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밝히다가는 어느새 뚱보
  • 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 www.enh21.org) ()
  • 승인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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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식 부추기는 연말, 기온·조명·소음 등이 식사량에 영향 미쳐

 
연말에는 각종 모임과 식사 약속으로 달력이 빽빽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지도 않은 과식으로 몸이 불어버리곤 한다. 새해마다 금연 열풍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체중 감량 러시는 연말의 풍족한 음식 탓이 크다. 그러나 살찐다고 모임에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스스로 조절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먹는 양을 조절하는 게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지, 평소에도 일상 곳곳에 과식하라고 부추기는 환경이 널려 있다. 
 
1998년 핀란드의 탬퍼레 대학교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식사 일지를 쓰게 하고 음식을 먹은 이유도 함께 기록하게 했다. 그랬더니 음식을 먹는 이유가 단지 허기만은 아니었다. 그저 음식이 눈에 보여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잡지를 읽을 때 소일거리로 음식을 먹는다는 사람이 배고파서 먹는 사람보다 더 많았다. 이처럼 다양한 외부 환경이 먹는 양을 줄이기도 하고 늘리기도 한다. 탬퍼레 대학교논문에서 우리네 연말 모임에 참조할만한 내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더울 때보다 추울 때 음식을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추운 곳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내 온도가 적당히 높은 곳에서 먹어야 과식을 피할 수 있다. 포장마차처럼 추운 곳이라면 식사량뿐만 아니라, 추위를 이기느라 음주량도 대폭 늘어날 수 있으니 잘 조절해야 한다.

레스토랑 어둡고 패스트푸드점은 밝은 이유

 음식을 먹는 장소의 조명도 식사량에 영향을 준다. 어둡고 부드러운 조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식사 시간이 길어진다. 이와 함께 마음이 편해지면 ‘탈(脫) 제지 현상’, 즉 외부에서 어떤 행동을 억제하는 자극을 느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된다.

촛불과 같이 아늑하고 따뜻한 조명을 갖춘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오랫동안 머물고, 계획에 없던 디저트나 음료를 추가로 주문하는 경향이 많다. 반면 밝고 강렬한 조명을 쓴 음식점에서는 손님들의 체류 시간이 짧은 편이다. 레스토랑이나 술집의 조명이 어둡고 패스트푸드점은 밝은 이유도 이처럼 조명이 식사량과 식사 시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배경 음악이나 소음도 식사량과 관련이 있다.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져 음식 먹는 속도가 느려지고 음식과 음료수를 더 많이 먹는다. 반대로 시끄럽고 빠르거나 불쾌한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는 손님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과식을 피하기는 음악이 없거나 소란스런 곳이 더 좋은 셈이다.

 음식을 먹으려면 힘을 들여야만 하는 곳에서는 덜 먹는다. 뷔페식 식당에서는 뚜껑이 없는 용기의 음식이, 뚜껑이 있는 음식보다 더 빨리 줄어든다. 미국의 한 중국 식당에서는 젓가락과 포크를 동시에 제공한 뒤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뚱뚱한 사람일수록 젓가락보다 포크를 더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회식 자리에서 많이 먹는 고기류도 생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식당이 미리 조리되어 나오는 식당보다 과식을 피하기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말 모임에서 음식을 먹는 양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사람들이다. 여럿이 모일수록 혼자 있을 때보다 음식을 많이 먹는다. 혼자서는 1인분도 채 못 먹던 사람들이 네댓 명이 모여서 먹으면 7~8인분쯤은 뚝딱 해치우는 예가 흔하다. 이는 편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일수록 더하다. 마음이 편해지는 데다 옆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식욕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말 모임은 반가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즐거운 자리이지만 자칫하면 건강을 해치면서 한 해를 보낼지도 모른다. 모임 자리를 잡는 데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과식을 피하면서 즐겁게 한 해를 보낼 수 있다. 연말 모임을 조명이 밝고 따뜻한 곳에서 하고 조금씩 주문해서 먹는다면 새해 정초부터 살 빼느라 고민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환경과 건강 Gazette www.enh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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