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마당]‘겨울 나무’ 박철언 전의원 야릇한 봄 기지개
  • 정치부 ()
  • 승인 199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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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겨울 나무’를 자처했던 박철언 전 의원의 긴 겨울이 끝나고 있는가. 출소 이후 ‘피선거권도 없는 처지’라며 침묵을 지켜온 박씨는 ‘대구․경북 지역의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에 참여한 데 이어 최근 월간지 인터뷰, 부인 현경자 의원의 정치 분야 대정부 질의 등 직․간접 화법을 동원한 ‘정치적 발언’을 재개하면서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됐던 슬롯 머신 사건을 언급하면서 “당시 검찰은 정덕진 형제의 가명 계좌 2백여 개를 추적해 찾아냈다가 덮어버렸는데, 정권이 바뀌면 엄청난 지뢰밭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뒤늦게 신민당의 정치 분야 대정부 질의자로 결정된 현경자 의원이 “현정국은 총체적 난국이다. 그 원인은 김영삼 대통령의 그릇된 역사 인식과 오만방자한 권력 행사 그리고 국정 수행 능력 부재 때문이다”라며 민주당 의원보다도 더 강도 높은 시국 비판론을 전개하자, 정가에서는 ‘박씨가 부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시국관을 개진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특히 여권 주변에서는 ‘반민자연합’을 강력히 주장하는 박씨의 행보를 이만섭․박준규 전 국회의장 등이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더욱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대구 지역의 반YS 정서를 묶어낼 정치적 대안을 내놓고 야권 연대를 통해 야권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 아래 일단 김종필씨의 신당에 합류하기를 거부한 박 전의원은 아직도 내각제 실현에 강한 미련과 집착을 갖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볼 때 김종필씨와 제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

 여권 핵심부는 ‘정치 휴학생’인 박씨의 발언에 겉으로는 어떤 공식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신경을 쓰는 눈치다. 잇단 탈당과 이완된 조직 분위기로 가뜩이나 흐트러진 집권당의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박씨의 행보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열고 서울과 대구 지역을 부지런히 오가며 여야 정치인을 두루 접촉하고 있는 박씨는, 민자당의 ‘눈엣가시’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극과 극’의 같은 날 입당은  “민자당 표류 상징하는 그림”

 민자당은 지난 2월28일 6개 사고 지구당의 의원장을 새로 임명했는데, 그 중 안양로씨(대전 중구)와 박성범씨(서울 중구)의 경력이 대조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유신 때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노동운동에 투신한 안씨는 운동권 1세대로 언론민주화 투쟁을 벌여온 인물. 그는 80년 <기자협회보> 기자로 있으면서 검열 철폐 운동에 동참했다가 신군부에 의해 구속돼 옥고를 치렀으며, 88년 기자협회 편집국장으로 복직해서는 제도권 언론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었다. ‘꼬마 민주당’ 창당 멤버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야권 통합 때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재야에 남아 있다가 이번에 민자당에 입당했다. 그는 같은 운동권 출신인 민주당 원혜영 의원과는 처남 매부 사이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박씨는 제도권 언론에서 승승장구한 인물, KBS 9시 뉴스 앵커와 보도본부장을 오래 지낸 그는 권력 편에 기운 보도로 KBS 노조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는 91년 YS가 정치 생명을 걸고 마산행을 단행했을 때 비판적인 멘트를 한 바 있어 민자당에서는 이번 그의 입당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안양로와 박성범. 살아온 역정이나 생각이 판이한 두 사람이 같은 날 민자당에 입당하는 것을 보면서 민자당에서는 “갈 길 잃고 표류하는 당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아 . 태재단 사람들 <김대중 죽이기> 삼매경

 정가에서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의 책 <김대중 죽이기>가 한창 화제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김대중 문제’를 화두로 삼아서 이처럼 전면적이고 도전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가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을 가장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쪽은 역시 ‘DJ 사람들’인 것 같다.

 특히 이 책에 대한 아․태 평화재단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김이사장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하는 지은이의 문제 의식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두 번 정독할 생각이다. 강준만 교수가 제기하고 있는 논점들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올릴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꼼꼼히 따져보는 가운데 요즘 아․태재단에서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둘러앉아 독후감을 교환하는 풍경이 자주 눈에 띈다.

 재단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강교수가 이쪽에서 할 수 없는 말을 대신 해줬다’는 반응이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일단 속은 시원하다. 그러나 표현은 조금 거칠다는 느낌은 있다. 강교수가 호남 사람들과 독자들의 가려운 데를 잘 긁어준 편인데, 문제는 시원한 정도를 넘어서 피가 나도록 긁었다는 점이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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