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걸음 대전, 첨단도시 도약한다
  • 송준 기자 ()
  • 승인 1991.02.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조업 빈약, 재정상태 부실하나 '교통요충' 큰 밑천
 용광로 안에는 '인고트'라 불리는 알루미늄 원석이 시뻘겋게 녹아 있고 안전모를 쓴 남자 노동자들이 긴 쇠꼬챙이를 들고 바쁜 일손을 움직인다. 여기서 나온 중간생산물을 '빌레트'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압출기에 넣어 알루미늄 파이프나 環棒을 생산한다.

 대전시 대화동 대전공업단지의 '빅3' 가운데 하나인 동양강철공업주식회사(대표 朴種根)는 알루미늄 산업의 선두주자로서 국내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는 업체이다. 9백30명의 직원이 알루미늄 샤시, 차량 부품 등을 만든다. 작년 매출액은 7백4억원이었는데 올해는 9백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서울시 양평동에서 73년에 대전공단으로 공장을 이전한 이 회사의 吳秉浩(39) 기획과장은 "서울의 땅값과 인건비 상승, 종업원의 생활조건 등을 고려해 회사를 이전했지만 공단이 주는 산업연관 효과나 혜택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공단내 도로의 노면상태가 나빠 제품 수송에 불편을 겪고 있으며 사거리가 많아 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공업단지 입주업체 40%가 영세
 한미타올주식회사(대표 李成泰)는 종업원 2백70명으로 연 70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어 재무구조가 비교적 탄탄한 편에 속한다. 沈文吉(56) 전무이사는 "타올생산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상승하고 수출은 감소하는 데다 중국과 파키스탄 등지에서 싼 값의 저질 타올이 대량 수입되고 있다. 업체끼리 과다한 경쟁을 벌여 3년째 가격이 제자리걸음이다"라고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대전에 있는 공업단지는 현재 1단지(14만5천평) 2단지(23만5천평) 둘뿐인데 이를 모두 합쳐봐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면적의 약 4배 크기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79년 공단 준공 이후 12년간 확충이나 새로운 공단 조성이 없었다. 이 협소한 면적 안에 95개 업체가 몰려 있는데 대부분이 대전 지역에서 창업한 영세업체이다. 구성 내역은 석유화학 20개, 금속 43개, 섬유 13개, 제지 5개, 식품 6개 등이다. 3백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기업은 8곳에 불과하며 50명 이하의 인원을 고용한 영세업체가 40개에 달한다. 20명 이하의 직원을 둔 공장도 11곳이나 된다.

 이 업체들은 한결같이 회사 운영의 애로점으로 인력난을 들고 있다. '어려운 일, 위험한 일, 더러운 일.'이 요즘 기능직 노동자의 3가지 기피조건이라고 한다. 대전공업단지협회 朴龍信(65) 상무이사는 "공단의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근로조건과 보수체계가 대기업 수준에 못미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느끼는 긍지도 작지 않은 요인이다.

 제조업체가 인력난에 허덕이는 동안 기능직 노동자는 서비스 산업에 흡수되거나 다른 지역에 있는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기능공 단기 양성소인 대전 직업훈련원의 경우, 91년 2월 졸업예정인 원생 2백40명 가운데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62명만이 대전지역에 취업했을 뿐 나머지는 서울 45명, 안산 51명 등 모두 타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인력난을 극복하려면 생산공정 자동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미타올의 경우 수동식 직기를 최신 레피아 직기로 바꾸고 종래의 기계식 미싱을 컴퓨터로 작동되는 자동 미싱으로 대체하여 50명 이상의 인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내 직업훈련원을 운영하여 기술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나 이들 영세업체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타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자금
 물가가 오른데다 기능직 노동자의 절대수가 부족해 임금인상은 감내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이들 업체의 공통된 견해이다. 자금조달 문제도 심각하지만 거의 포기한 상태다. 대전상공회의소 조사부장은 "시설 확장 비용 등 대규모 자금은 산업은행의 정책자금을 이용하며 작은 액수는 단자회사의 단기 자금을 활용한다. 담보 조건이 까다로워 영세한 회사로서는 비용절감을 통한 현상유지 전략을 택한다. 따라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분석한다.

 이곳 금융계의 한 실무자는 "시민들이 서울에 본사를 둔 금융회사에 예금한 금액은 물론, 대전에 본사가 있는 충청은행 대전투자금융 중앙투자신탁 대전생명 같은 회사들도 지역내의 영세업체보다는 타지역의 대기업에 대출하여 높은 이윤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역내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고 지방금융의 한계를 인정했다.

 도시별 산업구조를 비교해보면(표 참조) 대전직할시는 3차산업의 비율이 70%나 되고 2차산업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곧 실시될 지방자치제를 앞두고 시의 재정자립을 상당히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2차산업이 발달해야 사업자등록이 잘 되며 세금징수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대전시청 지역경제과의 安成淳(36)씨는 "향락산업 등 3차산업의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는 세금원을 포착하기가 어려워 그만큼 지방 재정상태가 부실해지게 마련이다. 대전시의 재정자립도는 6대 도시 중 최저상태이다"라고 행정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대전 역내 3차산업의 양적 성장이 제조업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교통요인으로 인한 것이며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상호보완 효과가 미약한 것도 대전시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하소연이다.

 이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방법은 낙후된 공업을 집중 지원하여 제조업 분야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전시는 91년말까지 대덕구 문평동에 37만5천평의 3공단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부지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 조립금속 기계 화학산업 등 41대 업체의 입주 신청을 접수해놓고 있다.

 또한 93년까지 목상동 일원 55만평 부지의 4공단에 전자산업체 등 60개 업체를 입주시킬 계획이다. 대덕연구단지와 연계하여 95년까지 생명공학 레이저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단지를 유성구 구즉동 일대 1백20만5천평의 부지 위에 조성할 계획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있다.

 현재 대덕연구단지 근무자들은 대부분 가족을 서울에 둔 채 혼자 현지생활을 하므로 연구단지의 소득이 서울로 환원되어 대전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 새 공업단지와 첨단산업단지의 경우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어차피 대전에 투자한 시설은 대전의 산업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대전시 당국은 자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개발중인 둔산지구의 제3정부청사를 비롯한 행정타운 건설 사업과, 93년 개최될 예정인 세계무역박람회 준비사업은 첨단과학 산업도시로 부상하려는 대전직할시의 기지개로 보인다.

토지자원 및 고급인력이 발전 밑거름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지자제가 실시될 때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이들 사업을 추진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시청 공업과의 金乙來 계장은 "3·4공단 및 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은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입주 신청업체들로부터 선수금을 받아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나 이로 인해 산업간의 연계효과와 효율적인 부지 이용이 부실해질 우려가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는 중에도 대전시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전이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충이고 인접해 있는 청주공항과 군산항을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개발 토지자원이 풍부한 점과 고급인력이 남아도는 점도 장기적인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산업구조의 고도화, 중소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 확충, 고급인력 유치에 필요한 교육·문화·주거시설의 확보 등 발전을 향한 길에는 난제가 두텁게 쌓여 있지만 대체로 대전 시민은 장기 발전 청사진을 흡족히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계획은 그 실현에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요하는 것이지만 '테크노피아 한밭'의 꿈은 한걸음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