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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포장 우려되는 지자제 정치광고

87․88년 선거 통해 ‘효험’ 입증…대행사 문턱 닳을 듯 함량 미달 후보자의 이미지조작 위한 금권선거 조짐

서명숙 기자 ㅣ 승인 1991.01.17(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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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의회 선거가 불과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출마 희망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서울 목동지역에서 부동산업으로 상당한 재력을 쌓았지만 튼튼한 정당 연줄이 없어 아예 무소속으로 서울시 의원에 출마하기로 작정한 ㅇ씨(47세). 그는 지난해말 지자제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일찌감치 정치광고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ㅍ기획을 찾았다. ㅍ기획 관계자는 선거구인 목동지역의 특성과 그의 출마동기․경력 등을 알아보고 난 뒤 ‘홍보기획서’를 제시했다.

 그 기획서는 사전 여론조사를 통한 유권자 동향파악에서부터 이미지 목표 설정, 조직 구성, 지역신문 발간, 현수막 포스터 팸플릿 전단 이미지노래 제작 등 홍보, 장학회와 노인정에 대한 지원, 셔틀버스 운행, 가족과 함께 디스코․건강달리기 대회 개최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계획과 소요예산 및 동원 인원 등 그야말로 ‘선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망라한 것이다.

 ㅍ기획은 무영의 사업가인 ㅇ씨의 이력과 지역구의 특성을 고려해 그의 이미지를 “언제나 변합없는 겸손한 주춧돌”로, 표제문안(컨셉트․concept)은 “진실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오직 실천뿐입니다”로 정하도록 권고했다. 이로써 ㅇ씨는 일개 부동산업자에서 일약 유망한 ‘지방의회 의원감’으로 완전한 포장준비를 갖춘 것이다.

 물론 ㅇ씨처럼 벌써 정치광고회사와 손을 잡은 건 드문 경우다. 아직까지 광역의회 출마후보자들에겐 ‘공천 문턱넘기’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 공천이 마무리되는 1월말부터 후보자들을 정당 문턱 대신 정치광고회사의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될지 모른다.

 중앙대 李俊一 교수(신문방송학)는 “국민들은 직접적인 금품공세나 목소리만 높은 정치공세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에 따라 유권자 의식도 후보자들이 지역과 계층의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길 바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번 지방의회 선거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면 홍보에 투자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치광고대행사인 서울커뮤니케이션 李枓燁씨는 “30년간의 지방정치 공백 때문에 지방의회 후보 대부분은 정치경험도, 지명도도 없는 처지다. 따라서 어떻게 자신을 알리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진단하고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 때문에 정당공천으로 치러지는 광역의회 선거조차도 인물 중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후보 하나하나가 유권자들에게 익숙한 ‘상품’이 아닌 만큼 ‘포장’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광고는 “정치인을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해 유권자 시장에 내놓고 후보자의 단점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광고의 한 영역이다. 다만 상품광고의 최종목표가 상품을 파는 데 있다면 정치광고는 마음을 결정하는 못한 부동표를 공략한다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박정희 후보의 ‘흥부냐 놀부냐’
 흔히 한국 정치광고의 始原으로 87년 대통령선거가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후보자를 단순 포장하고 강압적으로 알리는 초보적 수준의 정치광고는 이미 63년 대통령선거 때 나타난 바 있다.

 63년 10월13일자 <한국일보>에는 “유권자 여러분…이순신을 택할 것인가? 원균을 택할 것인가? 흥부를 택할 것인가? 놀부를 택할 것인가?”라는 표제 아래 박정희 공화당 후보의 개인광고가 전5단 크기로 실린 바 있다. 군사쿠데타의 정당성을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건진’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로 합리화시키는 한편 ‘부지런한 흥부’의 이미지를 동원, 자신을 파탄에 빠진 나라의 구국 인물로 부각시킨 것이다.

 건국대 柳一相 교수(신문방송학)는 “초보적 수준의 이 광고가 ‘독재와 반독재, 군사정권과 민간정부’라는 최대 쟁점을 뒤엎을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군사정권의 합리화를 위해 광고를 활용했다는 점에선 눈길을 끈다”고 말한다.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정치광고는 좀더 일관성을 띤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박정희 후보는 나름대로 자신감을 회복한 듯 ‘역사적’ 선택을 초조하게 강요했던 데서 벗어나 “안정 속에 웃으며 일합시다”라는 표제를, 40대의 김대중 후보는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연결시킨 “대중시대의 문을 열자”라는 표제를 각각 택했다. 그러나 이때 선거 역시 군사정권의 현실적 힘과 그에 맞서는 투쟁성, 민주 대 독재, 여와 야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조직과 금력이 대세를 좌우했기 때문에 정치광고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의 형태조차 ‘실종’된 채 18년이 흐른 뒤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87년에 부활된 정치광고는 본격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단순한 선거구호를 넘어서서 여론조사에서부터 후보자 ‘이미지 메이킹’에까지 일관된 정치광고 전략이 도입되고, 그것이 조직과 금력에 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을 재빨리 간파하고 최대한 활용했던 것이 민정당 노태우 후보 진영이다. 노후보측은 미국에서 광고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한국광고공사에 근무중인 金捻提씨에게 노후보의 이미지관리를 전담시켰다. 이 팀에는 제일기획․오리콤 등 대형 상업광고 회사의 실무진이 대거 참여했다.

 이 팀에서 일했던 한 광고인은 이미지 형성과정에 대해 “혼란기였던 만큼 믿음직한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기로 했다. 노후보가 여성들에게 인기있다는 점도 이 전략의 강점이 됐다. 선거포스터에도 얼굴만 크게 부각시켜 믿음직한 이미지를 강조했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말한다.

 유권자 눈길 사로잡은 ‘보통사람’
 어린이를 안고 볼을 부비는 모습과 화목한 집안의 연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의 답변 등도 ‘믿음직한 사나이’의 연장선상에서 치밀히 고려된 전략이었다고 한다. 당시 문화방송 전무였던 李秀正 청와대 대변인은 텔레비전 매체를 십분 이용,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는 주 컨셉트는 전문광고인의 작품이 아니었다. 이것은 원래 87년 3월 민정당대표인 노태우 후보의 정기국회 대표연설에 들어 있던 문구였고, 이 연설문의 초안자는 金學俊 현대통령정책담당자문역이었다. 몇차례에 걸친 민정당의 대규모 여론조사에서 정치인들의 ‘위대함’에 식상한 유권자에게 이 문구가 설득력있다는 사실이 입증돼 재활용된 것이다.

 결국 노후보측의 세련된 정치광고는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의 향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자금력, 선거전략을 결정하는 두터운 고급참모진, 전문 정치광고인 등 3박자의 결합으로 이뤄진 셈이다.

 반면 노후보와 대응한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후보측은 초보적이고 ‘순진’한 차원의 정치광고에 머물렀다는 게 광고인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영삼 후보 진영은 ‘군정종식’이란 구호를, 김대중 후보측은 필리핀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동시에 유세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노란색’(아키노 옐로우) 전략을 창안한 정도가 고작이었다.

 대통령선거 당시 정치광고가 ‘부동표 흡수’에 얼마마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직과 금력이라는 전통적인 선거 勝因에 정치광고가 톡톡히 한몫 끼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87년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싹튼 정치와 광고의 깊숙한 결합은 88년의 13대 총선에서 다시 나타났다. 과거 총선에서 여당은 화려한 경력과 지역사회 공약을, 야당은 선명성과 투사경력을 강조해왔으나 이때는 대통령선거의 영향을 받아 후보 개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정치광고가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선거 이후 출현한 폴리콤 코마콤 태천기획 세인에이전시 등 10여개의 전문정치광고 대행사의 본격적인 선거참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평민당 재야영입 인사로서 동대문 을구에 출마한 高光鎭 후보의 경우, 선거 포스터의 표제를 “민주화, 그것은 따뜻한 세상 만들기입니다”로 내걸었다. 소위 ‘민주투사’ 경력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화감을 극복하는 한편 “민주화는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과 가까운 데 있는 평범한 것”임을 선전한 이 문안은 태천기획의 작품이다. 정치인으로선 무명인 고후보가 2만여표를 얻으며 거물급인 宋元英 후보를 바짝 추격한데에는 홍보전략의 덕이 컸다는 후문이다. 李喆鎔 후보의 “도봉이여, 다시 한번 일어나라” “이 못된놈들”, 姜信玉 후보의 “영원한 정의의 편” 등도 13대 총선이 낳은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인식 부족이 정치광고 발전 막아
 개인 이미지를 부각한다는 일관된 정치프로그램을 갖고 홍보전을 편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역시 서초 갑구의 李鍾律 후보였다. 이후보는 ‘무공해정치인’이라는 일관된 이미지 전략 아랴 “서초구의 모든 정치공해를 쓸어내겠다”며 자동차문을 닦는 5백원짜리 손걸레를 유권자에게 나눠주는가 하면, 물 컵도 플라스틱 아닌 유립컵을 썼다. 이후보의 이미지 통합 전략은 정치광고대행사의 선두주자 코마콤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전문 정치광고인의 출현과 다양한 형태의 정치광고가 정치광고의 본격 도입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광고 평론가 朴鐘烈씨는 “정치광고는 세련된 문안 작성이나 후보자 이미지 만들기에 앞서 유권자와 지역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못박고 “87년 대통령선거를 제외한다면 본격적인 정치광고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광고업계에서는 또 텔레비전유세․개인 연설회 등을 엄격히 금지하는 현행 선거법, 정치광고인을 아직도 ‘인쇄업자’ ‘문안작성자’쯤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의 의식, 선거빚은 빚이 아니라는 해묵은 정치관행 등 현실적인 제약이 정치광고의 開化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광고의 질과 내용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의회 선거에서 정치광고의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두차례 선거에서 그 ‘효험’이 어느 정도 입증된 데다 유권자들의 의식변화, 정치광고 대행사들의 역량 축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광고는 그 순기능 못지 않게 역기능도 만만찮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거전략“이란 미명 아래 돈많은 후보자들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광고 악용될 땐 그 폐해 심각
 미국의 레이건은 승마를 별로 즐기지 않으면서도 ‘늙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휴가 때마다 산타바바라의 주말농장을 찾았고, 그 뒤를 이는 부시는 우유부단하게 보인다는 주변의 지적 때문에 낚시를 할 줄도 모르면서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광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조지아주의 거대한 땅콩농장의 대지주인 지미 카터가 ‘미국의 희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계의 순진한 신참자’ ‘가난한 농부’로 둔갑한 것도 이미지 조작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그래서 광고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적 인물 D. 오길비(미국)는 “허위광고된 비누라면 써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장래를 결정할 정치인은 한번 잘못 선택하면 그 임기 동안 어쩔 수 없다”고 정치광고의 해악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정치광고가 선용만 되리란 보장은 없다. 서울대 張達重 교수(정치학)도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지방의회 선거가 졸부들의 잔치, 금권선거가 될 조짐이 곳곳에서 보인다”며 “돈만 많고 함량은 미달인 후보자가 세련된 광고술로 포장된다면 또다른 형태의 금권선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치광고의 빛과 그늘, 그중 어느쪽이 더 크게 나타날지는 결국 ‘상품’인 정치인들의 자질과 그것을 ‘포장’하는 광고인들의 윤리에 좌우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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