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이인모 송환하자”
  • 김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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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김국홍∙함세환 노인∙∙∙민간단체, 정부와 교섭중

민간 인권단체들이 이인모 노인에 이어 비전향 장기복역 출소자들에 대한 북한 송환을 추진하고 있어 큰 반향이 예상된다.  특히 인권단체의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남북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점에서 제기되어 정부의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협회 천주교정의구현연합, 불교 인권위원회,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등으로 구성된 ‘김국홍∙함세환 노인 송환추진위원회’는 6월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기복역 출소자 북한 송환 요구를 공식으로 발표했다.  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광주. 전남과 대전 지역 인권. 종교 단체들도 각각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송환 대상자인 두 비전향 장기복역 출소자가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었다. 

 이 날 서울∙광주∙대전의 동시 기자회견에서 송환추진위는 회견문 발표와 함께 두 송환 대상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국제적 십자사 총재 앞으로 보내는 환북요청 서한 및 통일원장관에게 보내는 면담요청 질의서도 공개했다.  또 송환추진위는 각 참여 단체의 성명과 함께 김국홍∙ 함세환 두 사람을 선정해 송환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인모 노인에 이은 제2의 송환 추진은 형평성에 비추어 이씨의 송환 때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시사저널》은 지난 4월1일자에서 “종교∙인권 단체에서 이씨의 송환을 계기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기수에 대한 송환운동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뒤 인권단체들은 송환추진위를 만들어 송환 대상자 명단을 파악하고 본인들의 환북 의사를 타진하는등 비밀리에 '고향 보내기'사업을 추진해 오다가 최근 두 사람을 확정해 이를 공식 발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인권단체 ‘물밑 교감’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송환추진위의 한 관계자는 “핵 문제와 함께 남북한 사이의 현안이었던 이인모 노인 송환에서 보여준 새 정부의 유연성을 고려할 때 인도주의 차원에서 정부도 이를 지원할 것으로 본다”라고 조심스런 낙관론을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송환문제에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87년에 납북된 동진호 선원의 송환 문제와 연계한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3월 19일 인민유격대원(빨치산) 출신 이인모 노인을 송환(방북 허용)할 때 “인도적 차원의 특례”라고 토를 달긴 했지만 사실상 조건 없는 송환을 허용한 바 있다. 

 한편 송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권단체와 정부 당국 양쪽이 서로 상대방에게 조심스런 의사타진을 해온 사실이 알려져 정부 당국의 암묵적인 동의와 묵인 아래 송환이 추진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민가협의 한 관계자도 “이인모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기수를 대상으로 방북 의사를 타진해 간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송환 추진 대상자인 함세환씨를 비롯해 몇 명한테서 방북신청서를 받아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신청서를 받아간 사람은 통일원 또는 안기부직원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통일원 측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정부 쪽의 이같은 움직임이 이인모씨 송환 때 제기된 형평성시비와 관련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핵 및 정상회담 같은 큰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새 정부가 이인모 노인의 방북을 허용한 이후 북한 당국이 ‘감사의 뜻’을 전해 왔고, 통일원이 사후 여론조사를 통해 이씨 송환에 대한 ‘국민의 뜻’을 확인한 점 등이 제2의 송환이 성사될 수 있다는 낙관론의 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통일원이 각계의 남북한 문제 전문가로 구성한 ‘통일속보망’ 회원 5백명과 각 사회단체의 여론 선도층 인사 5백명 등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면접설문조사(5월초 발표)도 낙관론의 배경이 되고 있다. 통일원은 설문에 이례적으로 이인모 노인의 방북 허용에 대한지지 여부를 묻는 항목을 넣어 “잘했다”(77.2%)라는 여론을 끌어낸 바 있다.  특히 통일원이 관변단체일변도였던 설문 대상에 민가협등 재야단체를 처음 포함시킨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통일정책 입안을 맡고 있는 제3정책관실의 한 관계자도 “그전과는 달리 사회단체의 성향을 3등급(보수∙중도∙진보)으로 분류해 장기수가족협의회와 민가협 등 재야단체를 포함시켰다”라고 밝혀 통일정책의 변화를 읽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핵 문제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최근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특사를 교환하자고 제안하는 등 남북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아지고 있는 점도 송환 성사 가능성의 주요한 배경설명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이인모 노인에 대한 ‘조건 없는 송환’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새 정부에 대해 ‘만나볼 만한 사람’ 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온데 이어 5월25일 강산성 총리 명의의 서한에서 “남측에서도 새정권의 출범과 함께 과거와는 달리 민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특사 교환 문제를 논의한 남북한 차관급 실무접촉(5월31일)과 핵 문제 논의를 위한 북한. 미국간의 고위급 접촉(6월2일)결과는 송환 문제의 주요 변수로서 송환추진위에서는 일단 2차 송환을 위한 분위기는 조성된 것으로 본다.  남북한 정상회담에 대한 양쪽 정부 당국의 적극적 의사 표현에 비추어, 두 사람의 송환 문제는 걸림돌이 되기에는 명분이 없는“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송환추진위에서도 두 사람의 송환사업이 ‘인도적 차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송환추진위의 한관계자는, 이인모씨가 꿈에 그리던 가족과 재결합한 것은 통일로 가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일이었다면서 “최근 남북한 간에 대화를 재개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는 때에 이씨의 송환 전례를 잇는 사업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노인의 귀향을 추진하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송환추진위는 또 회견에서 북측도 이에 상응하는 인도적인 조처를 시행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이번송환추진이 남북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보인다.

김∙함 노인 모부 빨치산 출신
 한편 송환추진위가 이번 송환추진 대상자로 김국흥∙함세환 두 노인을 선정한 것도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환추진위는 그동안 비전향 장기수 중에서 가족이 북한에 있거나 고향이 북한이어서 남한에 연고가 없는 사람(민가협 집계 18명) 가운데 지병을 앓고 있는 고령자를 우선적으로 송환 추진할 방침이었으나 정부내 온건파의 입장을 고려해 인민유격대원 출신으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령자 우선일 경우 80년대의 남파공작원 출신이 해당돼 남파를 부정해 온 북한 당국의 태도에 비추어 정부내 강경파와의 마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송환추진위도 “두 노인이 모두 전쟁 때 군인으로 남쪽에 내려왔다가 잡힌 전쟁포로였으며, 본인들이 한결같이 고향과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김국홍 노인(68.본명 김인서)은 평남 덕천 출신으로 현재 북한에 있는 여동생(김봉선 63세)과 두 딸 김화심(48. 평양외국어대 교원) 김정심(44.평양유치원장) 등 가족의 근황이 지난해 6월 <한겨레 신문>에 공개된 바 있다.  김씨는 지난 50년 전쟁 때 평남 도민청 정치문화교양부 부부장으로 있다가 비전투 요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전남 도민청에서 활동중 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 이후 그해 10월 장흥지구 사령부에 입산해 주로 도당학교 교양간부로 활동해 왔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51년 12월 31일 군경합동 대공세때 지리산에서 체포돼 20년형을 마치고 나와 막노동자로 전전하다가 두차례난 반공법으로 재구속되었다.  이후 형 만료와 함께 청주 보안감호소에 수감되었다가 지난 89년 10월12일 출소한뒤 광주 갱생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전남 장성의 한 채석장에서 일하다가 만성간염과 신경질환을 얻어 최근 광주와 서울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후 가료중이다.  한편 함세환 노인(62)은 황해도 웅진이 고향으로 전쟁 때 의용군에 자진입대해 활동하다가 53년 6월 속리산에서 체포돼 무기를 선고(60년에 20년으로 감형)받고 73년에 만기출소했다.  그뒤 양계장에서 일하다 비전향을 이유로 75년 보안감호소에 재수감되었다가 89년 8월 출소해 현재 대전시 장대동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함씨의 고향은 38도선 이남이었으나 좌익 지하운동을 한 함씨의 큰형(함세균)을 따라 가족이 모두 월북해 살다가 1.4후퇴 때 부모와 형수,조카3명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빨리 고향에 가 부모님 산소 앞에 술 한잔이라도 올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라는 함씨는 북에 살아있을 것으로 믿는 형님께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오늘도 쓰고 있다. 

 장기수 송환이 이루어져 송환추진위의 주장대로 ‘남북관계를 화해와 공존의 통일시대로 변화시켜 내는 쾌거’가 돌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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