은 그 인연으로 지금 민변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청변 출신 변호사 3명과는 지금 덕수합동법률사무소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최특검인 인권ㆍ노동 못지 않게 관심을 갖는 분야는 환경이다. 그는 지난 85년 최 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과 함께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를 창립했다. 이 단체는 88년 공해추방연합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당시 대표는 최 열 총장이었고 최특검은 법률위원장이었다. 최재현 서강대 교수는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최교수는 서울 중ㆍ고등학교 동창이어서 6년전 최교수가 암으로 죽기까지 둘 사이는 아주 각별했다. 이들은 당시 최 열 총장과 함께 환경 운동 ‘3최’라고 불렸다.

지난 91년 제주도로 내려간 후 특검을 맡기 전까지 그는 줄곧 제주도에 살았다. 교통 체증과 과외에 질려 서울을 떠난 것이다. 공해없는 제주도의 자연은 그의 소박한 삶을 풍요하게 했다. 그는 제주도의 자연에 흠뻑 빠져 살았다. 스킨스쿠버를 배워 제주도 앞바다 비경을 즐기는가 하면, 제주도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제주도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아 제주도개발법 시행을 막고, 제주도에 전자 주민 카드를 도입하려는 정부 정책을 무산시켰다.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 최특검을 이 자리까지 끌고 온 힘이자 매력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사는 그의 삶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덕수합동법률사무소에서 최특검과 함께 일하는 조용환 변호사는 “최변호사는 상식에 맞춰 사는 사람이다. 주위에서 깐깐하다거나 원칙주의자라고 평하는 것은 비정상인 사람들이 자기를 정상이라고 착각하고 최변호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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