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이권이 아니라 인권이다”
  • 이유진(녹색연합 활동가) ()
  • 승인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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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상품화 반대’목소리 커져…세계물포럼에서도 논쟁 치열

 
지구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제4차 세계물포럼(WWF·World Water Forum)이 3월16일부터 22일까지 멕시코시티에서 열리고 있다. 3년마다 열리는 세계물포럼은 세계의 중요한 물 정책의 흐름을 결정하는 자리로서, 수에즈·베올리아(옛 비방디) 같은 주요 생수 회사와 물 개발 기업, 각국 수자원 담당 장관이 참가하는 회의이다.

지난 3월9일, 지구촌 최대 물 행사를 앞두고 국제연합(UN)이 발표한 ‘물, 공동의 책임’이라는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전세계 인구 여섯 명 중 한 명꼴인 11억 명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26억 명은 화장실 시설조차 없는 곳에 살고 있다. 열악한 물 위생으로 매년 1백6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 전세계 강과 대수층은 산업 오염, 축산 폐수, 지하수 남용으로 오염되고 또 고갈되고 있다. 기후 변화와 이상 기온으로 유례없는 홍수·태풍·가뭄으로 물 관련 재해도 빈번하다.

UN은 그 원인을 물 부족이 아닌 물 관리 실패에서 찾는다. 그래서 세계물포럼에서는 댐 건설, 통합 수자원 관리, 물과 질병, 물과 재난, 물기술 이전 등 물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다. 이번 세계물포럼의 가장 핵심 논쟁은 물 민영화 문제이다. 물 관리 실패로 발생한 물위기를 시장에 맡겨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과, 물은 생존을 위한 권리인 동시에 생명이기 때문에 경제재가 아니라는 주장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샘물이나 정수기로 거른 물에 미네랄을 첨가해 병에 담아 팔거나 상하수도 공급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하면서 물은 이미 상품이 되었다. 세계 생수 시장 규모는 1천억 달러(약 97조4천억원)이다. 2004년에만 1천5백40억ℓ의 생수가 팔려, 생수 시장은 5년 전보다 57%나 성장했다. 국가별 소비량을 보면 미국인들이 2백60억ℓ, 멕시코 1백80억ℓ, 중국 1백20억ℓ, 브라질 1백20억ℓ 순. 1인당 생수 소비가 제일 많은 곳은 이탈리아로 연간 평균 1백83ℓ인데, 한 사람이 하루에 두 잔씩 생수를 마신 셈이다.

다국적 물 기업과 세계은행 등이 물의 ‘악의 축’

생수와 관련한 환경 문제를 연구한 미국 지구정책연구소(EPI: Earth Policy Institute) 에밀리 아놀드 연구원은 “지하 암반수, 알프스 빙하수, 심층 해양수 등 최고급 생수는 플라스틱 병에 담겨 지구를 반 바퀴나 여행한 뒤, 수돗물보다 최고 1만 배나 비싼 값에 팔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한 식수가 공급되는 곳에서도 화석 연료와 에너지를 과다 소비하고, 쓰레기를 양산하는 생수 소비가 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생수병을 만드는 데 연간 플라스틱 2백70만t이 사용된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 생수병 생산에만 매년 석유 1백50만 배럴이 들어가고, 이 양은 자동차 10만 대를 한 해 동안 굴리는 연료에 해당한다. 플라스틱 생수병이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는 데는 1천 년이 걸린다.

에밀리 아놀드 연구원은 생수가 건강에 좋다는 환상을 버리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판매되는 생수의 40%가 수돗물에 미네랄을 첨가한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특정 미네랄의 과다 섭취가 몸에 해롭다는 보고도 발표되었다. 또한 위생 기준에서도 미국 환경청의 수돗물 검사 기준이 식품의약품국(FDA)의 생수 허가 기준보다 더 엄격하다. 유엔은 2015년까지 약 6억명에게 안전한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연간 3백억 달러(약 29조2천억원)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우리가 생수를 마시기 위해 지출하는 돈의 절반만 물 인프라와 물 정화 비용으로 투자해도 지구의 모든 사람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셈이다.

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생수 회사들이 지하수를 대량으로 뽑아낸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물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와 5대호 부근, 인도 남부의 플라치마다 마을이 대표 사례이다. 코카콜라사가 플라치마다 마을에서 지하 관정 여덟 개를 뚫어 지하수를 마구 퍼올린 결과, 땅이 황폐해지면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논밭이 갈라지고, 푸른 잎의 야자수는 시들어가고, 마실 물은 부족하다. 주민들은 “코카콜라 공장이 날마다 100만ℓ나 되는 지하수를 훔쳐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100만ℓ면 2만명이 하루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양이다. 알래스카 빙하수를 선박에 실어 중국에 수출한다는 이야기나 에베레스트 만년설을 녹여 병에 담아 파는 것을 가벼운 이야깃거리로만 받아들일 일이 아닌 것이다.

‘물 = 이권’이라고 주장하는 초국적 기업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국제 금융기구도 물 민영화에 찬성하고 있다. 세계은행 세라 젤딘 총재는 “현재로서는 효율적 체제를 갖춘 민간 기업에 물 관리를 맡기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리카르도 나바로 전 ‘지구의 벗’ 의장은 이를 빗대 “다국적 물 기업,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 금융기구, 이들이 바로 세상의 물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물의 악의 축’이다”라고 비난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시장을 통해 물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목마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 상품화, 국가·지역 간 갈등·분열 부추겨

 
실제로 상수도 사업 민영화에 따른 수도 요금 인상으로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사람들의 항의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8년 세계은행은 코차밤바 시 물 서비스 민영화를 조건으로 볼리비아에 2천5백만 달러(약 2백44억원) 차관을 제공했다. 결국 코차밤바 수도 사업은 미국 물 기업 벡텔에 넘어갔다. 2000년 1월 수도 요금이 35%나 오르자 코차밤바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뛰쳐 나와 총파업과 도로 점거 시위를 벌였고, 도시는 나흘 동안 마비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민영화한 후 수도 요금이 1백50%, 영국 잉글랜드 주에서는 1백6%나 올랐다. 인도의 일부 가정은 가계 수입의 25%를 물을 사용하는 데 지출해야 했다.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빈민 밀집지역인 알렉산드라에서는 수도 요금을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물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콜레라와 설사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물 상품화에 대항하는 세계시민운동은 2001년 7월, ‘푸른 지구 운동(Blue Planet Project)’이 결성되면서부터이다. <블루 골드>의 저자 모드 발로·토니 클라크, <노동의 종말>의 제레미 리프킨, <물 전쟁>의 반다나 시바가 주도하고 있다. 푸른 지구 운동은 물은 인류 ‘공동의 재산’임을 선언하고, ‘물의 평등’과 ‘물의 정의’를 주창하며, 지난 2003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세계물포럼에서 물 민영화 반대 논쟁을 주도한 바 있다.

푸른지구운동은 우루과이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물 권리 선언’을 이끌어낸다. 2004년 10월 실시된 우루과이 국민 투표에서 투표자의 64.6%가 헌법 47조 개정에 찬성함으로써 물을 이윤 추구의 대상이 아닌 인권(Human Rights)으로 규정하고 시민이 참여하여 지속 가능한 수자원 사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세기가 석유 전쟁시대였다면 이번 세기를 물 전쟁시대로 예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물을 둘러싼 국가간·지역간 분쟁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석유가 그랬듯이 이권으로서의 물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길 것이다. 물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 대체재도 없다.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사서 갈증을 해소하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들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물 민영화’ 논쟁의 의미를 꼼꼼히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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