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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꿈꾸는 일본 영화 의 매력

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영화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저 예 산에 20대 초반 여주인공과 만화적 상상력, 풍부한 음악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 곁

안철흥 기자 ㅣ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3.31(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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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화 개봉에 맞춰 일본 배우와 감독들이 잇달아 방한하고 있다. <나나>의 두 주인공 나카시마 미카와 나리미야 히로키를 만나러 몰려든 한국 팬들.  
지난해 11월29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장소는 서울 광화문 근처 시네큐브.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의 감독 이누도 잇신(46)이 여주인공 이케와키 치즈루와 함께 겸연쩍은 표정으로 무대 위에 서 있었다. 3백 석짜리 극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환호와 플래시 세례가 끝나갈 무렵 그가 입을 뗐다. “재개봉은 일본에서도 꿈꾸지 못했다. 이 순간을 꼼꼼히 기록해 일본에 돌아가서 자랑하겠다.”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를 만든 이누도 잇신 감독.  
<조제···>가 한국에서 처음 개봉한 때는 2004년 가을. 당시 한국 언론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이 영화는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4만6천 관객을 끌어 모았다. ‘겨우’ 4만6천명이라고? 하지만 <조제···>가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8천5백만 엔(약 8억원)으로 찍은 저예산 영화였고, 서울의 소극장 한 곳, 전국 합해야 불과 다섯 곳의 상영관에서 거둔 성과였다는 점을 안다면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한동안 인터넷 게시판에 ‘조제 신드롬’이 불었고,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도 많았다. 2005년 재개봉은 이런 마니아층의 성원 덕에 이루어졌다. 한국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팬들의 요구로 재개봉한 사례가 있지만, 일본 영화가 비슷한 사연으로 재개봉한 것은 영화사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누도 잇신은 <조제···>의 성공 덕분에 요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감독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이누도 잇신이 감독을 맡은 <메종 드 히미코>도 올해 초 수입·개봉했다. 조제와 마찬가지로 전국 다섯 개 극장에만 걸렸지만, 이 영화 또한 8만 관객을 모으면서 지금까지 장기 상영 중이다.

현재 4편 개봉, 4월에 3편 더 개봉

3~4월 극장가에 일본 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개봉 중인 일본 영화는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스윙걸스> <나나> 네 편. 4월 중으로 <오늘의 사건사고>(4월6일) <린다린다린다>(4월13일) <달빛 속삭임>(4월20일) 세 편이 더 개봉한다. 지난해부터 매달 한두 편씩 일본 영화가 찾아왔지만, 이처럼 여러 편이 한꺼번에 극장에 걸린 적은 없었다. 요즘이 극장가의 비수기라거나, 일본영화사 시네콰논 대표인 재일교포 이봉우씨가 서울 명동에 일본 영화 전용관(CQN명동)을 세워 저변이 넓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중 일본의 메이저급 영화사에서 제작했고, 대중적으로 흥행한 작품은 <나나> 정도다. 이름이 같은 20대 여성 두 명의 이야기를 다룬 <나나>는 ‘백마 탄 왕자’ 대신 일과 사랑을 주체적으로 찾아나서는 요즘 일본 여성들의 트렌드를 대변했다는 평을 들으며, 지난해 일본에서 흥행 순위 9위를 차지했다.

<나나>를 제외하면, 요즘 한국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대개 소규모 영화사에서 제작한 일종의 ‘인디 영화’들이다. <조제···>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소극장 상영으로 3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전부다. 다른 영화들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경우도 대개 서울에서 한 군데, 전국적으로 서너 군데의 상영관을 확보하는 정도다. 이런 일본의 저예산 영화들이 한국에서 고정 팬 수만 명을 확보하고 장기 상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일 조선인·동성애 같은 무거운 주제도 다뤄

이들 일본 영화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고등학생이거나 20대 초반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영화가 많다. 대부분 마니아 취향의 저예산 영화들이지만, 작가주의 영화 특유의 무거움이나 지루함이 없다. 대신 엽기적이고 오밀조밀한 만화적 상상력을 코믹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렇다고 웃고 즐기다 나오는 ‘킬링 타임’용은 또 아니어서 재일 조선인 문제나 동성애 같은 꽤 무거운 주제가 다루어지기도 한다.

   
  <린다린다린다>  
음악 영화가 많다는 점도 최근 상영되는 일본 영화의 특징이다. <스윙걸스>나 <린다린다린다> <나나> 등은 영화 속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스윙걸스>에서는 ‘Sing Sing Sing’ ‘Take The A-Train’ 같은 왕년의 스윙 재즈 명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에게 악기를 직접 배우도록 했고, 그 과정을 영화로 담아 리얼리티를 살렸다.

<린다린다린다>에서 교환학생 손(배두나)이 부른 노래는 1980년대 말에 활동했던 일본 펑크록 밴드 블루하트의 대표곡 ‘린다린다’이다. 이 곡은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도 삽입곡으로 사용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주제가 <눈의 꽃>의 원곡을 불렀던 나카시마 미카가 주인공을 맡아 직접 부른 <나나> 삽입곡들은 벌써 한국에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발라드 가수 나카시마 미카는 이 영화에서 강렬한 록 창법을 선보였다. 

이들 영화의 관객층은 대부분 20, 30대 여성들이다. <스윙걸스>를 평일 저녁에 서울 시내 극장에서 보았는데, 젊은 여성 관객들이 영화 속 에피소드를 보며 따라 웃거나 감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린다린다린다>의 기자 시사회장 모습도 비슷했다.

   
  <스윙걸스>  
일본 대중문화의 세례를 직·간접으로 받고 자란 20, 30대들에게 일본 음악과 드라마·영화는 낯설지 않다. 인터넷 일본 드라마 동호회 회원의 수는 십만 명이 훨씬 넘는다. 일본 영화 사이트에 가보면, 팬들이 직접 쓴 영화평이나 영화 장면 하나하나를 세세히 분석해놓은 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본 영화 수입이 개방된 지 7~8년이 지나면서 어느덧 한국 내에 일본 영화 마니아층이 생겨났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한국 배우를 주연 기용해 한국 시장 공략

이를 계기로 일본 영화계가 한국 시장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한국 관객을 적극적으로 의식하고 제작한 영화가 생겨나는 점도 그 중 하나다. <박치기>는 재일 조선인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고, <린다린다린다>는 한국 배우 배두나를 주연으로 기용했다. 대부분의 감독과 배우들이 한국 개봉에 맞추어 방한하는 것도 관례로 정착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스타로 떠오른 일본 배우들도 있다. 쓰마부키 사토시(<조제···>의 남자 주인공), 오다기리 조(<메종 드 히미코>의 남자 주인공), 나카시마 미카(<나나>의 여주인공) 등은 한국 내에서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일본 영화의 이미지는 낯설고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1998년 일본 영화가 수입 개방된 이후 지금까지 1백30여 편이 수입되었지만, 흥행에 성공한 것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주온> 같은 공포물 정도에 불과했다. 기타노 다케시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번번이 참패했다.

   
  <박치기>의 감독과 주연 배우들.  
메이저급 일본 영화의 흥행 부진은 현재도 여전하다. 영화사 스폰지는 일본 영화를 많이 수입하는 수입사 중 한 곳이다. 스폰지는 최근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도쿄 타워>를 수입·개봉했다. 에쿠니 가오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소설로 국내에서도 독자가 많은 일본 작가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 실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따위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들도 한국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춤추는 대수사선> <화이트 아웃>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아예 참패했다.

“일본 영화, 아직 대박 터뜨리기 어려워”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한국 관객들의 기대 수준을 이런 일본 대작 영화들이 채워주지 못한 탓이다. 영화 외적인 이유도 있다. 스폰지 이지혜 부장은 “독도 문제 등 한·일 간의 사회·정치적 문제가 터지면 당장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영화를 수입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들은 다르다. 스펙터클도, 엄청난 반전이나 활극도 없지만, 이들 영화에는 관객들이 공감하고 즐길 만한 에피소드와 잔재미가 있다. 일본 문화에 익숙한 20, 30대 마니아 관객들은 그런 영화를 보고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즐기는 것이다. 저예산 영화이기에 대중적인 흥행에 목멜 필요도 없고, 그래서 영화 외의 이슈에 거리낄 일도 없다.

그럼 최근 일본 영화 붐이 한국에서 본격적인 ‘일류’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의견이 많다. 다음은 영화 평론가 김봉석씨의 말이다. “지금 극장에 걸리는 일본 영화들은 대부분 마니아용 영화들이어서 상업적인 대박을 터뜨리긴 힘들 것이다. 다만 최근의 일본 영화 붐이 한국 영화 시장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측면은 크다. 또 한·일 문화 교류는 궁극적으로 한류가 지속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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