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생활이 대통령 노릇보다 낫다”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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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추진중인 동유럽 직선 대통령들, 경제난 속 ‘시련의 해’ 맞아
 소련 말 대신 영어가 제1외국어로 등장하는 바람에 동유럽에서는 지금 영어 교사가 동이 나 있다. 시장경제를 추구하자니 영국 등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도 그렇고, 기술도입을 위해서도 영어교육이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보도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앞으로 10년 동안에 영어교사를 3만명 양성해야 하며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각각 1만 명 정도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동유럽의 변화를 말해주는 하나의 단면이지만, 혁명의 해 89년에 이어 선거의 해 90년을 넘긴 동유럽 여러 나라의 정치․경제는 영어교사의 부족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자유를 확보할 전망은 뚜렷하지만, 민주주의를 성공시킬 전망은 그렇지 못하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브로니슬라프 게레메크의 이 말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자유는 있으되, 기술의 낙후성과 허약한 국내시장 등의 악조건을 물려받은 것이 이 나라들의 실정이다. 외채는 많고 환경오염은  심각하다. 체제에 의지하는 의타심이 제2의 천성이 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잠잠했던 민족간의 감정과 갈등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개혁이 오히려 국민생활 압박
 지난 12월 선거에서 폴란드 역사상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된 바웬사는 최근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을 지지하는 인물로 알려진 얀 크르지스토프 비엘레키를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경제개혁을 계속 강력히 추진할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전 수상 타데우스 마조비에츠키가 대통령선거 1차투표에서 무명 후보에게 눌렸다는 사실은 국민의 생활 수준을 압박하는 개혁조치가 정치지도자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며, 이것은 바웬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하벨 대통령은 “교도소에 갇혀 있을 때가 대통령 노릇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벨 정권도 금년 초 과감한 경제개혁조치를 취했다. 가격통제가 철폐되어 물가가 현실화되었으며, 10만명 정도에 머물고 있던 실업자 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하벨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90년은 자유선거가 실시되고 국제적으로 존경을 받은 해였으나 91년은 심각한 시련의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유럽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이며, 경제발전의 전망이 밝다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개혁의 진통은 이처럼 심각하다. 민주혁명의 주동세력인 ‘시빅 포럼’(Civic Forum) 내부에도 사회민주주의 등 정치이념에 따른 분파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헝가리의 민주포럼 정부는 작년 봄 총선거에서 42%의 지지를 받았으나 가을 지방선거에서는 27%로 득표율이 줄어들어 정치적으로 약간 안정감을 잃은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산절감 조처가 불가피해 지난 연말 헝가리 의회가 이를 채택하기는 했으나, 이를 위해 요세프 안탈 총리가 애걸하다시피 특별호소를 하는 등 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2~3년 더 진통 겪어야 자리잡힐 듯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는 90년에 거행된 자유선거에서 전 공산정권과 관련이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승리, 이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세력과의 대립관계와 경제 사정의 악화 때문에 역시 전망은 불안하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체스쿠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혁명 발발 1주년을 맞이한 지난 12월16일 반정부혁명의 발상지 티미소아라에서 약 1만명이 반정부 항의 집회를 가졌다. 혁명 당시 군인들의 발포로 1백11명이 사망하고 3백75명이 부상하였으나 정부는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밝혀내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아직 조사에 착수하지 않아 희생자가족협의회의 항의를 받고 있다.

 동유럽의 혁명은 독일통일 등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유럽에서의 냉전을 종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새로 자유를 얻은 나라들, 혹은 “부분적으로밖에 자유를 못 얻은” 나라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시련은 만만치 않다는 것이 서유럽 관측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특히 91년은 동유럽 여러 나라의 큰 고비가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2~3년간 진통이 계속된 후에야 자리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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