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PD는 괴로워
  • 황지희(PD 저널 기자) ()
  • 승인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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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청중 관리, 게스트·장소 섭외, 인터넷 생중계 등 ‘1인 5역’

 
라디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다. DJ와 초청 손님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옷차림과 표정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지는 청취자 각각의 머리 속에서 모두 다르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영화 감독들은 어딘지 신비롭게 보이는 라디오 PD를 좋아한다.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기 감독은 차기 작품으로 강원도 영월의 한 작은 라디오 방송사에서 펼쳐지는 DJ와 PD의 이야기를 그린 <라디오 스타>를 준비 중이다. 라디오 PD와 DJ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였던 KBS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하반기에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과거 라디오 PD가 주인공이었던 영화들을 살펴보자. 영화 <접속>(1997년)에서 한석규는 갑자기 떠나보낸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들려준 음악에 매료되어 신청곡을 보낸 전도연과 PC통신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다독였다. 영화 <국화꽃 향기>(2003년)에서 박해일은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첫사랑 장진영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연을 보낸다. 이영애의 직업도 지역방송사 라디오 PD였다. 

주인공들의 이미지는 비슷했다. 가슴마다 사연하나씩은 갖고 있어 보인다.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순수함도 느껴진다. 어쩐지 고독의 향기는 나도 땀 냄새는 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라디오는 낭만적일지 몰라도 라디오 PD의 일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두자. 텔레비전에 비해 PD의 몫이 오히려 더 크다. 작은 방송사들은 두어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맡는 경우도 허다하다. 

음악 프로그램만 따져도 선곡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인기 DJ를 다른 방송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속이 타들어 가는 사람도 PD이고, 초청 손님 섭외에 종일 매달려야 하는 것도 PD이다. 생방송 진행을 위해 저녁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방송 중에도 한가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은 사연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신청받으니 방송 시간 내내 긴장해야 한다. 공개 방송을 하는 프로그램들은 장소 섭외부터 객석 관리, 사운드 점검까지 한두 명의 PD와 작가가 책임진다. 

음악 프로그램이 라디오의 전부도 아니다. 일일 시사 프로그램부터 드라마까지 라디오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만큼 다양하다. 여기에 라디오 PD들의 고민이 추가되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이다. 인터넷으로 ‘보이는 라디오’ 서비스를 생중계하느라 두 배로 바빴는데 이젠 DMB와도 경쟁해야 한다. 라디오 PD에게는 라디오가 언젠가는 사라지는 매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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