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스타’들 유엔 외교관 뺨친다
  •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www.izm.co.kr) ()
  • 승인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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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보노 등 빈곤 퇴치·인권 운동 앞장

 
아프리카의 빈곤을 가속화하는 부채 탕감이나 에이즈 문제가 언급될 경우, 가장 먼저 아프리카나 서방의 정상 또는 유력 정치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정답은 아일랜드 출신의 4인조 록그룹 유투(U2)에서 노래하는 보노(Bono)라는 이름의 가수다.

그는 유투를 전세계 음악 팬들로부터 현존 최고의 록 밴드로 인정받게 할 만큼 탁월한 가수지만, 수년 전부터 일련의 국제 정치 활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 일개 가수의 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아프리카 각국의 빚을 줄여주어야 한다!’는 큰 뜻을 실천하기 위해 보노는 종횡무진했다. 지금까지 부시 미국 대통령·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슈뢰더 전 독일총리·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냈다. 콘서트 일정 중에 워싱턴으로 날아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진지하게 대화하기도 했다.

그의 면담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생기는 부담을 의식해 각국의 정상과 정부 고위층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나 대화하고 함께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근래 들어 보노가 만나지 않은 지구촌 정계 거물은 없다시피하다. ‘스타 폴리틱스(Politics)’의 이례적 강점 아닐까.  

만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보노는 지난해 7월 서방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2010년까지 아프리카의 18개 빈곤국을 위한 지원금을 연간 51조원으로 늘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고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만으로도 지난 5년간 15조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

인류애에 기초한 이러한 정치적 행보로 그는 지난해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으로부터 빌 게이츠 부부와 함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타임>은 해마다 연말에 올해의 인물을 뽑아왔지만 대중 가수를 뽑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틀스도, 존 레넌도, 마이클 잭슨도 그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보노는 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역시 아일랜드 출신인 가수 보브 겔도프는 지난해 G8 정상회담에 나흘 앞서서 세계 10개 도시에서 열렸던 ‘라이브 8’ 콘서트를 기획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그 무렵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밥 겔도프를 보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다’고 보도했을 정도였다.

밥 겔도프는 1985년 떠들썩했던 ‘라이브에이드’를 기획해 ‘노래하는 성자’라는 칭호를 얻으며 당대 대중 가수의 사회운동 물결을 본격화했던 인물이다. 당시나 이번이나 행사의 목적은 아프리카 기근 해소를 위한 기금 마련이었다.

또한 새천년 최고의 인기 록 밴드인 ‘콜드 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아프리카 농민들을 압박하는 서방의 불공정 관세를 철폐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반세계화’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중 스타다. 실력파 음악가 스팅도 아내 트루디 타일러와 함께 10년 넘게 열대우림 보호라는 지구촌 환경운동의 최전방에서 맹활약해 왔다. 그는 음악은 물론 사회 의식으로도 팬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하다.

두툼한 입술의 섹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탁월한 연기력의 숀 펜은 각각 아프리카 인권과 반전 운동 부문에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권 단체의 말을 잘 안 듣기로 유명한 아메드 테잔 카바 시에라리온 대통령을 결코 어렵지 않게 만난 안젤리나 졸리는 ‘박사급 유엔 외교관 무리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는 평판을 얻었다. 반전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숀 펜은 워싱턴 포스트에 5만6천 달러 자비를 들여 반전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제 ‘스타 폴리틱스’는 국제 정치에서 멈출 수 없는 대세다. 아무래도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덜한 신세대를 끌어들이는 데 대중 스타의 이름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는 까닭이다. 웬만한 정계 실력자의 얘기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 젊은이들이 스타가 움직이면 관심의 문을 열어제치는 것이다.

 
각국의 대통령과 수상들이 보노를 인정하는 것도 그의 이념이나 행동 역량을 평가해서가 아니다. 세계 정치 권력자들은 유투의 앨범과 공연에 열광하는 지구촌의 엄청난 음악 인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그의 만남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스타 폴리틱스’가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이제 대선이나 총선의 유세장에서 연예인의 얼굴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1992년 대선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섭외하려고 했던 사례가 증명해주듯 선거 진영은 힘이 센 스타를 초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국회의원 열 명이 밤새 뛰는 것보다 스타 한 명이 잠깐 움직여주는 것이 득표에 낫다’는 말도 나온다.

2002년 대통령직을 거머쥔 당시 노무현 후보는 문성근·명계남·윤도현과 같은 스타 군단의 파워에 어느 정도 빚을진 대표적 사례다. 올해 지방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연예계 스타의 이름 값이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선거전의 기선을 잡는 데 유리한 접근법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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