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참여정부 양극화 심화시켰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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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서울대 총장 인터뷰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흔한 말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말년’이다. 오는 7월이면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3월8일 만난 그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말을 아끼면서도 할 말은 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정총장은 퇴임한 뒤 교수로 돌아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제서를 펴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일관성이 없고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가고 있다”라고 보고 있었다. 서울대 본관 총장실에서 인터뷰하는 1시간 40여 분 내내 밖에서는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시위대가 매일 본관 앞까지 오나.
경찰이 시위대를 밀착해 막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과격해서 경찰청을 항의 방문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새로 부임한 관악경찰서장이 잘 방어하겠다고 해서 두고 보고 있다. 

정총장은 ‘황우석 사건’이 왜 발생했다고 보나.
우선 총장으로서 사과드린다. 윤리 의식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영광스러움에 취해 집단 히스테리 발작이라도 일으킬 지경이 아닌가 걱정된다. 연예인같이 스타가 되어야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 만큼 학자들을 차분하게 도와주었으면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대는 윤리 문제를 엄정하게 챙기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정비하겠다. 윤리 문제가 국제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선진국 대접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사건이었다.

 2002년 취임할 때 ‘서울대가 폐쇄적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열린 대학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어떤가.
성공했다. 취임 당시 40여 개 대학과 학술 교류 협정을 맺은 상태였는데 지금은 1백1개 대학과 실제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예일·프린스턴 대학과 협정을 맺은 것이 자랑스럽다. 3백 년 역사를 가진 예일대학이 다른 대학과 교류 협정을 맺은 것은 서울대가 처음이다. 국내 대학도 많이 다녔다. 고려대 총장 취임식에 가서 축사를 했고 연세대 이화여대 대구대 울산대 숙명여대도 갔다. 

대학 발전 기금도 많이 모았다고 들었다.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임기 중 1천억원을 모으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1천2백억원을 모았다. 퇴임할 때까지 1천5백억원을 모을 생각이다. 기업들이 건물을 지어준 것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현금으로 모은 돈이다. 돈은 대학이 발전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오늘 점심 때도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대기업 관계자를 만났다.

 
그러다가 재벌 비판론자로 알려진 정총장의 칼날이 무뎌지는 것 아닌가.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재벌이 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 적이 없다. 내가 비판한 것은 정책에 대한 것이었다. 규칙을 안 지키는 재벌은 벌을 받아야 하고 재벌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왔다는 것이었다. 총장이 되기 전에는 재벌뿐 아니라 관료들도 만나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아지면 객관적 사고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발전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만날 때도 당당하게 말한다. 서울대가 발전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그러면 당신들도 발전하니까 도와달라고 말한다. 

한국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의 힘이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삼성이든 다른 대기업이든 규칙을 지키면서 크는 것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규칙을 안 지킨다면 정부에서 견제해야 한다. 다만 한 기업이 너무 커지면 영향력이 과도하게 되어 사회를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대가 지식 전수자가 아닌 ‘지식 창출자’가 되어야 한다는 정총장의 언급은 서울대의 변화 방향을 제시한 것인가.
그렇다.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는 축적되어 있는 외국의 지식을 전달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많이 컸다. 철강 반도체 조선 등의 산업이 세계 1, 2위를 다툰다. 첨단 지식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상위 그룹을 유지할 수 없다. 이제는 전수를 넘어 지식을 창출해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다양화 증진, 기초 강화, 슬림화, 대학원 질적 강화 등으로 많이 노력했다. 대학이 비지성적인 전문가만을 양성해서는 안 된다.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지성·덕성·감성을 겸비한 학생을 양성해야 한다. 

대학이 자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말 중에 ‘대학은 투자를 토양으로 해서 자율을 공기 삼아 성장하는 기구’라는 말이 있다. 자율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지식을 창출하려면 연구 활동을 포함해 대학에 자율을 많이 주어야 한다. 누구를, 어떻게 뽑아서 가르칠 것인지는 대학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입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 과를 합하거나 나누는 문제 같은 것도 지금은 교육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대학에서 판단해 멋대로 하도록 두어야 한다. 포괄적인 자율이 필요하다. 대학들도 문제가 있다. 주어진 자율마저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무 기가 죽어 있어 안타깝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정총장 이름이 오르내린다. 정치에 관심이 있나.
중학교 2학년까지는 정치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머니가 늘 “우리 집안에 정승이 3대째 끊겼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나는 정승이 되어 우리 가문을 빛내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를 길러주다시피 한 F. 스코필드 박사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고 물어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 나는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최근 정치인들이 많이 찾아왔나.
귀찮을 정도로 찾아왔다. 제자까지 찾아와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을 권했다. 나는 그들에게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총장 임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안 나간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만났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상당수 서울대 교수들이 지지를 철회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나.
그렇다. 정의장은 ‘소득 계층 균형 선발’을 해달라고 했다. 내신이 좋은데 수능이 안 좋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을 서울대가 봉사 활동을 시켜 뽑아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지역 균형 선발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이 봉사 활동인지를 가늠하기가 힘들다며 실무자들과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정의장에게 대학 총장 선거를 지역 선관위가 관장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노대통령을 지지한 서울대 교수가 많지 않은데 최근에 더 줄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물었는데 답이 없으니 정의장이 헌법재판소가 빨리 결론을 내리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된다면 서울대 교수들이 정의장을 높게 평가할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이나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5공 청문회 때 처음에는 ‘용기 있구나’ 생각했는데 명패를 집어던져 실망했다. 3당 통합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다시 좋아했다. 당시 3당 통합에 반대했던 사람 몇 명과 함께 노대통령과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정은 되겠지만 아무 변화가 없을 것 같고, 노무현 후보는 거칠겠지만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고 생각해 노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다. 그런데 3년 동안 하는 것을 보니 일관성이 없고 한국 사회에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같이 일하는 분들도 전문 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 앞으로가 걱정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는 인연이 있나.
최근 비서실장이 왔다 갔다. 개인적으로 큰 인연은 없다. 나는 대학생 시절 지금 서울대 치과병원 밑에 있던 ‘정영사’라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박정희의 ‘정’자, 육영수의 ‘영’자를 따 지은 이름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당시 서울대 총장이 요청해 박대통령이 지어준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육여사가 방문할 때 박근혜씨도 같이 왔다. 이 기숙사에서 생활한 사람들이 만든 ‘정영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총장이 되기 전 그들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번 잠깐 만난 적이 있다. 

정총장은 최근 한국경제학회장이 되었다. 양극화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는데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양극화를 너무 강조하면 더 심해질까봐 걱정이다. 조용히 풀어야지 슬로건으로 푸는 것은 옳지 않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추세지만 정책 때문에 심화한 측면도 크다. 부동산 정책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 보니 땅값이 많이 올랐다.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경제 정책은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밀고 가야 한다.
현 정부는 경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힘써왔다고 자랑하는데 말이 안 된다. 햇빛 비치는 데 우산 쓴 격이다. 이제는 경기 부양책을 쓸 때가 됐다. 성장을 해야 고용이 이루어지는데 성장을 하려면 경기 부양을 해야 한다. 금융 정책은 별 효과가 없고 재정 정책을 써야 한다.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이 냉탕·온탕을 오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강한 정책을 썼다가 건설 경기가 얼어붙으면 풀어준다. 다시 부동산 값이 오르면 강하게 나간다. 결과적으로 땅값과 집값만 올려놓았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등 조기 영어 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찬성하지 않는다.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 우리말을 상당한 정도 배운 뒤에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왜 저렇게 떠드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교생들의 2004년 대학 진학률이 84%를 넘는다. 대학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많은 정도가 아니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손에 기름묻히기를 싫어한다. 대학 진학률이 제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제조업이 살아나기 힘들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대학은 물론 대학생 수를 줄이는 문제를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서울대는 지난해 학부생 6백50명, 올해 대학원생 7백50명을 그 전 해보다 적게 입학시켰다. 

논술이 화제다. 논술에 왕도가 있나.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이 왕도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이 논술이지 별 것 인가. 

총장 퇴임 이후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수로 돌아가 ‘경제란 무엇인가’ 같은 대중을 상대로 한 경제 서적을 펴내고 싶다. 지금까지는 대개 교과서와 연구서를 썼는데 내용이 있으면서도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베스트셀러를 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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