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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 산업’을 우습게 보지 말라

역술 시장 규모 2조원대…인터넷·길거리 철학관, 박리다매로 손님 끌어

장영희 전문기자 ㅣ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12.30(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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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란
서울 역삼동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백운산씨(왼쪽)가 새해 운세를 보려는 고객을 맞고 있다.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백씨는 이른바 ‘잘나가는’ 역술인이다.
 
삶이 고단하기 때문일까. 미래 자체가 불확실해서일까.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열릴 때 유독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욕구가 급증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닐까. 역술인을 실제로 찾아가거나 유혹을 느끼는 것은 역술, 특히 사주명리(四柱命理)가 사람들의 욕구를 풀어주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4세기께 중국에서 발원한 사주명리가 첨단을 달리는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갖는 것도 미신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는 그것의 예측 기능에 연유한다.

을유년이 가고 병술년을 맞이하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역술계의 대목이 시작되었다. 역술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체로 10월께부터 이사 같은 집안의 큰일이나 자녀 학업·취업과 관련한 운세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역술계의 전성기는 1~3월께이다. 철학관이나 사주 카페 등에서 신년 운세를 알아보려는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다.

서울의 전통적인 점성촌은 미아리 일대. 이곳의 한옥 철학관을 찾는 고객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이들의 수요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아리가 가진 점성촌 위치를 무섭게 위협하고 있는 곳이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다. 고급 옷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밀집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몇 년 사이 ‘점술 밸리’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미아리가 전통 역학에 근거한 사주풀이로 유명하다면, 로데오 거리에서는 사주풀이와 타로카드점, 구슬점, 전생 봐주기 점 따위로 점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새로운 ‘점술 밸리’인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는 사주 카페70여 개가 성업 중이다.
 
로데오 거리와 비슷한 곳은 이화여대 앞을 중심으로 해 방사선으로 퍼져 있는 신촌 일대다. 주로 커피숍 형태의 사주 카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사동·종로 3가 일대와 을지로 상가 등에 등장한 이른바 ‘길거리 철학관’도 역술계의 최근 몇 년 사이 변화로 꼽힌다.

길거리 철학관과 함께 역술의 대중화에 한몫한 것은 대형 쇼핑몰과 할인점, 극장가같이 대중이 모이는 공간에 역술이 침투한 사실이다. 삶이 고달파 절박한 심정으로 역술인을 찾는 중·장년층과는 달리, 젊은 층은 쇼핑하듯 가볍게 역술인을 찾는다. 신상에 별일이 없어도 재미 삼아 그저 궁금해 자신의 사주를 보려는 것이다.

역술인 50만명 활약…‘성형 역술’ 인기

역술인을 찾는 것이 더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10, 20대까지 전국민을 역술의 세계로 끌어들인 최대 공로자는 인터넷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사주’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주 사이트가 떠오른다. 이들 역술 관련 사이트에는 사주와 궁합, 재물운, 승진운, 취직운, 연애운 같은 기본 서비스에서 1대 1 맞춤 서비스까지 서비스 제공 방식도 다양하다.

인터넷 사주 사이트와 길거리 철학관이 역술 대중화를 이끈 동력은 접근 방식과 가격의 차별화에 있다. 입소문을 통해 용하다는 역술인을 어렵사리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일시에 없앤 데다가 커피 한잔 값이면 자신의 사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천원에서 1만원 정도면 모든 궁금증이 해결된다. 박리다매다.

요즘 역술계에 나타나는 흥미로운 현상은 출산 택일과 성형 수요다. 기왕 제왕절개할 바에는 아이에게 좋은 사주를 골라 주려는 부모들이 꽤 많은 것이다. 성형에 역술가가 끼어든 것은 관상이 좋아야 성공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강남 성형외과에서는 역술가에게 성형 부위를 상담하고 온 고객이 적지 않고, 아예 역술가와 함께 찾아온 고객도 드물지 않다는 후문이다.

인터넷이라는 정보기술의 도움으로 전근대적으로 치부되던 역술은 새로운 생존 공간을 찾고 세태를 반영해 그 영역이 다양해지면서 역술은 ‘운세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국의 역술인을 포괄하고 있는 대표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한 역술인은 30만명 정도. 여기다 등록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역술인까지 포함하면 족히 50만명은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일부에서는 운명 산업의 규모가 족이 2조원은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영화 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겨레신문
사주 카페
 
다른 자영업이 그렇듯이 역술 산업은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역술인협회 이찬재 사무총장은 "역술은 잘해야 6개월 장사다.  역술인 사이의 양극화도 심해 규모를 종잡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잘 본다는 극소수 역술인은 꽤 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역술인은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1~2년 사이 역술인끼리 동업한 대형 점집이 출현한 것도 경기 불황기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무리 불황이라 해도 역술인들은 찾는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역술 비즈니스는 날로 변종을 낳고 진화하면서 당당히 ‘운명 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역술인을 찾는 것일까. 수원에서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서일관씨는 그 이유를 불안 해소에서 찾는다.  “삶이 힘겨울수록,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역술은 심리적 불안 해소의 비상구 같은 구실을 해준다. 설령 사주가 나쁘게 나와도 나쁜 운 때문에 일이 꼬인다고 여겨 과도한 자기 탓을 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다시 힘을 내게 되고 그러면 결과도 좋아진다."
 
불황 때 역술 산업이 성장하는 까닭

그런데 역술의 예측은 과연 얼마나 맞을까. 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장이자 서울 역삼동에서 철학관을 열고 있는 백운산씨는 “사주와 관상, 성명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예측률을 70~8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 정도면 대단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백씨는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역술을 신뢰하는 것은 철학이자 학문인 역학의 예측력에서 나온다며, 과학 문명이 아무리 첨단을 달려도 역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술인의 가장 중요한 교본인 <주역(周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더불어 유교의 삼대 경전 중의 하나다. 음양의 두 효(爻)가 여섯 번 겹쳐 만들어진 64가지 괘(卦)와 경문, 경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십익(十翼)으로 이루어진 점서(占書)이다. 주역은 그 근원이 유래가 불분명한 점괘들이지만 그것이 현대에서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은 신탁과 같은 초월적 방법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술인들이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과 자신들을 구별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사람들이 주역을 매력적인 학문으로 여기는 것에는 64괘의 형상과 질서를 잘 해석하면 우주 만물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서울대 허남진 교수).

그런데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을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주명리학자이자 ‘에스크퓨처닷컴’ 대표인 이 수씨는  “사주명리학의 본질은 개인의 그릇(命)과 운(運)을 보고 ‘때’를 알아 진퇴 시기를 분별하는 데 있다. 명과 운은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이다. 따라서 사주명리는 피흉취길(避凶取吉)의 방법이나 개운(改運) 비법이 아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사주를 막을 수는 없지만, 비가 그칠 때를 알게 해주는 것은 인간을 현명하게 대처하도록 이끈다. 명리학의 운명론적 사고는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지만,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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