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전작이 낫다
  •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
  • 승인 2006.01.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동요> 등 인기 작가 후속 드라마, 영감 없는 자기 복제에 ‘급급’

 
텔레비전 드라마에 청출어람은 없는 것인가? 전작의 화려한 명성을 등에 업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드라마들의 성적이 그리 신통치 않다. 2004년 최고 화제작이었던 <대장금>과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집필한 작가들의 후속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방송 전부터 화제가 집중되었던 SBS <서동요>(김영현 극본, 이병훈 연출)와 <프라하의 연인>(김은숙 극본, 신우철 연출), KBS <이 죽일 놈의 사랑>(이경희 극본, 김규태 연출)이 예상보다 성적이 저조하다.

이제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서동요>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를 중심으로 그동안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백제의 과학문화를 소재로 한 사극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간략하게 소개된 ‘장금’이란 인물을 <대장금>에서 맵시 있게 재구성함으로써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작가 김영현의 역사적 상상력은, 그러나 <서동요>에서 오히려 후퇴했다.

 
<서동요>는 드라마의 핵심 요소인 등장인물과 배경, 사건 전개가 <대장금>과 유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대장금>의 ‘장금’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낼 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에 비해 <서동요>의 ‘서동’은 삼국시대에 갇혀 현재적인 인물로 거듭나지 못했다. 그 결과 <서동요>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드라마 양식으로서 사극의 기대치에서 한 발자국 비켜 선 꼴이 되었다.

<파리의 연인>의 작가와 연출이 등장인물과 배경을 바꿔 ‘도시 연작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프라하의 연인> 역시 마찬가지다. <프라하의 연인>은 대통령의 딸과 말단 경찰, 그리고 재벌 2세 출신 검사의 삼각관계를 통해 <파리의 연인>의 명성을 이어가려 한 트렌디 드라마다. 그러나 <파리의 연인>이 ‘신데렐라’와 ‘캔디’의 캐릭터가 결합된 ‘캔디렐라’라는 새로운 인물 유형을 유행시키면서 트렌디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반면, <프라하의 연인>은 전도연과 김주혁의 스타 파워만 보여준 범작이 되고 말았다.

유명 작가들 줄줄이 소포모어 징크스

<프라하의 연인>은 오래된 도시 ‘프라하’의 이미지처럼 정형화된 캐릭터와 개연성이 떨어지는 사건 전개로 드라마로서 완성도까지 의심받았다. 물론 드라마로서의 미학적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흑백 화면 처리를 하는 기존의 과거 회상 방식과 달리 등장인물이 자신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것처럼 현재와 과거를 오버랩 시킴으로써 과거 상황이 현재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준 장면 구성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예술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작가 이경희와 아시아의 ‘비’로 화려하게 비상하는 연기자 ‘정지훈’의 만남만으로도 방송 전부터 최대 화제작이었던 <이 죽일 놈의 사랑>은 제목처럼 지독한 사랑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사랑을 등장인물의 그럴 듯한 행위와 심리 묘사에 바탕을 둔 극적 구성 방식으로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로 치환시켰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달리, <이 죽일 놈의 사랑>은 마치 한 편의 긴 뮤직비디오 같은 현란한 영상 이미지의 나열에 그쳤다.

 
<이 죽일 놈의 사랑>은 ‘스타와 매니저 혹은 보디가드의 비극적인 운명’, ‘복수를 꿈꾸지만 끝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설정을 단순하게 반복함으로써 스타급 작가와 스타 연기자의 결합이라는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전작의 영광 재현 못하고 뒤뚱거려

비록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긴 했지만, 세 드라마는 전작의 명성을 흔들 정도의 위태로운 행보를 보였다. 이들 드라마는 기본 설정에서부터 서서히 감정선을 쌓아온 전작과 달리 출발 지점에서 이미 완성된 감정선으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만 변주시키는 한계를 드러냈다. 역사적 소재의 현대적 해석이 돋보였던 <대장금>, 대사의 묘미가 빛났던 <파리의 연인>, 이미지만으로도 이야기 전개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장점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단순하게 답습한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2006년도 1월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앞집 여자>와 <두 번째 프로포즈>로 주부들의 애환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박은령 작가가 집필하는 KBS의 <인생이여 고마워요>, 2005년 <신입사원>과 <부활>로 각기 화려하게 연기자로서의 자리매김에 성공했던 문정혁(에릭)과 엄태웅이 동반 출연하는 MBC의 <늑대>, 1980년대 최대 화제작이자 김수현 작가의 대표작으로 <청춘의 덫>에 이어 두 번째로 리메이크되는 SBS의 <사랑과 야망>, 마지막으로 윤석호 PD의 ‘계절’ 연작 드라마의 완성작이라 할 수 있는 KBS의 <봄의 왈츠>는 2006년 초반부터 뜨겁게 달아오를 각 방송국의 시청률 경쟁의 선봉에 선 드라마들이다.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 암 선고를 받은 여성이 의사가 된 첫사랑의 남자와 재회한다는 다소 진부한 설정을 작가가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재벌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인 <늑대>의 틀에 박힌 극적 상황에서 연기자들이 어떻게 새롭게 연기할지, 1980년대의 ‘사랑과 야망’과 다를 수밖에 없는 2000년대의 ‘사랑과 야망’을 작가와 연출은 어떻게 차별화할지, 윤석호 PD가 <봄의 왈츠>를 통해 운명적인 사랑으로 고통 받는 남녀 주인공의 팬시 같은 삶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