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개혁 ‘눈 가리고 아웅’
  • 소성민 기자 ()
  • 승인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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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애매한 ‘사장 자율’로 일관.... ‘총선후 구조 조정’ 기대 물거품 될 수도

한 경제학자는 지금가지 지지부진해 온 정부의 금융권 구조조정자세를 가리켜 ‘머들 스루(muddle through)’라고 표현했다. ‘(진흙탕에서) 그럭저럭 헤어난다 ’ 는 뜻을 지닌 이말은 정부의 처지를 잘 드러낸다.

  공적 자금을 조성해 신속하게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자니 필연적으로 뒤따를 금융시장의 충격과 실업자들의 원성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시장 자율에 맡기자니 금융기관들이 정부 눈치만 보는 통에 부실 채권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칼자루를 쥐었지만 벼린 칼날을 휘두르자니 충격이 두럽고, 무딘칼날을 집어들자니 효과가 의심스러운 형국, 정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협곡에 몰려 있다.

  이현재 재경부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회위원장은 틈만 나면 ‘1차 때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인위적인 구조 조정은 없다’ ‘추가로 공적 자금을 조성하지 않겠다’고 분위기를 잡아왔다. 그때마다 여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헤쳐모일’수 있다고도, 공적 자금 없이 금융권의 부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7우러 대우 사태가 터질 때만 해도 금융권 구조조정이 이토록 지연되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금융 시장에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갖가지 부작용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증시가 버팀목 구실을 해준 덕에 지금 까지 그럭저럭 헤어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국회의원 총선거였다. 정부는 청선에 악영향을 줄지도 모를 충격요법을 피해 왔다. 그럭지만 결국 먹구름이 몰려올 것이며, 그 시기는 총선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어 왔다. 총선이 가가워오자 언론이 부쩍 재경부와 금융감독원 수장들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도 그같은 배경에서다.

2차 개혁에 필요한 공적 자금 30조~40조원
 현재 정부의 금고에는 금융권의 부실 자산을 털어낼 현금이 들어 있지 않다. 1998년 5우러~1999년 12월 정부가 구조조정 채권을 발행해 금융권에 쏟아부은 돈은 모두 64조원. 이는 지안해 국내 총싱산(GDP)의 15%, 은행권 자본금을 전부 합한 금액의 80%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이처럼 거액을 투입했는데도 지난해 금융권의 부실 채권규모는 오히려 늘어났다. 1999년 9월말까지 금융기관 전체의 부실 채권 금액은 57.9조원 이는 1998년 말 60.2조원보다는 감소했지만, 그 때까지 자산관리공사(옛 성업공사)가 시들인 부실 채권이 8.4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아하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또 은행들은 1999년 말 결산부터 기업의 대출 금 상환 능력을 감안해 대손충당금을 쌓는 선지국형 ‘FLC(Forward Looking Criteria)' 제도를 도입했다. 예전 같으면 3개월 넘게 이자가 연체해야 대손충당금을 쌓았지만, 새 제도에서는 부실징후가 보이면 이자가 정상으로 들어오더라도 대손충당금을 쌓아야한다. 이렇게 되면 전체 부실 채권 규모가 지금보다 불어날 수밖에 없다.

  구조 조정이 더딜수록 부실 채권은 자꾸늘어만 간다. 정부가 사용한 공적 자금 64조원 가운데 올해 1월말까지 회수된 금액은 15조2천억원으로 회수율이 23.8%에 그쳤다. 회수율이 낮은 것은 부실 채권의 60%가 회수하기 쉽지 않은 공장(工場)들인 탓인데, 대우 채권으로 추가된 손실분까지 감아하면 최종 회수율은 50~60%를 넘기가 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공적 자금의 원금 손실액이 30조원이상 발생하는 셈이다.

  또 앞으로 5년간 국체 이자가 8%를 유지한다고 낙관적으로 가정하더라고 지출해야 할 공적 자금의 이자 비용은 약 30조원에 달한다. 원금 손실액과 이자 비용을 합치면 그 규모는 거의 60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 엄청난 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보충해야 한다.

  최근 대우경제연구소와 삼성증권등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제2차 금융권 구조 조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한 공적 자금 규모는 30조~40조원 수준. 대우 경제연구소 권순현 연구위원에 따르면, 공적 자금을 추가로 30조원더 조성할 경우 원금 회수율과 이자 비용을 다시 계산하면 금융권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총비용은 백조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재정 적자 규모가 그만큰 증가한다는 뜻이다.

  재정 적자도 감당하기 쉽지 않지만, 공적 가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게 되면 무엇보다 장기 금리 상승 그리고 그에 따라 증시에 미칠 충격등 실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정부로서는 큰 고민거리다. 거기에 급격한 금융권 구조 조정에 따라 파생될 실업문제등으로 김대준 정부와 집권여당은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이런 탓에 정부는 언론이 총선 뒤 본격적인 구조 조정 신호가 나올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때마다 ‘시나리오’나 ‘밑그림’이 없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금감위 비상임위원인 박상용 교수(연세대  경영학)는 “구체적 계획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정부가 계획을 세운다는 사실 자체가 금융시장에 알려지면 시장 자율적인 구조 조정을 저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금융 부실 현황부터 투명하게 밝혀야
 현재 정부가 가장 선호하는 구조 조정 방식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이다. 경기가 좋아 지고 금융기관들의 주가가오르는 시기에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게 하면 금융 시작이 충격을 흡수할 것이라는 기대다. 특히 내년 초부터 2천만원이 넘는 에금에 대해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장하지 않는 예금자 보호 제도가 실시되예정이어서, 올 하반기부터는 부실한 금융기관들이 자연스럽게 살 길을 찾아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고위 관게자는 “문제는 타이밍 아니겠늩가. 언제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정책 책임자라면 당연히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간을 벌수록 공적 자금 회수분도 즐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공적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발행해야 하는 채권 수요도 줄어들어 여건이 유리해진다는 판단이다.

  시민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사단장 김상조교수(한성대 무역학)는 “금융 시장의 투명서을 높이자고 개혁하자면서, 그 방법이 불투명해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금융권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면, 한시바삐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금융 시장을 투명하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한국 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위원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어차피 금융사넝ㅂ의 패러다임이 바귀고 있는 마당에 생산성이 높지 않은 은행 투신사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보아야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다.

 “시기를 놓쳐 정부가 공적 자금을 조성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제 최선은 정부가 인위적인 구조 조정이 왜 불가능한지를 정확히 밝혀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섣부른 기대를 하지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살 곳은 살고 죽응 곳은 죽게 놓아두어야 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대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시장 규칙에 따라 ‘손실자 부담 원칙’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제 부터라도 그같은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현재 정부는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패한 데다 증시까지 폭락해 설상가상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융권 구조 조정을 서둘러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정부가 어떤 구조조정방식을 선택하든지 그에 앞서 부실의 실상부터 투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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