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事大國 일본이 다가온다
  • 韓齋 (객원편집위원.東京) ()
  • 승인 1989.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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敗戰 40여년만에 自衞에서 패권주의로

일본이 軍事大國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의문은 지금 당장은 그 누구도 선뜻 만족할 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 難門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문제의 성격상 현상적으로 밖에는 다룰 수 없는데다 드러난 사실조차도 그 의도가 호도되기 일쑤이므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하나의 명징성 얻는다.
 마치 주어진 임의의 數를 계속 이등분해 나가면 수학적으로는 영원히 해답을 낼 수 없지만 어차피 그것은 零에 접근해 가리라는 명징성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을 성싶은 하찮은 사건들이 어떤 연장선 위에 올려놓으면 불현듯 입을 열기 시작한다. 지금 일본 국내의 정치⋅경제⋅사회⋅문학 각 분야에 걸쳐 틈틈이 튀어나오고 있는 작은 뉴스들을 집합시켜보면 그것들이 알게 모르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간파해 낼 수 있다.
 그 연장선을 따라 올라가보면 그것은 일본의 軍事大國化라는 不可視의 원주 위에 분명히 접선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일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군사대국으로 가는 머나먼 길을 들어서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음미할 만한 사실은 일본이 군사대국과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근거가 靜態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다. 지난 9울 중순 東京에서는 제56차 ‘퍼그워시(Pugwash)심포지엄’이 열렸다. 1957년, 당시 세계적인 양심으로 통하던 아인슈타인 박사와 버틀란드 러셀 卿의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核무기없는 세상’이란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된 ‘퍼그워시 심포지엄’은 그동안 해마다 두어차례씩 회의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결 론을 되풀이해 왔지만 역설적으로 세계의 핵병기는 이 회의의 次數가 증가하는 것과 비례해서 증가일로를 걸어왔던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핵무기 개발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북한이 사상 최초로 이번 대회에 대표를 파견한 일이었다.

가서는 안될길
 세상사란 대개 그렇다.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림자기 생기듯이 무리없어 보이는 행동도 그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일본내에 군사대국화의 진로를 우려하는 세력은 지금 당장 따지더라도 막강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필경 군사대국으로의 길을 가리라는 논리는 그 일반적인 유효성이 약화되지 않는다. 반대세력의 존재가, 반대논리의 횡행이 實體의 盧像으로 투영되고 있는 절호의 시대적 상황을 이용하여 일본은 가서는 안될 길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1989년은 일본식으로는 쇼와(昭和) 64년이다. 그러나 쇼와 64년은 성립되지 못하고 헤이세이(平成) 원년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63년 동안 神으로 군림해온 日王 히로히토(裕仁)가 세상을 뜬 것이다. 연호가 바뀌면 새로운 기풍이 진작되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이 솟구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장 3천Km에 걸쳐 4천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떠오른 鳥國 일본에는 그 어둡고 괴로웠던 시절을 마감했다는 안도감이 한구석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나간 시절이 못내 그립다는 식의 회고조가 매스미디어를 휩쓸었다.
 ‘천황’의 와병기간은 꽤 길었기 때문에 신문과 TV 등은 소위 ‘X-데이 특급’이라는 것을 완벽히 준비할 수 있었다. X-데이란 바로 ‘천황’의 사망일. 有故의 제1보가 날아드는 순간 곹바로 보도⋅방송할 수 있는 X-데이 특집물은 장구한 쇼와시대에 축적된 엄청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알찬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노인들에게는 과거를 추억시키고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는 전세계를 상대로 ‘당당히 싸운 자랑스러운 일본’을 선전하는 기획이었다. 특히 8개 TV 채널에서 다투어 종일 내보낸 특집은 마치 새로운 軍國主義의 선전물 같은 인상이었다.

왜곡된 白人공포증
 역사를 감추고 왜곡시킨 일본의 교과서 문제만 하더라도 주변국을 분노케 한 사건이었으나 결론적으로 文部省의 교과서 검열권을 인정한 최근의 공판 결과에서 드러나듯 일본은 그들의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開化 후 수세기 동안 백인들에게 당해온 멸시를 投射시키려는 그들의 심리상태가 엿보였다.
 “東亞민족이 앵글로 색슨을 우수 인종으로 여겨 두려워하고 또 존경하는 것은 거의 미신에 가까울 정도이다. 따라서 앵글로 색슨을 東亞에 남겨놓으면 東亞 여러민족의 미신은 장구한 시일을 두고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東亞 여러민족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해방하는 첫걸음은 앵글로 색슨을 東亞로부터 추방하는 길밖에 없다.”
 1941년 12월 ‘천황’의 선전포고문을 미화시킨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해설서에 나오는 유명한 대복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일본에는 백인공포증의 미신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것은 때로는 일본인들에게 ‘白禍’를 그곡하려는 의지의 실마리도 제공해주지만 그보다는 eocph 자변구 아시아인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강력한 구실로 작용한다. 이같은 민족심리상태는 隔世遺傅的(atavisitic) 이어서 묘한 가해와 피해의 연쇄환을 형성하는 것이다. 베일에 감사인 채 표면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는 그같은 민족심리의 존재야말로 언젠가는 일본인의 好戰性에 불을 붙일 도하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은 교과서를 개정할 수 없으며 주변 아시아인들을 계속 열등인종으로 존속시켜 보상심리를 만족 시켜야 하는 것이다.
 원자탄을 맞음으로써 일본은 2차대전의 가해국에서 피해국의 위치로 둔갑하였다.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8⋅15를 패전일이 아닌 終戰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해자로서 군국 일본의 입장이 부각되거나 그것을 반성하는 대목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금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8⋅15에는 東京에서 매우 희한한 사태가 발생했다. 13명의 정부 각료와 1백80여명의 自民黨의원이 대거야스쿠니(靖國) 神社에 참배한 사태가 그것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도조 히데기(東英)를 비롯하여 2백46만명의 일본군 영령이 묻혀있는 야스쿠니神社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일본은 군대가 없는 나라이다.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공군도 없다. 일본 헌법 제9조 1항을 보면 일본은 國權을 발동하는 전쟁을 영원히 포기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려는 수단으로는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放棄한다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 군대가 필요할 까닭이 없다.
 실제로 헌법 제9조 2항에서는 “육⋅해⋅공군과 기타의 戰力은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실제로는 3백만 大軍
 그러나 일본에는 군대가 있다. 다만 명칭이 다를 뿐이다. 1954년 美⋅日안보조약의 타결과 함께 그동안 경찰예비대, 보안대의 이름으로 불리던 일단의 경비병력이 自衛隊라는 새로운 명칭의 군대로 창설⋅개편된 것이다.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 그리고 항공자위대로 3분되어 육⋅해⋅공군의 역할을 맡고 있는 ‘군대 아닌 군대’로서의 일본군은 여늬 군대나 마찬가지의 편제로 구성돼 있다. 일본의 자위대가 다른 나라 군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위대가 엄격한 文民統別하에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보면 육상자위대가 병력 18만명, 항공기 3백97기, 전차 1천2백대, 장갑차 6백50대, 자주포 6백50문, 야포 및 고사포 5천5백80문, 기관총 및 소화기 23만7천8백10정이다. 해상자위대는 병력 4만6천4백명, 호위함 52척, 지원함 3백16척, 잠수함 14척, 기뢰정⋅초계정⋅수송함 등 94척, 항공기 1백94기의 실력. 항공자위대는 조기경보기(AWACS) 8기, 나이키 미사일 6개 부대, 전투기 3백11기, 수송기 48기, 기타 항공기 4백17기의 편제이며 병력수는 4만7천여명.
 3개 자위대를 통괄하는 統合본부에 고급지휘관 1백65명이 배치돼 있으므로 일본군의 89년도 병력규모는 27만4천3백60명이 된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약5만명 가량의 미군 병력을 제외하고 순수한 일본군 병력만 27만여명에 달한다는 얘기다. 한국군 병력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성싶지만 실은 한국군을 다섯배는 능가하고도 남는다. 병력규모의 비교는 단순한 양적 비교로서는 정곡을 찌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병들이란 단기간의 훈련으로 얼마든지 급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교와 기간병 등 고급간부들이다. 이들을 양성해내려면 1인당 최소 3∼4년의 장기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위대 병력은 거의 고급간부들이다. 또한 자위대 하사관의 봉급이 미군 소령의 봉급보다 많다는 사실은 일본 군부의 중추가 계속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따라서 일단 유사시 일본은 한 달 후면 3백만의 대군으로 돌연 둔갑할 수 있는 것이다. 간부 1인당 10명의 병사를 거느린다고 보았을 때의 계산이 그렇다. 20명을 거느린다면 6백만 대군의 급조도 가능하다. 자위대 27만여명이란 허상 뒤에 숨은 실체를 찾아내보면 거기엔 가공할 만한 위력이 숨겨지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자위대의 훈련은 대폭 증가되었다. 해상자위대 소속 잠수함이 민간선박과 충돌하는 사고가 빚어진 것이라든지 항공자위대 소속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하는 사고가 잇따라 터지는 것을 보면 금년들어 대폭 증가된 훈련량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 9월 2, 3일 양일간 후지산(富士山)의 육상자위대 연습장에서 벌어진 ‘총합 회력 연습’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중대한 계기였다. 전차와 차량 2백30대, 대포 70문, 병력 1천6백명이 동원된 이번 기동연습은 이틀 동안 거의 1백톤의 실탄을 소비했으며 그것은 3억엔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문제는 그런 오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육상자위대의 기동훈련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방어연습이었다.
 그러나 금년엔 그것이 공격연습으로 돌변했다. 이같은 훈련기조의 전환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공격’으로 전환한 기동훈련
 자위대의 기동연습은 일반에 공개하는 게 관례로 돼 있다. 수용시설은 7천여석.
 그런데 금년에는 예년과는 달리 7만여명의 관중이 쇄도했다. 이것이 우연일까. 우연은 아니다. 일본의 시대정신이 그렇게 변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을 미리 꿰뚫어본 자위대는 훈련기조를 공격일변도로 전환시켰을 것이다. 軍을 지지하고, 군을 신뢰하는 민중의 호흡, 일본의 자위대는 군사대국으로 가는 첫 좌표의 점검에서 무엇보다도 그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기동연습에서 육상자위대가 거둔 가장 큰 전과는 수용인원의 10배가 넘는 관중이었다”고 술회한 한 자위대 간부의 말은 충분히 의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지난 8월 초에 발표된 일본이 경제白書는 일본의 경제적 지행을 資産大國의 길에서 찾고 있다. 이미 지난 87년말로 국민자산 규모에서 미국을 압도한 일본은 명실공히 세계최대의 國富를 자랑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경제적 성세는 세계 각국에서 마찰을 빚고 있거니와 미국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려 놓아 자칫하면 예기치 못할 돌발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자산대국으로서의 일본’은 군사대국으로서의 일본보다 몇갑절 더 가공스러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자산대국과 군사대국은 서로가 서로의 필요충분 조건이기 때문이다.
 ≪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이란 88년도의 베스트셀러에서 저자 폴 케네디는 일본이 20세기 전반에 무력을 동원해서도 구축에 실패한 ‘大東亞共榮圈’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총 한방 쏘지 않고 건설했다고 쓰고 있다. 동남아 각국이 예외없이 큰 폭의 對日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을 새로운 ‘대동아공영권’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돈은 곧 힘이다. 부자에게는 몸조심 외에는 별로 일이 없다. 돈많은 일본에게는 따라서 돈의 힘을 실질적인 무력으로 치환시키는 방법론만이 앞으로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제거해야 할 세가지의 장애가 있다. 일본정부와 극우파 인사들과 자위대 간부들이 인심전심으로 합의하고 있을 그 세가지의 장애는 일본의 어떤 군사평론가에게 물어도 단번에 술술 풀려나온다. 그 세가지의 장애란 무엇인가.

세계 여론 막기 위해 外文공세
 첫째는 세계의 여론이다. 일본이 무장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다면 전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세계의 여론은 8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총리의 야스쿠니神社 방문계획을 좌절시켰다. 일본의 방위예산이 GNP의 1%선을 돌파했던 지난 87년 전세계에 메아리진 원성은 얼마나 혹독했던 것인가. 일본 정부는 그것을 누구보다고 더 잘알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일본은 비책과 奇計를 동원할 것이 확실시된다.
 정면으로는 전세계를 상대로 외교공세를 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평많은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ODA(정부개발원조)를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정부가 이와같은 전략을 동원하리라는 것은 현재 의회에 올라가 있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그대로 확인된다는 점이 놀라운 사실이다.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요구액은 모두 금년도 예산에서 한자리 숫자의 증가율밖에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유독 두 군데만이 두자리 숫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그 첫째가 외무성 예산(14.6% 증액)이고 그 둘째가 ODA예산(10.3% 증액)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어떤 부처인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방위청 예산(6.3% 증액)인 것이다. 실로 이것은 일사불란한 기획이다. 국제사회에서 구두쇠로 소문난 일본이 내년에 8천3백억엔의 돈을 개도국원조에 쓰겠다는 계획이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
 90년의 일본 방위예산은 4조엔이 넘는 거약으로 예년의 한국정부 전체예산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 규모의 위력을 최근 발표된 국제 전략문제연구소의 <밀리터리 밸런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일본이 방위예산은 서방 세계에서 최고”라고.

고도의 군사기술
 일본이 건너야 할 제2의 장애는 군사장비 획득에 관한 것이다. 향후 군사장비의 획득에 있어서 그 경제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조심스러운 일본식 표현방법으로 이 문제는 제기된다.
 그 말을 쉽게 풀이하면 미국이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장비를 국산화할 것인가 하는 표현인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 쪽에서도 많은 장비를 사들였지만 주요창구는 미국이었다. 원자탄으로 한방 먹여주었지만 그래도 지금껏 안보조약을 틀로 하여 일본을 핵우산 아래서 지켜온 것이 미국이었다. 방위비 걱정없이 경제부흥에만 전력을 투구한 결과 어느덧 일본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일본이 방위장비를 미국에서 사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역시 큰 논란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런 미묘한 문제야말로 그 해결에는 일본인들이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미국은 수모를 당하면서 對日무기판매 계획을 취소해야 할 만한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그 시기는 일본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우될 것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현존하는 美.日관계의 틀도 크게 수정될 것임이 틀림없다. 일본이 미국의 무기를 보이코트하려면 일제무기가 미국제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참으로 간단한 일이다. 바로 그 점에 유의해온 일본의 방위청은 그 심도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분량의 기술을 축적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말로는 미국의 기술이 10년은 앞섰느니 일제 장미는 아직 멀었다느니 하면서 더듬수를 놓고 있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날엔 전세계가 놀랄 것이다.
 일본이 제거해야 할 세 번째의 장애는 바로 平和法이다.
 헌법개정과 軍國부활을 절규하면서 할복자살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처참한 최후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선하다. 그 맥락을 이어 지금 이시간에도 東京의 거리에서는 우익 행동대의 검은 트럭이 헌법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군은 헌법의 틀에 묶여 군대이면서도 군대라는 이름마저 갖지 못하고 있는 등 일거수일투족에 제약을 받고 있다. 독자적인 전략구상을 가지려면 적어도 행동반경은 확보해야 한다. 군사대국으로 가려면 소위 문민통제 체제를 어떻게든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은 현실에 얽매어 있는 일본의 방위청에 귀가 솔깃할 만한 희소식이 9월 초순 서독으로부터 날아들었다.

憲法개정을 위한 포석
 일본이 그래왔듯이 서독 역시 2차대전의 범죄국으로서 자숙하는 의미에서 지금껏 자국군대의 해외파견은 비록 그것이 평화적인 임무라 할지라도 사양해왔다. 그러나 마침내 서독 젇부는 그 터부를 깨트리는 결정을 내렸다. 나미비아에서 치러지는 선거의 감시병력으로 UN군의 기치 아래 행동할 서독 군부대의 파견이 결정된 것이다.
 이 뉴스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일본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그로써 방위청은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넓힐 수 있는 근거와 함께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잡은 셈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위청은 미국가 합동으로 벌이는 ‘파섹스 89’훈련은 평화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갑자기 선언했다.
 이미 시작된 ‘파섹스 89’ 美⋅日합동훈련은 필리핀과 오스트레일리아도 참가한 대규모 기동훈련이다. 그런데 아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는데 방위청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훈련의 헌법위반 여부를 거론하는가 말이다. 땅속에 묻어둔 금덩이를 지키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묻은 뒤 “여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이란 푯말을 세우는 얼간이 꼴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국제훈련참가는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위헌적인 국제훈련에 이미 여러차례 참가했었다.
 일본 헌법을 기초한 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에 진주해온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서였다. 맥아더는 일보니 다시 총을 잡고 일어서지 못하도록 군대도 가직 수 없게 했으며, 나아가서는 어떤 집단 방위체제에도 편입할 수 없고, 어떤 집단 방어훈련에도 참가할수 없도록 했다. 일본 헌법을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따럿 일본 자위대이 훈련 참가는 명백한 위헌인 것이다. “너희들이 만들어준 헌법인데 우리가 왜 위헌적인 훈련에 참가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려거든 벌써 했어야 옳았다.

방위白書에 의한 위기감 조성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지금와서 그 문제를 일부러 거론하는가. 그 이유는 명백하다. 평화헌법과 자위대의 미래적 행동반경이 모순되고 있다는 점을 차제에 양성화시켜 헌법개정 요구의의 빌미를 만들어보자는 복선이 깔려있는 것이다.
 물론 헌법개정은 일본의 의도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세계 여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국내에서도 격심한 논쟁이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각의 總理府는 민심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총리부가 이따금씩 “자위대와 美⋅日안보체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때를 기다리는 일본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군사대국으로 가기 위해 일본이 건너야할 세계의 江. 그 세 개의 장애는 실로 어려운 관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은 부단히 그 장애에 도전할 것이다. 바로 얼마전에 발표된 일본의 방위 白書는 그와같은 도전의 일환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만큼 구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백서는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여 소련의 군사정세를 분석해 놓았으며, 소련 극동군의 군사 배치상황을 세밀히 지적하고, 배치도마저 제시한 점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데탕트의 시대.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일방적으로 군비삭감을 표명하고 中⋅◯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평화공세를 취하고 있으며 모스크바방송과 미국의 소리방송(VOA)이 대전 후 최초로 상호비방을 중지하는 등 美.蘇관계도 최고조이 긴장완화 무드를 타고 있다. 이런 시점에 등장한 방위백서의 일방적인 위기감 조성은 아무리 일본 제1의 ‘假想의 敵’이 소련이라 할지라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당에게 패배한 집권 자민당은 그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인 소비세 문제를 재조정해야 하고 안팎으로 쌓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많은 짐을 안고 있다. 곧 닥쳐올 중의원해산 및 총선거에 대비해서 사회당은 美⋅日안보체제를 인정하고 자위대마저 인정하는 등 정책적인 급선회를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방위백서에 의한 위기감 조성은 자민당의 선거용 책략이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설령 지난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뒀다 하더라도 방위백서의 논리는 변함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은 더 큰 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세 개의 장애는 당장은 개선불능이며 시간의 경과가 요구되는 과제인 것은 장애의 성격상 명백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일본이 서둘러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취약점을 분석해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석유의 공급이 중단되면 끝장이다. 석유의 수송로는 일본의 생명선인 것이다.

“옛날로 가자”
 그 엄청난 세계제일의 경제대국이 사실은 어처구니없는 약점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으로 원유수송루트는 미국함대의 지배하에 있다. 따라서 일본의 우수마발을 다 합친 절대적인 요구는 원유수송로의 보호임무를 일본의 몫으로 하자는 소리없는 아우성인 것이다.
 지난 9월 초 워싱턴에서 베이커 美국무장관을 만난 나카야마 타로일본 외상은 5만여 주일 미군이 주둔 경비를 일본이 부담해달라는 미국측의 요구를 이상스럽게도 즉각 수락했다. 그대신 일본이 요구한 것은 “일본이 방위의 영역을 넒힐 수 있도록 고려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나카야마 외상의 표현을 바꿔 말하면 일본 해상자위대가 일본 수역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히노마루’를 단 일본 군함이 국제수역에 진출하는 날이면 이미 버석거리고 있는 평화 헌법의 일각은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되면 그로부터 벌어지게 될 군사대국 일본의 드라마는 새로운 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자민당의 참의원 국방부회장을 지냈던 겐다 미노루가 쓰러진 것은 지난 8월의 어느 뜨거웠던 여름날 오후,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중장 휘하의 기동부대 항공참모로서 진주만 기습공격을 직접 지휘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 44년만에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가 죽은 다음날 전격적으로 해상자위대 막료장(참모총장)이 갈렸다. 방위대학 1기생 출신의 젊고 야심만만한 사꾸마 하지메 해장이 해상자위대의 통수권을 잡은 것이다.
 이제 새로운 직책을 맡은 지 두 달 남짓. 그러나 그의 뇌리 속에는 겐다의 빈소에서 들었던 일본해군 영광의 기록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응어리가 되어 그의 가슴 속에서 계속 파동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옛날로 가자. 옛날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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