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한,北核문제 타협 가능성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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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따라 한반도 탈냉전 큰 영향∙∙∙“북측,핵금복귀 시한 넘겨 장기화할 의도”분석도

요즘 미국의 유력 신문에는 미∙북한 관계개선을 촉구하는 광고가 자주 실린다고 한다.  친북한 단체가 돈을 대는 이 광고들은‘미국의 핵 위협 제거’등을 내걸고 있는데, 미국의 핵 전문가 레너드 스펙터 박사는 이들 광고가 “적절한 조건만 이행되면 미국과 타협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하는 북한측의 신호이다”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타협할 용의’는 오히려 미국의 태도에서 더욱 많이 발견된다.  일본<니혼게이자이신문>은 “클린턴 정권이 드디어 북한 핵 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 국무성은 그동안 북한 핵 문제에 대해 ‘한국과 북한 사이의 교섭사항’이라는 태도를 취해 왔는데 최근 들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쪽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직접 교섭사항’이라는 북한의 일관된 주장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미국측의 달라진 태도 속에는 중요한 변화의 실마리가 감춰져있다.  고위급 대화의 미국측 대표인 갈루치 국무차관보(정치.군사 담당)는 5월26일 미 상원 북한핵 문제 청문회에서 “우리는 북한이 우리가 요구하는 △핵금조약 잔류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수용 △남북한 비핵선언 준수 등을 받아들인다면 핵문제에 대한 전반적 해결책의 일환으로 북한이 안보상 우려하는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조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 ‘안보상 우려사’”은 유엔 주재 북한 부대사가 제시한 6개항 요구에 잘 나타나 있다. 허부대사는 5월27일 뉴욕에서 열린 미국 교회협의회(NCC)주최 토론회에서 미∙북한 회담의 북측 요구사항으로 △미국의 핵무기 불사용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한국내 미군기지 공개 미국의 핵우산제공 중단 주한미군 철수 북한 사회주의체제 존중 등을 내놓았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본질적 문제들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반도에서의 “탈냉전”의 서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5월11일방한한 윌리엄 페리 미 국방차관의 제의로 6월8일 열릴 예정이던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미국측요청으로 자꾸 미뤄지고 있다.  이는 6월2일의 미.북한 고위급 회담의 결과가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5월25일 남측에 대해 특사를 통한 남북한 정상의 간접 회담을 전격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북측의 제의에 대한 정부의 대응원칙은 간단명료했다.  ‘ 先핵문제해결 核관계정상화’라는 대전제 아래 북측의 제의를 일단 거부하되 대화의 여지는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측의 제의가 정상회담카드로 새 정부를 ‘시험에 들게’한 것이며, 핵 문제를 희석하여 핵금조약 탈퇴 발효일인 6월12일 이후 논의될 국제적 제재 문제를 앞두고 한국측을 혼란에 빠뜨릴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5월29일 북측에 전달한 황인성 총리 명의의 대북서한도 이런 신중론의 소산이다. 

“핵금조약 복귀 알리는 신호”
 그러나 정부는 정상회담 제의를 거부할 뚜렷한 명분이 없다.  우리측은 70년대 이래 줄곧 정상회담을 제의해 왔을 뿐 아니라 2월25일 김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시기와 장소에 상관 없는 정상회담을 제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의 제의에 대해 국제사회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갈루치 미 국무차관보는 “북측의 제의는 한반도 비핵화 실천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이다.  남북회담이 미∙북한회담과 함께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높여줄 것으로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월스트리트 저널>은 북측의 제의가 핵금조약 복귀를 시사하는 분명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겉으로는 냉랭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북한과 미국은 최근의 상황 진전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차관급은 아니지만 차관보급 대화에 응하고 나옴으로써 핵금조약 탈퇴 철회 명분을 어느 정도 마련한 셈이다.  미국은 대표를 차관보급으로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이 핵 문제와 대미 관계개선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5.25제의는 미국과 북한 자신의 정책변화를 전제로 대남 관계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내놓은 새로운 전략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으로서는 앞으로 ‘수주간’ 계속될 미국과의 고위급회담, 그리고 회담 형식과 의제를 놓고 계속될 우리측과의 줄다리기를 통해 “불확정 상태의 연장”이라는 단기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하게 됐다.  그만큼 6월12일이라는 시한 내에 뭔가가 매듭지어질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북한핵 문제는 또다시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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