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수리보다 ‘교환’ 원한다.
  • 김상익 경제부 차장대우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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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애프터 서비스보다 ‘품질’투자해야…병주고 약주는 식 “일곱번 수리”도



 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에 사는 장행수씨는 애물단지였던 냉장고를 1년 동안 끌어안고 속을 썩이다가 지난 4월6일 새것으로 교환받았다. 그는 지난해 4월 냉장고를 구입했는데 산 지 몇 달도 안돼 고장이 났다. 장씨는 “냉장실 온도가 높아 음식물이 상하기 일쑤였다. 세차례 수리했는데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지난 2월 소비자보호원에 불만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 뒤 회사측은 온도조절기를 교환해주었지만 또 고장이 나자 “이번에도 못 고치면 냉장고를 바꿔 주겠다”고 약속한 대로 지난 6일 제품을 교환해 주었다.

 소비자 보호단체에 고발한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대접을 받는 편이다. 서울 가리봉동에 사는 전옥녀씨는 냉장고 때문에 2년째 골치를 앓고 있다. 냉장고의 증상은 앞의 장행수씨 경우와 같다. 그동안 일곱 번이나 수리했지만 몇 달 못가 또 그 타령이다. “대리점에 전화하면 그 길로 달려와 수리해 주어 한편으로, 고맙긴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고장이 자꾸 나니 그 회사 제품을 믿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전씨가 내린 결론이다.

 

가전3사, 생존 차원서 서비스 확대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91년 한해동안 가전제품(소형 컴퓨터·팩시밀리 등 사무기기 포함)에 대한 불만 접수 현황은 1천9백14건에 이른다. 90년의 1천9백25건에 비해 11건이 줄었다. 그러나 품질에 대한 불만은 더 커졌다. 90년의 경우 품질 관련 소비자 불만은 1천3백37건으로 69.5%를 차지했으나 91년에는 4천3백61건(71.1%)으로 늘어났다. 가전제품 중에서 특히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 무선전화기 녹화재생기(VCR)에 대한 불만이 압도적이다.(표 참조) 반면 애프터 서비스의 질과 처리시간 등에 대한 불만은 3백36건(17.5%)으로 90년 3백57건(18.5%)보다 줄었다.

 최근 1년 사이 금성· 삼성·대우 등 가전 3사의 애프터 서비스는 많이 향상됐다. 럭키금성그룹은 4월을 ‘고객의 달’로 정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전국에 3천여개의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있는 금성사는 ‘고장접수 2시간 이내 서비스’를 구호로 내걸고 잇다. 서비스 요원은 모두 6천5백명. 금성사의 경우 직영 서비스센터와 대리점, 팩토링 체인점에서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다. 삼성전자는 서비스센터를 91년 90개에서 94개로 늘리는 한편 서비스 인력을 6천5백명 선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들 두 회사는 조직 확장을 통한 서비스 증대를 꾀하고 있다.

 반면 대우전자는 92년부터 전국에 12개의 토탈서비스센터와 40개의 서비스 센터를 두고 이곳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실시한다. 대우전자측은“서비스센터를 대단위로 통합, 우수인력을 한곳에 모음으로/서 서비스 인력의 전문화가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가전3사가 이처럼 경쟁적으로 애프터서비스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의 유통시장 개방확대 조처를 앞두고 한국의 가전3사는 바짝 긴장했었다. 럭키금성그룹 具慈暻 회장은 그의 저서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전시장에 있어서 유통망은 인체의 핏줄과 다름없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우위에 있는 그들에게 유통망 확보는 한국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나 마찬가지다.…일본 가전업체들은 국내 가전업체의 영업사원, 애프터서비스 기사들에게 스카우트 손길을 뻗쳤고, 영업망과 서비스센터 확충을 위한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국내 가전업체들에게 생사를 건 정면승부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였다.”

 대우전자의 경우 지난 1년간 전국적인 서비스망을 구축하는 데 7백억원을 투입했다. 이중 서비스센터 부지를 확보하는 데 4백억원, 인건비 등으로 연간 3백억원이 투입됐다. 서비스가 강화될수록 이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작년도 대우전자의 매출액은 1조5천8백억원, 순이익은 1백36억원이었다. 이렇게 볼 때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은 매우 부담이 된다. 그러나 “서비스의 품질로 코피 터지게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가전 3사의 공통된 인식이다.

 과거에 비해 고객 서비스가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소비자의 불만은 여전히 높다. 금성사 ㅅ대리점의 서비스 요원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2~13건의 소비자 불만을 처리해야 할 만큼 일거리가 많다. 그는 “서비스 요청이 들어온 것 중 60%는 제품이 고장나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사용법을 몰라 신고하는 경우”라고 말한다. 가령 녹화재생기의 예약 방법을 모를 경우 사용설명서를 보지도 않은 채 “녹화가 안된다”고 전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능 많되 조작 편리하게”만들어야

 그러나 이것을 꼭 소비자의 잘못이라고 탓하기는 곤란하다. 지난 4월7일 인터컨티넬탈호텔에서 열린 럭키금성경제연구소 주최 ‘고객에 대한 기업의 책임과 역할’세미나에서 대한주부클럽연합회 金天柱 회장은 “유식한 사람들(생산자)이 무식한 사람(고객)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전 3사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덧붙인 신제품을 내놓고 있으나 기능이 많은 만큼 값이 비싸고 사용법이 복잡해 소비자로서는 더 불편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대우전자 서비스부 朴商戶 과장은 “앞으로 가전제품은 ‘기능은 많게, 조작은 편리하게’ 개선되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고장이 나면 고쳐주겠다”는 것이 우리나라 가전 3사의 서비스 개념이다. 92년 한해 동안 소비자보호원이 처리한 피해구제 결과를 보면 가전제품의 경우 총 1천8백90건 중 수리 9백22건(48.8%) 교환 4백84건(25.6%) 환불 1백51건(8.0%)의 순이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소비자보호원측은 “교환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면서 “가전제품의 경우 현행 소비자피해보상 규정에 똑같은 겨함으로 3회 이상 수리할 경우 교환해 주게 되어 있고 가전업계도 교환을 비교적 쉽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쉽게 교환해 준다고 하지만 외국에 비한다면 국내의 서비스 수준은 크게 뒤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수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교환이다. 미국의 유력한 통신사에서 경제전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온 ㄴ씨는 이렇게 말했다. “녹화재생기가 마음에 안 들어 상점에 가지고 갔더니 두말 없이 새것으로 교환해 주더라”면서 “미국에서도 교환이 가능한 기간은 1년이지만 ‘제품보증’이라는 일종의 보험제도가 있어 단돈 몇 달러만 내면 보증기간을 계속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소비자에게 도도록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풍토가 정착돼 있을뿐더러 큰 비용을 들여 서비스망을 구축하느니 차라리 제품을 교환해주는 편이 더 경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국내 어느 가전히사는 일본에 컬러텔레비전을 수출했는  제품에 탈이 생겨 그 모델을 사간 고객명단을 파악해 새 텔레비전으로 교환해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전 체품에 대한 신뢰를 잃기 때문에 그같은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애프터 서비스가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기업이 ‘병주고 약 주는’식의 애프터 서비스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金元銖 교수는 “애프터 서비스를 해준다는 것은 제품에 결점이 있다는 것을 미리 인정하느 것이므로 기업은 결점이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영을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교수는 “아무리 애프터 서비스가 좋아도 서비스를 받는 동안 소비자는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게 마련이며 그렇게 되면 기업의 이미지도 나빠진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한 가전제품 회사는 곡화재생기에 한해 불량률이 2%가 넘으면 전제품을 교환해주고 있다”면서 “그들은 그만큼 품질을 자신하고 있으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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