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힘 식지 않은 ‘경제 사령탑’
  • 이철현 기자 (leosisapress.comkr)
  • 승인 2006.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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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경제 부처 중 영향력 1위…최고 파워맨은 김용민 세제실장
 
재정경제부는 명예로운 경제기획원과 함센 재무부를 합쳐 만든 재정경제원의 후신이다. 언뜻 보아도 막강 부처인데도, 재정경제원 출신 관료들은 재경부가 ‘이빨·손톱·발톱이 빠진 종이 호랑이’라고 한탄한다. 예산 업무는 기획예산처에 뺏기고, 금융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가 가져가고, 통화신용정책은 한국은행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관료들은 재경부를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부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에서도 재경부는 경제 부처 열 곳 가운데 영향력 1위 부처로 뽑혔다. 박병원 재경부 제1차관은 “재경부가 아직까지 영향력 1위 부서로 꼽히는 것은 부총리 부처라는 ‘후광 효과’ 덕을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개발 연대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영화의 잔영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 개 경제 부처 소속 실·국장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는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이 뽑혔다. 세제실장은 국가 조세 정책을 총괄·지휘하는 자리다. 과거 개발 연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맞추어 한정된 금융 자원을 수출 위주 기간 산업에 집중 투입하다 보니 자원 배분과 금융기관 통제 권한을 가진 재무부 이재국(재경부 금융정책국 전신)이 막강했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선진화하고 금융 자율화가 진전되면서 금융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정부는 점차 금융 정책보다 재정 정책에 의존해 경제 운용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재정 정책의 한 축이 조세 정책이다. 조세업무는 국가 살림살이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 1차 임무이지만 세원이나 세율, 과세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볼 수 있듯이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중과나 실거래가 과세는 세입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정책 효과를 기대한 경제 정책이다.

‘가장 유망한 재경부 관료’는 임영록 국장

김실장은 실제로 8·31부동산대책기획단에 참여해 조세 정책을 입안했다. 김실장은 사회 안전망을 늘리고 고령화 대책 실행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 제도를 개혁하는 업무까지 맡고 있다. 조세 정책이 경제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정책으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김실장은 1급(관리관)이라 재경부 인사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인사에 관여할 수 있다. 과장 이하 인사를 최종적으로 심의·의결하는 인사위원회(위원장 박병원 제1차관)는 1급으로 구성되었다. 재경부 4대 요직 국장이 2급이다 보니 이들은 재경부 전체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단지 자기가 관할하는 국에서 함께 일할 과장이나 서기관을 선발할 수 있을 뿐이다. 재경부는 1년6개월 전 보직 스카우트 시스템을 도입해 직속 상급자가 함께 일할 부하를 뽑을 수 있게 했다.

임영록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하 금정국장)은 전체 순위에서는 한 표 차이로 2위로 밀렸으나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보좌관·상임위원과 재경부 출입 기자는 임국장을 재경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다. 전체 조사에서 1위에 오른 김용민 실장은 재경부 내부에서는 2위로 밀렸다. 임국장은 또 ‘가장 앞날이 기대되는 인물’로도 뽑혔다.

금정국은 ‘파워풀한’ 재무부 가운데서도 가장 힘이 셌던 이재국 후신이다. 금정국장은 경제의 혈맥이라는 금융 산업의 큰 틀을 짜고 운영 방향을 결정한다. 경제부처 장ㆍ차관 상당수가 이재국이나 금정국을 거쳤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이재과장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때 금융 시장의 황제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금정국장의 권한이 축소된 것은 정부가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고 금융감독 업무를 이양하면서부터다. 재경부 고위 관료는 “시중 금융기관 임원들이 점심 먹자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을 찾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정국장이 주목받는 것은 금융 정책을 기획·입안하는 과정에서 금융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발표된 자본시장통합법이 대표 사례다. 금정국이 입안한 이 법안은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선물·옵션·증권·투신 업무 등으로 기업 금융업을 구분하던 장벽을 철폐해 금융 기업의 선진화와 대형화를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이 법안이 금융 산업에 미친 영향은 진도 10의 대지진과 같았다.

금정국이 단지 금융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사회 복지 제도에도 직·간접으로 개입한다. 고령화 추세에 맞추어 노후 생활 안정 대책으로 역모기지론 제도를 기획·입안한 곳도 금정국이다. 역모기지론은 부동산 자산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노인들이 집을 담보로 그 가치만큼 생활비를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 쓰고 사후에 집을 매각해 갚는 제도다. 또 생계형 신용불량자 처리 방안도 마련해 사회 불안 요인을 줄이는 데 한몫 했다. 임국장은 “생계형 신용불량자 수를 3백만명 아래로 끌어내린 것이 금정국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는 성취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했다.

국가 주요 정책에 직·간접으로 관련되다 보니 금정국장은 다른 경제 부처 공무원과 대화하고 업무를 조율해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임국장은 적임자라는 평을 듣는다. 박병원 차관은 “임국장은 균형 잡힌 공무원이다. 합리와 추진력을 두루 갖추어 금정국장에 적합한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임국장의 업무 처리능력은 재경부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은행제도과장으로 5대 시중 은행을 인가 취소하는 업무를 맡아 큰 탈 없이 마무리했고 2001년부터 2년 동안 정책조정심의관으로 있으면서 대우그룹을 비롯한 부실기업 처리 업무도 맡았다.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을 지낼 때는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를 타결해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부하 직원으로부터의 신망도 크다. 지난해 8월 재경부 소속 사무관 이하 직원이 ‘가장 닮고 싶은 리더’로 임국장을 꼽았다. 깔끔한 외모와 세련된 화술이 재경부 국장이라기보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주재 대사관에 파견된 외교관처럼 보인다. 이번 조사가 인기 투표라는 속성이 없지 않더라도 임국장이 재경부 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로 뽑힌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장태평 홍보관리실장(1급)은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3위에 올랐으나 앞날이 기대되는 인물에서는 밀렸다. 조원동 경제정책국장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장실장이 국회와 재경부 기자실을 오가며 의원 보좌관과 재경부 출입 기자를 많이 접촉하다 보니 표가 많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조원동 경제정책국장(2급)은 이제 지천명(知天命)인 데다가 ‘KS(경기고 서울대) 출신’이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 박사라는 것이 장래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듯하다. 또 경제정책국이 중장기 경제 운영 전략을 구상하고 수립하는 부서라는 점은 그의 승진가도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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