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송파’에서 넘어지나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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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장 ‘개발 연기’ 요구 후 강남권 들썩…재건축 규제도 엇박자
 
“정말, 이명박은 못 당해.” 지난 1월3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송파 신도시 사업 시기를 늦추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나서자, 한 여권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이시장이 사고를 쳤고, 당국은 속절없이 말려 들고 있다는 반응인 셈이다. 


  8·31 부동산 대책의 후속 입법안이 국회를 막 통과한 마당이었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부동산 문제에 관한 통일된 당론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나마 중론이 있어도 정작 의원들이 관련 소위에서 따로따로 개인 의견을 펴는 통에 조율이 쉽지는 않았다. 마침 한나라당이 장외 투쟁을 하느라 국회를 비우는 바람에 피차 부담이 덜한 채로 입법이 마무리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던 정부로서는 이시장의 발언으로 기습을 당한 꼴이다. 


  일단 이명박 서울시장이 내건 명분은 그럴듯해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송파 신도시가 강남과 강북을 두루 개발하는 균형 개발의 효과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고, 단기간에 강남권 물량이 폭증해 부동산 가격 안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시장은 고밀도 개발 방식으로 인한 교통과 환경 부담도 덧붙였다.


  건설교통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얼마나 급했던지 하루 동안 무려 3건의 보도 자료를 내면서 진화에 나섰다. 건교부의 주요 반박 논리는, 신도시 개발이 지금부터 이루어져도 분양은 2009년, 입주는 빨라야 2011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서울의 주택 사정을 고려할 때 사업 연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강남의 재건축이나 강북의 도시 재정비 사업은 조합원분을 제외하면 주택의 순증 효과가 낮아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건교부 “서울 주택사정 해결에 도움 안 돼”

 이 시장의 강북 끌어안기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퇴임 후 강북에서 살겠다”라며 사안을 강북 이슈로 끌고간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는, 부동산 시장의 현안을 단박 대체했다. 공급 물량이 많네, 적네 하는 쪽으로 논점이 옮아가면서 ‘송파 이슈’만큼은 확실히 선점하고 나선 것이다. 신한은행 고준석 팀장은  “이시장이 사업을 연기해야 하는 근거로 꼽은 것들은 전문가가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른 속내가 있을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적어도 표면에 내세운 이유가 진짜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이시장은 왜, 지금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일까. 사실 송파 신도시에 관한 이시장의 입장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이시장은 ‘정부보다 강남 아줌마가 더 머리가 좋다’고 정부 정책을 희화화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은 적어도 건교부와 손발을 맞추는 모양새는 취해왔다. 지난해 10월 재건축 규제를 둘러싼 긴장 국면에서는 규제를 완화하려는 서울시의회의 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거는 등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8·31 부동산 대책은 세금을 통한 규제와 공급 확대를 통한 가격 안정을 두 바퀴로 삼고 있다.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는 국면에 착수할 때인 것이다. 그리고 송파 신도시야말로 8·31 대책 공급 부문의 핵심 사업이다. 이 시장이 핵심 고리를 제때에, 제대로 틀어쥔 것이다.


  여당의 제2기 부동산정책기획단 단장을 맡은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은 서울시의 입장을 들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의원은 “이명박 시장의 입장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양새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유감스럽다”라고 말했다. 8·31 대책의 기조에 반기를 드는 내용인데, 이렇게 돌출 발언을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돌출 효과야말로 이시장이 노리는 일일지 모른다. 스피드뱅크 박종영 팀장은, 이 시장의 발언이 강북과 강남의 인심을 두루 얻는 묘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우선 강북 지역 뉴타운 추진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해서 균형 발전을 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동시에 강남에 이해가 달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효과도 충분하다. 

강남·강북 민심 다 잡으려는 속셈?

 하지만 적어도 ‘강남 투기가 우려된다’는 그의 말만큼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오히려 투자처로서 강남의 매력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강북에 대해서는 관심을 드러내놓고 말하면서도 강남에 미칠 영향이나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강남의 이해 관계자들은 다 알아채기 때문이다”라고 박 팀장은 말했다.


  공영 개발 방식을 택하는 송파 신도시는 임대 주택을 확대하고, 중·대형 물량 비중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남의 이해 관계자들은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임대 주택이 대량 건설되는 것에 대해서는 내심 강남의 물을 흐린다는 거부감을 갖고 있고, 중·대형 물량 비중이 높은 것에 대해서도 기존 아파트의 매력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가 큰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송파 신도시 건설과, 재건축 규제 방침은 서로 맞물리면서 투자처로서 강남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재건축 문제에 대한 이 시장의 행보는 이런 혐의를 짙게 한다.


  강남 재건축은 부동산 가격의 뇌관으로 불릴 만큼 요주의 대상이다. 최근 두세 달 동안 서울시와 건설교통부는 재건축 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8·31 대책에서 재건축과 관련해 가장 큰 변화는, 입주권을 주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동안 재건축 아파트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투자 상품인데 입주권은 주택으로 간주되지 않아 세금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8·31 이후 지형이 바뀌어 버렸다. 양도세 중과 대상이 1가구 2주택으로 강화된 데다가 조합원 몫 입주권마저 주택으로 간주되면서 세금 벼락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늘어난 세금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재건축 요건을 강화하고, 용적률이나 층수를 제한하는 등 재건축의 실익을 줄여버리는 정책 기조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안전 진단을 강화해 아예 재건축 대상을 줄이는 노골적인 규제책을 펴왔다.


  그동안 이에 대한 부동산 시장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서울시의회는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재건축 용적률을 각각 50%씩 올리고, 층수 제한도 완화하는 조례안이었다. 과연 뇌관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서울시의회가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자마자 강남 재건축 시장의 호가가 꿈틀거렸다. 이런 서울시의회의 움직임은 이명박 시장이 나서서 건교부의 방침을 수용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지난 1월3일 서울시는 소리 소문없이 재건축 용적률을 올리는 완화책을 내놓았다. 이런저런 조처를 덧붙이면 지난 10월 서울시의회가 추진하려고 했던 용적율 50% 끌어올리기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며칠 사이 호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완화책으로는 재건축과 재개발에 목말라 하는 강남 이해 당사자들의 갈증이 풀릴 리 없다. 수익성이 낮으면 주민과 사업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되면 강남 지역의 거여-마천 뉴타운 개발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물론 이시장이 송파 신도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해서 그대로 발목이 잡힐 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정부는 서울시와 긴밀히 협의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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