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이 기획 상품이 되었나
  • 김형석 (월간 <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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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워드]■ 오리엔탈리즘:<게이샤의 추억> <라스트 사무라이>

 
이데올로기라는 틀로 엄정하게 재단하지만 않는다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는 에스닉 룩(ethnic look) 같은 패션 아이템의 한 가지일 뿐이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볼 때 이국적인 취향을 강조한 이 스타일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장 폴 고티에 같은 패션 거장들도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여기에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아랍인 비교문학 학자의 패러다임이 개입되면, 그 단어는 사뭇 다른 지평을 열어젖힌다.

  혹시나 이 단어가 조금은 낯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그 사고의 방식이 억압적이라는 데 있다. 서양인들은 동양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통해 동양을 지배하려 했고 이것은 그들의 식민주의와 결합했다. 동양은 서양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흑백논리 위에 성립하는 오리엔탈리즘은 문화적 상대주의와는 다르다.

그런데 칼 마르크스 같은 위대한 철학자도 “동양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라며 오리엔탈리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지배-피지배 관계를 전제한다면, 서양에 대한 동양의 막연한 고정관념인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과 서구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 사이에 평등한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문화적 속성이 강한 오리엔탈리즘이 가장 활개치는 분야는 아마도 영화일 것이다. 최근 개봉한 <게이샤의 추억>은 그 전형이다. 역사적으로 서구인들은 일본에 대해 강한 신비감과 묘한 공포감을 가져왔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라는 저서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수많은 기호에 완전히 매혹된다. 젓가락, 파친코, 사찰, 스모, 분재, 사무라이, 그리고 게이샤의 독특한 화장. 특히 게이샤와 사무라이는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며, <게이샤의 추억>은 게이샤(藝者)라는 존재들이 지닌 미적인 면을 극대화한다.

재미있는 것은 주요 게이샤 캐릭터인 장쯔이, 궁리(), 양쯔충(양자경)이 모두 중국계 배우라는 사실이다. 한때 한국 배우도 캐스팅 물망에 올랐던 이 영화에서 게이샤라는 존재는, 어쩌면 ‘동양의 신비한 여인’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가 하면 <라스트 사무라이>는 오리엔탈리즘이 파악한 사무라이 이미지의 극단적 양상이다.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책에서 저자 김려실은 서구인이 사무라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의 근원은 메이지 시대 지식인이었던 니토베 이나조가 1899년에 영어로 쓴 <무사도, 일본의 정신>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의하면 사무라이는 ‘강한 정신력과 고결한 도덕성을 갖춘 이상적인 인간’이다. 주인공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가 보기에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인 카쓰모토(와타나베 켄)는 기사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어쩌면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멸종된 희귀하고도 위대한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개화론자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은, 동양인이 서구에 동화하려 할 때에는 차별하지만 영원히 ‘다른 존재’로 남아 있을 때에는 숭상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일본에 CF를 찍으러 온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보브 해리스(빌 머레이)는 실제로 일본을 접하기 전에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힌 미국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난 일본은 전혀 신비롭지 않았고, 이런 환상이 깨지면서부터 그는 권태에 빠진다.

아마도 오리엔탈리즘의 영원한 텍스트는 <나비 부인>일 것이다. 미국인과 사랑에 빠진 게이샤가 배신당하자 자살한다는 이 이야기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M. 버터플라이>에서 매우 기묘하게 뒤틀린다. 1964년, 베이징 주재 프랑스 외교관인 갈리마르(제레미 아이언스)는 오페라 <나비 부인>을 보러 갔다가 여주인공 쏭릴린(존 론)에게 매혹된다. 갈리마르는 그녀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고 외교 기밀문서를 빼돌리지만, 알고 보니 쏭릴린은 남자였다. 갈리마르는 본국으로 송환되고 쏭릴린은 공연 중에 진짜로 자살한다. 오리엔탈리즘 드라마 <나비 부인>은 그렇게 파멸을 맞이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할리우드와 유럽의 영화들이 오리엔탈리즘에 기댄다.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에서 가미가제를 동경하던 일본 소년, <007 어나더데이>와 <007 두 번 산다> 같은 액션 첩보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 이미지, <레모>와 <베스트 키드>에서 주인공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태권도와 가라테 고수, <마지막 황제>의 자금성 풍경과 황실의 모습, <티벳에서의 7년>의 달라이 라마, <킬 빌>의 일본식 정원, <패왕별희>의 경극과 호모 섹슈얼리티…. 흥미로운 것은, 동양에서 만들어지는 이른바 ‘국제 영화제용 영화’들이 가끔씩은 오리엔탈리즘을 자초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오리엔탈리즘도 기획 상품이 된 걸까? 어쩌면 그것은 앞에서 얘기했던 ‘패션’ 혹은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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