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뜨거운 감자’ 틈만 보이면 ‘삐죽’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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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묶는 ‘출자총액제한제’ 존폐 논란 재점화

 
‘당장 폐지하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출자총액제한 제도(출총제)를 둘러싸고 재계와 경쟁 당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출총제를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당 당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강봉균 정책위 의장이 ‘폐지 검토’ 발언을 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격해졌다. 재계는 두 손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은 ‘연말까지 미룰 일이 아니라 당장 폐지하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반면 민노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보다 강력한 재벌 정책을 촉구하는 쪽에서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 3월13일 강봉균 정책위 의장의 발언을 겨냥해 “열린우리당이 재벌비호당으로 전락했다”라며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출총제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강 전 위원장은 최근 “기업이 호소하는 애로점을 충분히 반영했다. 폐지까지 주장하는 것은 재계의 정치 공세일 뿐이다”라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미 동종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는 물론, 구조 조정 기업을 인수할 때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출총제 때문에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어 신임 권오승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도 내정 직후인 지난 3월15일 기존 정책을 존중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은 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제가 된 출자총액제도(주식보유한도제)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폐해를 막자는 취지로 마련된 제도이다. 순환 출자를 통한 부당한 지배력 확장을 막기 위해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다른 국내 회사 주식 보유 한도를 당해 회사 순자산의 25%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 제도가 참여정부 재벌 정책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처음 도입된 것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업 투자 활성화를 목적으로 잠시 폐지되었다가 국민의정부 시절인 2000년 재시행하기로 결정되었다. 부활 첫해인 2001년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에 적용했으나 이듬해부터 자산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해 2002년 19곳, 2003년 17곳, 2004년 18곳에서 2005년에는 11곳으로 대상이 크게 줄었다. 자산 규모가 5조원에서 6조원으로 상향 조정된 데다가 지배구조가 건전해졌다고 판단된 기업집단을 잇달아 ‘졸업’시켜왔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 재벌은 11곳…올해 소폭 늘 듯  
 

 
  이에 따라 2005년 4월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6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22곳 가운데 출자총액제한을 적용받는 곳은 11개로 대상 기업집단의 50%에 불과하다(00쪽 표 참조). 부채 규모가 100% 미만으로 떨어져 졸업한 기업으로는 삼성,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롯데 등을 꼽을 수 있다. 한진, 현대중공업, 신세계 등은 소유와 지배의 괴리도가 낮고 의결권 승수가 3배 이하로 지배구조가 건전해져 졸업한 경우이다. 정부 출자 기관들은 단순 출자구조에 해당되어 졸업한 곳이 많다. 

  그동안 공정위는, 시민단체로부터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예외 조항을 마련해왔다. 공정위로서 가장 불편한 대목은, 삼성이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에서 빠진 일일 것이다. 삼성은 지난 2004년 7월 ‘부채 비율 100% 미만’ 기준을 충족해 대상에서 졸업했다. 

  공교롭게도 공정위는 이후 부채 비율 100% 미만 요건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삼성은, 올 4월 재지정될 예정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부채 비율 100% 미만 요건을 충족해 삼성이 제외되자, 공정위가 아예 그 조항을 삭제해버렸다. 정작 삼성은 못 잡고, 다른 애매한 기업들만 붙들고 있다는 시선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원칙 없는 주먹구구 행정의 전형이다”라고 비판했다.  

 
재계는 공정위의 대기업 정책이 과도한 규제투성이라고 아우성치지만, 공정위가 슬금슬금 후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교수(한성대·무역학)는 “참여정부가 선거를 의식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정책 기조가 현저히 후퇴하는 ‘집권 4년차 증후군’을 보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공정위는 당정 협의를 통해 실질적으로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고, 산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정부 출자 기관이 해당 기업의 지분을 30% 이상 갖고 있는 구조 조정 기업을 인수할 때는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이라고 해도 제한 없이 인수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에 따라 대우건설·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인터내셔널·대우조선해양·대우정밀 같은 대우 관련사와 쌍용건설 등 올해 시장에 나오는 큰 매물을 인수하는 데 누구나 제한 없이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공정위 이동규 경쟁정책 본부장은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출총제 2006년 말 폐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본부장은 “사전적이고 직접 규제하는 방식의 현행 출총제를 시장 자율 규제로 바꾸는 데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업에 내·외부 자율 감시 체제가 정착되었는지가 열쇠인데, 2005년 검토 결과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출총제를 올해 말까지 시행한 후, 재검토해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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