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세상을 바꾼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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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경제를 함께 굴리는 자전거가 21세기 대안 교통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자전거를 정책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지자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집은 송파구 방이동이고 직장은 구로 디지털 단지입니다. 약 20km쯤 되는데 자전거로 1시간31분 걸렸습니다. 일할 때 피곤하지 않도록 슬슬 달렸습니다. 열심히 달리면 1시간 정도에도 주파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라는 카페에는 이런 글이 낯설지 않게 올라온다. 2003년 12월 만들어진 이 카페는 이른바 ‘자출족’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현재 회원은 9천3백 명이 넘는다.

경남 진주시는 지난 3월2일 공무원들의 출퇴근·업무용으로 자전거 1백80 대를 구입했다. 도난을 막기 위해 노란색을 칠하고 고유번호를 부착했다. 지난 2월에는 15억원을 들여 진주 시내와 인구 밀집 지역인 외곽을 잇는 길이 1백10m, 폭 3.2m인 자전거 전용 다리도 개통했다. 진주시 자전거도로계 이창수 계장은 “공무원들이 먼저 타야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봄이다. 바야흐로 자전거의 계절이다. 한강 둔치에서, 경춘가도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이 줄지어 자전거를 즐기는 모습을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전거 타기는 심폐 기능을 강화해 주고 하체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것은 물론 당뇨병 등 치료에 효과가 크다.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의 상쾌함이 덩달아 스트레스도 날려버린다.

자전거는 레저·스포츠용으로만 흐름을 탄 것이 아니다. 요즘에는 출퇴근용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자전거가 고유가와 환경·건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자동차는 대기로 배출되는 일산화탄소의 60% 이상을 뿜어내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자전거가 21세기에 가장 주목되는 대안 교통수단이라는 말은 이제 환경운동가들의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자전거’는 시대의 가치와 새로운 생활양식을 상징하는 코드가 되었다.

이런 흐름 탓일까. 한국에서 맨 처음 자전거 경주가 열렸던 1906년 이후 100년 만에 자전거가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어느 나라보다 자동차 중심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 나라의 경우 기본 시설도 미비하고 의식 또한 자전거에 호의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관건은 정부와 지자체의 강력한 의지다. 이제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정자치부 균형발전팀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에서 자전거로’이다. 자전거 타기를 국가 시책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행자부는 지방자치단체의 교통 일부를 자전거가 담당할 수 있도록 광역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3%에 불과한 자전거의 교통 분담률을 내년까지 10%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자동차 이용을 억제하는 것을 교통 정책의 기본으로 삼은 독일·네덜란드·스웨덴만큼은 아니지만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분명 고무적이다.

 
균형발전팀 김수형씨는 대중교통과 자전거의 연계, 특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지하철역에서 집까지는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적극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5km 정도인 짧은 거리를 출퇴근하거나, 사는 곳 부근에 쇼핑을 하러 갈 때,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의식 개혁 운동도 벌이고 관련 시설을 추가로 만들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 차원에서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자전거 교육장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자전거 협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투자기관들도 자전거 주차장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행자부는 지자체들의 자전거 사업을 돕기 위해 연간 92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놓았다.

덴마크식 ‘자전거 택시’ 도입 추진…각 지역 시민운동도 ‘후끈’

이에 발맞추어 최근 지자체들 사이에는 자전거 전담팀이 늘어나고 있다. ‘자전거 도시’로 널리 알려진 경북 상주는 물론, 경기도 부천 오정구에 ‘자전거 문화팀’, 경남 진주에 ‘자전거 도로계’가 있다. 이밖에도 부천 원미구, 경남 진해, 제주도에도 전담팀이 있다. 부천 오정구 경제교통과 자전거문화팀 김경태씨는 “시민단체와 연계해 자전거 지도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면허 시험도 실시해 어려서부터 올바른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자전거 타기를 시민운동으로 전개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충남 공주시는 지난 2월부터 ‘한 가정 자전거 한 대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더해 ‘시민 자전거 타기 생활화’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를 3대 과제로 정해 범시민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주시도 공무를 수행하거나,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용도로 각각 자전거 57대, 53대를 마련해 굴리고 있다. 시장이 ‘자전거 타기 활성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남 진주시에서는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는 무료로 대여소와 수리소를 운영하면서 자치구 전역을 자전거로 연결해 놓았다.

홈페이지에 ‘서울 자전거 지도’를 올려놓은 서울시는 올해 ‘자전거 택시’를 도입할 계획이다. ‘자전거 택시’는 자전거 선진국인 덴마크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인데, 서울시는 덴마크처럼 명물이 되어 자전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구실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자전거21’ 신승경 기획팀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신팀장은 “자전거 길이 횡단도로도 없이 중간에 딱 끊겨버린다. 차도-자전거도로-인도 순서가 되어야 하는데 새로 만드는 자전거 도로도 차도-인도-자전거 도로인 경우가 흔하다”라고 말했다. 자전거 도로가 절대 부족하고 보관 시설이 미비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시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법률 정비도 시급하다. 자전거는 법적으로 도로교통법에 의해 ‘차(車)’로 분류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나라에는 인도로 다니는 차가 너무 많다. 한마디로 자전거의 법적인 위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로의 제한 폭,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보행 겸용도로 등과 관련해 법안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 사고가 나면 분쟁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의식의 변화 또한 시설과 법적 정비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자전거21 오수보 사무총장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이용자들을 ‘도로의 걸림돌’로 여기는 인식이 바뀌어야 자전거가 진정한 대안 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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