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뭉쳐 학교 돈 ‘펑펑’ 고발자 ‘싹둑’
  • 정희상 전문기자 · 이용주 인턴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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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재단의 비리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부정 사례를 제보한 전직 직원을 살해해 암매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학 비리를 고발했다가 살인까지 당하는 세상인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사학법 개정을 반대한답니까.”
1월12일 서울 양재동 능인선원에 있는 납골당한편에서 엄명주씨(54)는 남편의 영정을 붙들고 한없이 오열하다가 이렇게 절규했다. 14년간 서울 예일학원 재산 관리인으로 근무하다 퇴출된 엄씨의 남편 이만식씨는 2003년 1월13일 재단 이사장측과 법정 다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흉기에 난자당해  살해된 뒤 춘천의 한 야산에 암매장되었다.

 이씨의 죽음을 부른 단초는 부패한 사학재단 이사장과 그 친인척들의 비리였다. 1986년부터 2000년 초까지 예일학원 김예환 이사장의 재산 관리인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보았다. 김예환 이사장 일가족이 재단 산하 7개 중·고교를 이용해 저지르는 불법행위였다. 김이사장은 1970년대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여수 물방울다이아 밀수 사건에 연루된 장본인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고등학교의 이사장실 금고 속에 물방울 다이아를 보관하다가 경찰 압수수색에 걸려들었다. 그 뒤로도 사학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1985년에는 횡령죄와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1989년에는 부동산 투기를 하다 적발되어 국세청에 수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재산 관리인 이씨에 따르면 김이사장과 가족들은 횡령한 학교 자금을 토대로 서울에만도 36개 건물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량진에 빌딩 3개, 이태원과 테헤란로에 빌딩 5개, 성북동·평창동 등에 호화 주택 5가구, 방배동·한남동 등에 호화 빌라 4채, 만리동에 외국인 전용 호화 임대아파트 18세대 따위이다. 또 천안에 골프장을 낀 임야 5만평과 여주 이천 등지에 30여만평의 전답과 임야를 소유했다. 과천과 부천에도 임야가 2만평에 이르러 이들이 과연 교육자인지 부동산 투기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그들은 사학 비리로 막대한 부를 쌓는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교 공사 과정에서 정부 지원금을 횡령했고, 학교 급식 업체와 교복 업체를 선정하면서 수시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리베이트를 받는가 하면 심지어 영세민 자녀 급식 보조금에서 끼니당 100원씩 빼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행태가 가능했던 이면에는 재단 고위직에 교육부 차관 출신 인사를 기용하는 등 교육관료 출신의 보호막도 작용했다. 
 
그러나 예일학원 재단 비리는 이만식씨의 고발로 제동이 걸렸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이사장의 둘째 아들이 2000년 초 김씨를 재산 관리인 자리에서 밀어내면서 퇴직금 분쟁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조직폭력배 6명이 이씨의 아파트에 나타나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이씨는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피신한 뒤 검찰에 재단 비리를 제보하고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당시 검찰은 김예환 이사장과 둘째아들 김 아무개씨를 긴급 체포해 학교 비리로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으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김예환씨는 후임 재단 이사장에 대법관 출신을 새로 영입했다. 이어 재단 비리 제보에 앙심을 품은 김이사장측에서는 제보자 이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바로 그 재판정에서 귀가하던 길에 납치되어 살해당한 후 암매장된 것이다.

사학 비리 고발한 교사들은 직위 해제

 사건 직후 경찰은 예일학원 김예환 이사장 둘째 아들의 초등학교 친구가 포함된 살인범들을 체포했다. 검찰은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재단 비리 폭로를 둘러싼 원한이 자리잡고 있다는 단서를 잡고 고강도 수사를 벌여 이사장의 둘째 아들을 살인교사죄로 구속했다. 그의 초등학교 친구인 살인범 김 아무개씨는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이사장 아들인 친구에게 살인을 교사받았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각급 법원의 판결은 살인교사죄에 대해 천당과 지옥만큼 큰 편차를 보였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에서는 이사장의 아들에게 살인을 지시받았다는 살인범이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모든 관련 진술과 정황으로 보아 이사장 아들의 살인교사죄에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다시 살인을 교사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고법은 다시 무죄를 선고해 현재 대법원 확정판결을 남겨둔 상태다. 김씨는 현재 석방되어 활동하고 있다. 고 이만식씨의 아내 엄주명씨는 “법과 정의가 실종된 세상에서 사학법 개정만이 남편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고 이만식씨의 죽음에 단초를 제공한 예일학원 비리는 현재 전국 곳곳의 중·고교 사학재단에서 벌어지는 사학 비리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비리 사학들에서는 횡령과 착복의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대상은 천편일률적이다. 그 유형은 주로 교사 신축 같은 학내 시설공사 과정과 컴퓨터 따위 각종 기자재 구입 과정의 정부 지원금 착복, 급식 업체 선정 비리와 급식비 횡령, 부교재 채택, 교복, 졸업앨범 업자 선정 과정의 뇌물, 교사 채용 과정의 인사비리 들이다. 비리를 저지르는 사학재단의 공통점은 교장과 행정실장 등 학교 예산 운용 책임자들이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 금지한 개정 사립학교법에 대해 사학 재단이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태도가 바로 대를 잇는 비리 구조를 사수하고자 몸부림치는 것으로 의심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법의 한계와 두꺼운 보호막 탓에 좀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학 비리가 그나마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는 경우는 고 이만식씨처럼 재단 살림을 들여다본 내부 관계자가 고발하는 경우이다. 경북 영덕에 있는 사학재단 조양학원(영덕여고)의 행정실 직원 김중년씨가 지난 12월1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을 찾아가 양심선언한 사건도 유사한 사례였다. 김씨는 1979년부터 2004년까지 11년 동안 이 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면서 직접 체험한 박인현 전 이사장의 부정·비리를 낱낱이 정리했다. 김씨가 각종 원본 증거 서류까지 확보해둔 재단 비리는 한마디로 ‘돈 빼먹기 백화점’이라 부를 만큼 다양했다. 돈의 출처는 주로 국가에서 지원되는 목적사업성 교부금과 육성회비 같은 학교 운영 지원비 들이었다. 교육청에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수억원대의 교사 인건비를 지원받은 사례라든지 학교 물품 구입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를 횡령한 혐의들이다. 또 학교 공사 과정에서 물품 단가를 조작했다든지 수량을 부풀려 차액을 횡령하기도 했고, 정부로부터 학교 공사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이사장이 친필로 공문서를 위·변조하여 횡령하기도 했다. 횡령 자금 관리는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직접 개설할 만큼 치밀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빼낸 돈은 이사장 개인의 아파트 구입과 자가용 구입 따위로 치부에 사용되었다.
김씨는 양심선언 다음날에 전격 해임되었지만 경찰은 재단에 대한 수사를 벌여 김씨의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지난 12월31일 박이사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현재 박이사장을 포함한 법인 이사들은 전원 사퇴한 뒤 관선이사 파견을 기다리고 있다.

김중년씨는 기자에게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심정을 전국의 사학재단 행정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도 자기 목숨이 두려워 말하는 자가 없는 상황에서 죽을 각오로 외쳐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비장한 심경을 전했다.
 이처럼 재단 사정을 잘 아는 행정실 근무자들의 내부 고발로 공개되는 사학비리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사학비리는 교사들에 의해 드러난다. 그러나 비리 재단의 치밀한 수법 앞에 비전문가인 일선 교사들이 적발해내는 비리란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 18개 학교 특별감사 의뢰

 서울 금천구에 있는 동일학원 산하 동일여고 정문 앞 조그만 지하 쪽방에서는 재단 비리를 고발했다가 직위해제당한 이 학교 교사 3명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1월12일, 기자는 방학 중임에도 이들을 위로하기 찾아온 20여 명의 동료 교사와 함께 이들의 쪽방을 찾았다. 음영소·조연희·박승진 세 교사는 오랫동안 저질러진 동일학원 재단 비리를 조사해 지난 2003년 3월 서울시 교육청에 진정했다. 처음에는 미적거리던 교육청에서도 이들이 낮에는 수업을 마친 뒤 밤에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자 두 달이 지나서야 재단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이들 교사가 시정을 요구한 제보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재단 이사장은 학생들 급식비 따위에서 10억원을 유용하고 졸업생들을 상대로 동창회비 명목으로 3억7천만원을 강제 징수해 엉뚱한 곳에 사용했다. 또 교육청 허가도 받지 않고 교육용 토지에 이사장 개인 건물을 지어 사설 학원 업자들에게 임대해준 점도 드러났다. 이 밖에 학교 식당 건물에 문방구를 임대해 5천만원을 받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사장과 아들의 개인 차량 유지비도 학생들 수업료에서 빼내 썼다. 이런 비리는 다른 여느 사학과 마찬가지로 이사장이 부인과 아들, 딸, 며느리, 사돈 등 친인척을 교장과 서무과장 같은 주요 부서에 앉혀두는 족벌 경영 체제에서 가능했다. 

 
교육청은 동일학원에 대한 특별감사 이후 8억원가량을 학부모들에게 반환하도록 지시하고 이사장을 형사 고발했다. 그러나 이런 비리를 교육청에 진정한 세 교사는 보복성 직위해제를 당했다. 재단에서는 비리를 외부에 알린 세 교사를 검찰에 고발해 검찰이 일부 혐의를 인정해 기소하자 현행 사립학교법의 허점을 이용해 기다렸다는 듯 직위해제했다.

 공립학교 내부 고발자들은 부패방지법의 보호 조항에 따라 신분 보장을 받지만 사립학교 내부 고발자는 보호는커녕 직위해제와 파면과 같은 불이익을 받는다. 동일여고뿐 아니라 서울 숭실중학교에서도 학교 내부 비리를 언론에 제보한 이중민 교사를 파면했다. 경기도 평택의 한광여고도 진 아무개 교사가 재단의 회계 조작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8월 그를 직위해제시켰다.

결국 사학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현행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비리 사학들이 마음먹고 대를 이어 부정을 저지르는 악순환 고리를 제대로 끊어낼 수 없다. 반면 투명한 사학을 만들기 위해 나선 내부 고발자들의 의로운 외침에는 앞서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파면·구속·직위 해제 같은 신분상 불이익은 물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사학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여당은 뒤늦게야 전국 사립 중·고교 재단의 만연된 부정·비리에 대해 칼을 들었다. 열린우리당 교육위원회는 1월11일 그동안 집계한 전국 30여 개 사학재단의 부정비리 제보 내용 가운데 비리 혐의가 짙은 18개 학교에 대해 교육청에 특별감사를 의뢰했다. 그동안 사학 비리에 대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교육관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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