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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경의선 복원 제안이 출발점

현대-국정원-박지원-통일교 채널의 정상회담 협상 공조 내막

남문희 전문기자 ㅣ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04.27(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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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남북 정화회단으 막후 주역은 누구인가.6월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 4월8일 남측의 박지원 문광부장관과 북측의 송호경 아태평화위부위원장 간의 남북 특사 접축을통해 협상이 타결되었다. 그러나 박  송 채널이 극적 합의에 이르기까지막후에서 움직인라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얘기가 떠돌고 있다. 정상회담합으 발표 이후 △현대 정몽헌 회장 막후설에 이어 △국정원 김보현 국장 팀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었고, 여기에 △통일교 박보회 회장  박상권 사장역할론까지 가세해 혼선을 빚었다.그러나 이런 분석은 정상회담에 이른전과정을 살펴볼 때 각각 토막토막의 진실을 전달하고 있다는점에서 한계가 있다.

  <시사저널>D 최근 청와대  국정원 재게 소식통들의 증언을종합 취재한 바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은 어느 한 라인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몇 라인이 상호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추진해 왔고, 그 과정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이 과정을 단순화하면 ‘최소한 세차례에 걸친 현대측의 막후 중재, 국정원의 보조 역할 그리고 박지원 장관을 주측으로 한 청와대 특명팀의 극적인 협상 타결로 요약할 수 있다.

경의선 논의 직후 남북 움직임 본격화
  맨 처음 발단은 지난해 연말께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현대의 대북 사업팀은 북한측 파트너로부터 매우 중요한 제안을 받았다. 바로 경의선 복선화이다. 즉 서울~신의주 간 경의선의 단절된 구간을잇고 나아가 한 선을 더 놓는 복선화 작업을 현대가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지난 3월10일 김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직후 <시사저널>은 ‘베를린선언의 핵심은 바로 북한이 현대에 제의한 경의선 복원 문제’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이 문제를 둘러싼 남북 당국 간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청와대 및 국정원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의 출발점은 바로 경의선 복선화 문제였다.

  지난해 연말 경의선 복선화에 대한 북한측 제의는 단순히 구두로만 전달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시 베이징에서 ‘현대와 북한이 이미의향서까지 교환했다’는 소문이 나돈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당시 북한측이 현대에 요구한 사회간접 자본 사업 내용에는 경의선뿐 아니라 남포항 개축공사도 포함되어 이었다는 새로운 증언도 있다. 경의선 복선화를 정점으로 해 여러 건의 사회간접 자본 건설 투자요청서가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 단국자들의 증언을 검토해 보면, 정부측이 가장 주목한 것이 경의선 복선화였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같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남북 양측의 미묘한 움직임의 중심에 바로 이 문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우선 북한측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바로 이시점을 전후해 북한 수뇌부 안에서 ‘대남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다. 즉 그동안의 ‘통미 봉남’ 정책을 수정해 대남 관계 개선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자는 주장이 수뇌부 내부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같은 내부 논쟁은 북측의 경의선 복선화 요구에 대한 현대측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 당국자간 접촉이 불가피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임동원 원장 취임직후 대북 비밀 접촉 체제를 정비해오 국정원팀의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역시 북측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요청해오고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해 왔는데, 현대측이 경의선 복선화라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들고 옴으로써 당국간 대화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기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국정원 내부에서는 김보현 5국장과 서영교 단장을 중심으로 남북 고위급회담 및 정상회담에 대비한 의전  의제 절차에 대한 조사 연구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측이 과연 당국간 회담에 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이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현대 대북 사업의 실무 총책임자인 김윤규 현대 아산 사장이다. 김사장은 지난 1월26일 베이징에서 강종훈 ‘베이징 아태평화위원회’ 서기장과 접촉한 데 이어 2월11일 금강산에서 강서기장과 또 한 차례 접촉했다. 당국간 접촉 개시 시점과 관련해 김사장의 당시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현대 내부 소식통의 다음과 같은 증언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이 소식통은 “2월10일을 전후해 당국간 회담에 대한 북측 움직임이 눈에 드러났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소식통이 전한 2월10일을 전후한 시점은 바로 김사장과 강서기장이 두 번째 접촉한 때와 일치한다.

김보현 국장 파트너로 황 철 등장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 수뇌부가 당국간 접촉을 하기로 확실히결론을 SOFS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김사장과 접촉해 남측의 의중을 탐색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수뇌부가 대남 관계 개선 쪽으로 내부 토론을 정리한 시점은 이보다 며칠 뒤인 2  16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전후한 시기인 것으로 재계 소식통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북한 수뇌부의 오랜 토론 과정에서 김용순 비서를 중심으로 한 당내 대화파가 비로소 주도권을 장악하게 돈 것이다.

  김  강 접촉을 계기로 한 남북당국간접촉의 제1라운드가 2월 중순에서 3월 초순사이에 이루어졌다. 더 정확하게는 3월 초순이라고 할 수 있다. 남쪽에서는 그동안 준비 체제에 들어갔던 김보현 서영교 라인이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북쪽에서 뜻밖의인물이 대화 파트너로 등장했다. 바로 아태평화위 참사인 황 철이다.

  지난해 6월 베이징 비료 회담의 막후 채널이었던 김보현 국장의 북측 파트너는 전금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었다. 다시 말해 황 철은 김국장의 파트너로는 격이 떨어지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국정원 실무자들은 ‘굴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북측은 왜 격에 안맞는 인물을 파트너로 보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3월6일자 <로동 신문논평이다. ‘국정원은 남북 대화에 개입하지말라’는, 당시로서는 뜬금 없었던 내용의 이 논평은 바로 국정원을 대화 파트너로 삼지 않겠다는 북측의 강경한 입장 표시였던 것이다. 북측이 거부감을 가져 모양새가 안좋게 되었다고 판단한국정원 팀은 이때부터 제2선으로 물러섰다. 물론 역할 자체를포기한 것이 아니라 막후 조정역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정원을 채널로 한 당국간 접촉이 무산되자 정부는 새 돌파구를 모색했다 다시 말해 북한측이 지난해 연말부터 우리측에 요구해온 여러 가지 제안을 뭉뚱그려 대통령이 이를 직접 발표하는 ‘고단위 처방’을 마련한 것이다. 3월10일 '베를린 선언‘은 여러가지 고려와 계산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지만, 당국간 대화라는 관점에서는 이같은 배경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베를린 선언 직후당국간 접촉을 재가동하기 위한 2라운드 막후 절충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 2라운드협상 역시 현대가 주축이 되었다. 특징이라면 정몽헌 회장이 막후 채널로 직접 등장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북측 파트너로 최소한 송호경 부위원장 급이 나서게 하려면 송호경의 사업 파트너인 정회장이 직접 나설 필요가 생긴 것이다.

  3월5일부터 시작된 김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한 정회장의 행방이 대통령 순방 일정 직후 한때 묘연해졌다. 당시 현대측은 정회장이 미국에 갔다고 연막을 폈으나 엉eND하게 중국 상하이에서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 바로 이시기이다.

  정회장이 중국에 체류하기 시작한 때부터 남북간 첫 특사 접촉이 이루어진 3월17일 사이 현대 수뇌부와 남북한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해 보면 더 명확한 그림이 잡힌다. 박지원 장관이 나중에 밝힌 바에 의하면, 북측이 판문점을 통해 특사접촉 의사를 우리 정부에 공식 통보한 날짜는3월14일이다. 이때 3월17일 상하이 회동을 제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다음날인 3월15일 박지원 장관을 대북 특사로 임명했다.

 이시기에 현대 그룹 내부에서는 3월14일 정몽구회장측이정몽헌 회장의 오른팔인 이익치현대증권 회장에 대한 전격적으로 인사 발령을 냄으로써 경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이익치 회장은 3월17일 묘하게도 남북 특사간의 첫 접촉이 예비되어 있던 중국 상하이로 날아가 미리 체류하고 있던 정몽헌 회장과 합류한것이다. 결국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정몽헌 회장의 막후 절충-317 특사 접촉에 대한 북측으 결정-이익치회장 합류라는 연겨선에서 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판문점을 통한 북한측의 314 제의를 전후한 시기에 정부는 정부대로 북측과의 특사 접촉을 위한내부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즉 박지원장관을 특사로 하는 ‘청와대 특명팀’이 본격 가동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특명팀에는 대북 특사로 임명된 박지원 장관 외에 그동안  접촉을 뒤에서 주관해온 국정원의 김보현  서영교팀이 가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월17일부터 시작된 납북 특사 접촉은 당일 두차례 그리고 이튿날 한 차례 속개 되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측이 정상회담 파트너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넣을 수업다고 버팀으로써 일단 결렬되었다. 이어 3월22일 베이징에서 재개된 후속 회담에서는 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의한 것 이냐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에의한 것이냐를 둘러싸고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박지원 장관이 ‘우리제안을 받으려면 받고 그러지 않으면 연락하지 말라“고 최후 통첩을 함으로써 결렬 위기에 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정부도 현도도 원치 않는 것이었다.

  그 직후 현대그룹 최고 경영진의 ‘이상한 행동’이 나타났다. 지난 4월5일 ‘거동이 불편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돌연 대북 사업의 주역인 정몽헌회장  이익치 김윤구 사장을 대동하고 일본을 방문한 것이다.

  당시 언론이 정명예회장의 돌연한 방일에 주목한 것은 당연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정명예회장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절차와 형식 문제고 벽에 부닥쳤던 박지원  송호경 특사 접촉과 연결해 보면짚이는 대목이 있다. 결국 북측에서 정상회담의 돌파구를 열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뿐이며, 김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정명예회장뿐이기 때문이다. 일보에는 바로 현대 대북장이 있다. 따라서 요시다를 중간 채널로 해 정명예 회장이 직접 움직이는 성의를 보여 김위원장의 결심을 받아내려 했다는 해성이 가능하다.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회장이 지난 4월7일 일본에서 급히 베이징으로 날아갔고, 이 날 북한측이 우리 정부에 “남측 제안을 수용하겠다. 4월8일 만나자”라고 급히 연락해온 것 역시 정명예회장 방일과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할 것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미 장식
  현대 수뇌부가 일본을 방문한 배경에는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현대측의 사전 포석도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지난해 말 이후 현대측은 경의선 복선화에 대한 내부 계획을 수립해 왔다. 현대측 구상에는 1차로 경의선 복선화 사업을 추진하지만 중  장기로는 경원선  금강산선 동해북부선등 남북간에 끊어진 철도 노선을 연결하는 사업까지 염두에 둔 방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즉 현대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남북 간에 이루어질 첫 사업으로 철도 연결 사업을 예상하고,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일본측 의중을 사전에 타진했다고 볼수 있다. (<시사저널>547호 커버 스토리 참조)

  지난 4월8일 박지원 송호경 두 남북 특사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타결 배경에는 이처럼 3라운드에 걸친 현대측의 막후 중재 노력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김윤규 시장에게서 시작된 현대의 막후 라인은 정몽헌 회장으로 이어졌다가 마지막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극적으로 등장해 대미를 장식하는 드람틱한 과정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통일교 산하 금강산 국제그룹의 박보회 회장과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착공식 참석 직후 박보희 회장이 김용순 비서와 단독 회담을 통해 남북 고위급 대화에 대한 정부측 입장을 전하고, 또한 박상권 사장 역시 이와 관련해 일정항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보희  박상원 라인은 북측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정부가 가동한 여러 채널 중의 하나였을 뿐 정부가 이 채널에 의존해 대북 접촉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박 라인이 움직이기 이전에 이미 경의선을 화두로 한 현대  정부채널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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