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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꿈이 영그는 농촌

농민 1백12명이 농사로 연간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며 ‘FTA 공세’에 한 답안을 보여주는 경남 함양군을 찾았다.

소종섭 기자 ㅣ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2.13(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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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윤무영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농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흥 농민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경영 기법과 신기술을 바탕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남 함양군이다. 천사령 함양군수(오른쪽)가 농민들과 함께했다
 
지난 2월4일 천사령 경남 함양군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흥수 농림부장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2월 임시국회가 끝나면 농림부 국장들과 함께 함양을 방문할 예정이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천군수는 “중앙에서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조만간 함양이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부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천군수의 자신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함양군 사례는 지난해 11월23일 쌀 협상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올 2월3일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겠다는 선언이 나오는 등 농업계가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이런 개방 파고를 헤쳐갈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1만7천여 세대, 4만1천여 명이 살고 있는 함양은 경상남도 10개 군 가운데 인구가 뒤에서 세 번째다. 국립공원인 지리산 천왕봉과 덕유산이 있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60%를 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100+100 운동’으로 부유한 장수 마을 만들기 전력투구

이런 함양군이 지난 2일, 2005년 말 현재 1억원 이상 고소득을 올리는 농민이 1백12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함양군의 고소득자 농민 수는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25명, 71명이었다. 그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들 ‘신흥 농민’은 보통 소득의 70% 정도를 순수익으로 올린다. 흑돼지를 기르는 박영식씨가 6억2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려 최고를 기록했다. 마을 단위로는 주로 사과를 재배하는 수동면 도북마을이 1억원을 넘게 벌어들인 농민이 무려 일곱 명이나 되어 최고 부자 마을로 꼽혔다. 연 8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 소득을 올리는 농민도 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내년에는 올해보다 고소득 농민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함양군 농업진흥과 노원섭 농정기획계장은 “담당 공무원들이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말에서 올 1월 중순까지 농민들과 개별 면담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농민들이 세금 문제 때문에 되도록 소득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조사하는 데 애를 먹었다”라고 말했다.

함양군은 지난 2003년부터 ‘100+100 운동’을 추진해 왔는데, 농가 소득과 관련해서는 당초 계획보다 3년 앞당겨 목표를 달성했다. 100+100 운동은 소득을 1억원 이상 연간 올리는 농민 100명과 100세 이상 사는 농민 100명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다. 천군수는 “건강하게, 부자로, 오래 살자는 취지에서 100+100 운동을 시작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17쪽 천사령 군수 인터뷰 기사 참조).

물론 함양군의 사례를 한국 농가 전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고령이고, 농가 부채 상환 능력이 35.2%에 불과하며 쌀 농가의 연간 소득이 20% 이상 감소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의 절망감이 날로 깊어가는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2008년부터 발효된다면 농업 부문 피해액이 적게는 1조5천억원에서 많게는 8조8천억원에 달하리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농촌이 궤멸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함양군의 사례를 일부만의 특수 사례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자세히 살펴보면 농민 개인의 노력에다 해당 지자체인 함양군, 그리고 중앙 정부의 정책 방향이 공동으로 일군 성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난관을 헤쳐가야 하는 농민들뿐 아니라 정책 당국자들 입장에서도 함양의 사례는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함양에서 지난해 고소득을 올린 부자 농민들이 많이 늘어난 데는 축산물 가격이 2004년에 비해 30%가량 오른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이보다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함양은 기본적인 자연 조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해발 100~800m에 이르는 고랭지 지역이고, 낮과 밤의 연평균 온도 차가 13도를 넘는다. 기온 차가 크면 낮에 흡수한 영양분이 밤에 그대로 작물에 농축될 수 있기 때문에 당도가 높아지고 맛이 좋다.

땅에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것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이점이다. 경상대학교 백우현 교수팀이 2004년 6월 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함양 지역 토양의 평균 게르마늄 함량은 1.70mg/kg으로 나타났다. 인근 경남·부산·울산 지역의 평균 함량(0.30mg/kg)보다 6배 가량 높다. 게르마늄은 과일의 당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양군 농업기술센터 노대상 소장은 “온도 차가 크니 과일이 무르지 않아 상대적으로 긴 기간 수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노소장은 실질적인 비용 면에서도 고랭지 지역인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파프리카의 경우, 고랭지가 아닌 곳에서 경작하면 네 배 이상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다. 딸기도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보다 상자당 1천원 정도 더 비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함양 농민들이 고소득을 올린 비결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농민 권윤경씨는 “지역 특성에 맞는 작물을 선정해 맞춤식 교육을 한 것이 주효했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함양군은 경상대학 연구팀에게 기후와 토양 분석을 맡겨 남부권은 사과·양파·옻나무, 북부권은 고랭지 채소·포도 등을 주 작물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돈이 되는 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한 것이다.

   
  농림부는 교육 체계를 전면 혁신해 ‘농업인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위는 지난해 11월 ‘한국 농업 희망선언문’을 채택한 벤처 농업인들.  
천사령 군수는 “쌀농사를 지으면 평당 2천원 정도 번다. 하지만 복분자는 평당 6천원을 벌 수 있다.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목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실제로 함양에서 1억원 이상을 버는 농민들의 작목별 분포를 보면 과수와 축산, 파프리카, 채소가 많고 벼는 두 명에 불과하다.

군에서는 선정된 작목에 대해 맞춤식 교육을 하는 등 빈틈없이 체계적으로 도왔다. ‘물레방아 사과연구회’ ‘함양딸기연구회’ ‘쌀연구회’ 등 자발적인 연구 모임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운영비를 보태주었다. 농민들은 이들 모임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수준 높은 기술을 서로 전수했다. 군 기술센터에서는 과수 담당계를 새로 만들어 사과와 배의 생산·유통·판매를 집중 지원했다.

함양군 기술센터 노대상 소장은 “교육을 받으려는 농민들이 넘쳐난다. 품목별로 전담 지도사가 붙어서 현장 지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략 작목 가운데 하나인 곶감의 경우 2003년 매출액이 5억원에 불과했는데 집중적인 지원 결과 불과 2년 만인 지난해 말 85억원으로 매출이 치솟았다. 올해 목표는 1백50억원어치를 파는 것이다.

군청이 ‘작목 선정·농민 교육’ 적극 주도

사과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진주산업대 ‘최고 농업경영자 과정’에서 교수들로부터 선진 경영 기법과 외국의 재배 기술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 8시간씩 진행되는 과정을 마친 농민이 지금까지 40명인데, 2백50만원에 달하는 수강료 중 2백만원을 군이 지원했다. 딸기를 재배하는 농민 박승문씨는 “이제 농민들도 공부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축산 농가의 경우 함양군이 나서 컨설팅을 받도록 도와주었다. 농민 6명이 6백만원씩 지원받아 컨설팅 회사 세 곳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사료를 절감하는 방법, 맛있는 고기를 생산하는 돼지를 키우는 방법, 경비 절감 방법 등을 배운 것이다.
함양군 농업진흥과 김종하 과장은 “지난해 농업 분야에 2백50억원을 지원했다. 친환경 농업만이 살길이다. 다른 예산보다 이 분야에 5% 이상 돈을 더 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말에는 우수 농민 11명을 뽑아 외국의 선진 기술을 습득하는 해외 연수도 실시할 계획이다.

사회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하고 발빠르게 대응한 것도 농민들이 고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몇 년 전부터 김치 냉장고가 일반화하면서 고랭지 배추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함양군은 고랭지 배추와 고랭지 무 대신 그 자리에 사과나무 단지를 조성하도록 지원했다. 지금 함양 사과는 한 상자에 10만원에 팔려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도토리묵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화제가 되자 이미 도토리묵의 개발과 관련한 검토에도 착수했다.

산간 오지 마을로 알려져 있던 함양의 변화는 천사령 현 군수가 취임한 2002년 이후부터 구체화했다. 농민 권윤경씨는 “무엇보다 그가 농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고소득 농민이 다수 늘어나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전에는 함양에서 생산한 사과라고 해도 통째로 도매상들에게 넘어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로 둔갑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군수가 ‘함양 사과’를 싣고 농민들과 함께 국내외를 오가면서 ‘독자적인 브랜드로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농민들에게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천군수는 전략 품목 선정→기술 보급→맞춤식 교육→마케팅 지원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함양군의 사례가 농림부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과 꼭 닮은 것도 주목된다. 지난 6일 농림부는 농업교육 체계를 대폭 바꾸겠다고 밝혔다. ‘중농 이상 규모가 있는 농가’를 대상으로 ‘현장 위주 맞춤형 교육’을 하며, 배워서 돈 되는 전문 기술과 경영 교육을 하는 쪽으로 교육 방향을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농민·지자체간 연계하는 교육 협력체도 구축하겠다고 했다.

농림부는 또 농민들을 지식 경영인, 농업 박사로 양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생산 기술, 경영, 마케팅, 브랜드 관리까지 종합적인 컨설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자격 업체가 난립했던 상황에서 농림부가 인증위원회를 열어 지난 1월26일 처음으로 36개 컨설팅 업체를 선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농림부는 지난해 35억원이었던 교육 예산을 올해 1백22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전국에 수많은 ‘함양’이 탄생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올해 농림부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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